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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무하 박물관서 만난 일본인 관광객들

by 양문규

2014년 가을 안식년으로 체코를 가기 전까지는 체코의 화가 알폰스 무하(1860~1939)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무하는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많아 이미 2013년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회가 있었고 내가 체코를 다녀온 이후인 2016~2017년 같은 장소에서 그 두 번째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무하가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많은 이유를 문외한인 내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짐작컨대 우리나라 사람들이 체코로 여행을 많이 가면서 이 화가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기 때문이 아닌지 싶다.


단순히 짐작만은 아닌 게, 우리 관광객들의 필수 여행 코스인 프라하 궁성 안 비투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중엔 무하의 작품이 있다. 또 역시 중요한 관광코스 중 하나로 올드 타운 화약탑 옆에 위치한 장식적이며 화려한 시민회관 건물이 있는데, 이 극장은 무하가 추구했던 소위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이다.


나도 아르