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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를 따라 걸어본 프라하의 길들

by 양문규

카프카는 프라하에서 태어나 자라서 그곳에서 죽었지만 그의 소설은, 상징성이 강한 모더니즘 작품답게 프라하의 지명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단지 프라하의 분위기만을 전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의 일기나 편지에서는 당연히 프라하의 지명들이 등장한다.


나는 프라하에서 안식년 당시, 체코의 한 의학박사가 쓴 <프란츠 카프카와 프라하>라는 영문판 책을 구해볼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카프카와 관련된 프라하 시내 서른두 군데의 장소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곳들 대부분은 프라하 시내를 오가면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곳이지만, 게으른 나는 이들을 사진으로 별로 남겨놓지를 않아 기억만을 따라 이 글을 쓰려다 보니 아쉽기만 하다.


내가 살던 동네 젤리브스케호는 프라하의 시립 공동묘지가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유태인 공동묘지도 함께 있다. 올드 타운에 위치한 옛날 유태인의 공동묘지는 관광객들이 자주 두르는 장소이다. 그러나 우리 동네의 유태인 공동묘지는 지금도 실제 공동묘지로 사용되는 곳이다. 바로 이곳에 카프카가 묻혀 있다. 다른 일반 유태인들의 묘와 함께 섞여 있기에 잘 찾아봐야 알 수 있다. 나야 한국에서 지인들이 올 때마다 데리고 갔기에 아주 익숙해져 버렸다.


그의 묘비명은 히브리어로 씌어 있다. 이는 카프카가 체코에서 살았지만 체코인도 아니요, 독일어로 문학을 했지만 독일인도 아닌, 바로 뿌리 뽑힌 존재로서의 유태인이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고 카프카가 자수성가한 상인이었던 그의 아버지 같이 철저한 유태인이었냐 하면 그렇지도 못했다. 카프카의 이런 변경적인 또는 경계적인 위치가 오히려 그의 문학이 프라하의 경계를 넘어 세계문학으로 나갈 가능성을 보여준다.


카프카의 묘.jpg 카프카의 묘(좌)와 그 주변


물론 그의 문학이 프라하라는 공간을 초월해 허공에 떠있는 건 아니다. 그는 프라하를 사랑했다. 동시에 그는 이 도시에서 폐쇄공포를 경험하기도 한다. 카프카는 프라하를 “자신을 결코 놔주지 않는,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자그맣고 사랑스러운 어머니”라고 묘사했다.


그의 일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내 ‘고향’인 프라하에서도 그렇게 쓸쓸하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지지만 나는 사랑할 수 없다. 나는 너무 멀리 왔고, 추방당했다.” 그럼에도 “내 세계의 매력 또한 크며, 나를 사랑하는 이들은 내가 ‘홀로 떨어져 외롭기에’ 나를 사랑한다.”라고 쓸쓸하게 얘기한다.


카프카가 어린 시절과 고등학교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던 곳은, 현재는 관광객이 구름같이 몰려드는 천문 시계탑이 있는 올드 타운 광장과 그 주위다. 시계탑이 있는 구시청사 옆에는 르네상스 양식의 니콜라스 성당이 있다. 그 성당 옆의 건물이 바로 카프카가 탄생한 곳이다.


카프카가 두 살 때 이 집에서 이사를 갔기 때문에 이 집 자체에 대한 기억은 없을 것이다. 지금 그 앞의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관광객들 역시 벽에 붙은 청동으로 된 카프카의 흉상을 빼고는 이 집이 카프카의 집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길은 없다.


카프카 생가 앞의 카페(좌)와 생가의 벽에 걸린 그의 흉상


카프카가 어린 시절 대부분을 지낸 올드 타운 광장은 온갖 환상적인 건축물들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카프카가 다닌 고등학교는, 광장에 위치한 바로크 양식의 골드 킨스키 궁전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궁전 건물 바로 옆에는 두 개의 도발적인 첨탑이 하늘로 곧추 세워진 틴 성당이 있다.


밝고 화려한 궁전과 준엄하고 어두운 빛의 성당이 공존하고 있기에 더욱 프라하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현재 궁전 1층에는 서점이 있는데, 이는 옛 유태인 게토 지역에 있는 서점과 함께 프라하에 두 군데 있는 카프카 전문 서점이다.


크리스마스 때의 킨스키 궁전과 틴 성당(좌), 시계탑서 내려다본 킨스키 궁전


카프카가 젊은 시절 친구들과 함께 올라 다녔던 프라하 성 뒤쪽으로 해서 페트르진 타워로 올라가는 과수원 밭 등이 있는 길은 관광객이 별로 안 다녀 호젓하고 아름답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푸니쿨라를 타고 페트르진 타워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에펠탑을 흉내 내 1891년 세워진 페트르진 타워 자체야 크게 볼 것이 없는 탑이지만 그곳을 천천히 올라가면서 굽어보게 되는 프라하 시내와 블타바 강, 그리고 카프카가 더러 두르기도 했다는 자하르다 정원은 사랑스럽다. 긴 겨울이 끝나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봄날 이 길을 걷노라면 그림자조차 없는 듯한 조용하고 푸근한 카프카의 자취가 드러난다.


페트리진 탑.jpg 페트리진 탑(좌)과 페트리진 공원서 내려다본 봄날의 프라하
페트리진 길서 보이는 프라하 궁성(좌)과 자하르다 정원



그러나 프라하는 카프카에게 궁극적으로 쓸쓸하고 외로운 또는 공포의 공간이었다. 카프카가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졸업한 후 보험회사 사무원으로 일하게 됐을 때 (그가 법학과 보험회사라니 쩝~), 그의 가족은 유태인 게토 지역 일부를 허물어 그곳에 새로 지은 5층 집으로 이사를 간다.


이 집은 블타바 강변 니쿨라스 거리의 체후프 다리 앞에 있는데 물론 지금은 없어지고 이 자리에 인터콘티넨탈 호텔이 들어서 있다. 트램을 타고 카프카의 집이 있던 체후프 다리를 건너갈 때는 늘 왼쪽 멀리 언덕 위 프라하 성의 비투스 성당이 올려다 보인다.


블타바강쪽서 본 프라하성.jpg 겨울 블타바 강쪽서 바라본 프라하 궁성


이 집에서 카프카는 <변신>, <심판> 등 그의 주요 소설들을 쓰기 시작한다. 그의 방은 강 변 쪽이 아니고 복잡한 골목과 집들이 빽빽한 시내로 향해 있었던 것 같다. <변신>의 무대는 바로 그 집이었을 것이며, 그는 그곳서 글을 쓰노라 자주 밤을 지새운다. 카프카는 “소름 끼치는 불면의 밤이 없다면 대개는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라 말한다.


카프카는 글에 좀 더 집중하고자, 누이와 함께 프라하 성 밑의 코딱지만 한 집을 구하는데 이 집이 바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황금소로의 22번지 집이다. 현재는 파스텔 톤의 색으로 동화와 같이 예쁘게 꾸며져 있지만 실은 옴치고 뛸 수 없는 열악한 집이었다. 카프카는 이 집에서 주로 글을 쓰고, 한밤중이나 아니면 아주 이른 아침에 블타바 강 다리를 건너 니쿨라스의 본가로 돌아가곤 했다.


그즈음 해서 카프카는 각혈을 시작하고 폐결핵 진단을 받는다. 그는 세 번을 약혼하고 세 번의 파혼을 겪기도 한다. 나는, 카프카가 프라하 성 밑 집에서 돌계단을 내려가 블타바 강변 자신의 본가로 돌아가던 길을 쫓아 한번 걸어가 봤던 적도 있다.


어둠 속에서 고색창연한 성벽 돌담 밑의 길을 내려올 때 아마도 그의 유명한 소설 <성>이 구상이 됐을지도 모른다. 지금이야 카페, 레스토랑으로 번화한 길이지만, 당시 밤은 깊어 프라하 성은 유령 같은 숨을 쉬며, 카프카는 자갈돌 밟는 소리를 들으며, 세상의 심연과 종말을 상상하며 걸어갔을지도 모른다.


cats.jpg 프라하 성에서 시내로 내려오는 여러 길들


카프카는 유대문화와 전통에 적극적인 관심은 없었지만, 그의 문체가 보여주는 압축적이며 금욕적인 성격은 같은 시대 서구의 모더니스트 작가인 제임스 조이스나, 프루스트 등과도 다르고 어쩐지 신비로운 구약 성경의 느낌이 난다. 카프카의 일기에는 그의 어린 조카가 할아버지의 무릎을 베고 할례를 받는 장면을 안쓰러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글이 있다.


프라하 올드 타운의 옛 유태인 게토 지역을 가보면 유태인의 교회인 여러 개의 시나고그들을 비롯해 도처에 유태인 커뮤니티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카프카의 문학에 알게 모르게 배였을 유대의 전통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시나고그.jpg 클라우젠 시나고그, Old-New 시나고그, 마이셀로바 시나고그(좌측부터)


끝으로 블타바 강변에는 관광객들이 흔히 찾는 카프카 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이 위치한 장소는 카프카의 자취와 특별히 관련이 있는 곳은 아니다. 이는 박물관 마당에 체코 지도 모양을 한 연못에 오줌을 누는 두 명의 남자 조각상이 카프카 문학과 아무 관계없이 세워져 있는 것과 똑같다.


카프카는 프라하의 특정한 어느 곳이 아니라 도시 골목과 모퉁이. 성, 정원, 극장 등 구석구석에서 알게 모르게 그 신비한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다. 그냥 그곳을 걸어가면서 느낌으로 그것을 가져볼 수 있을 뿐이다.


카프카 박물관.jpg 카프카 박물관 정문(좌)과 카프카 문학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박물관 내의 오줌 누는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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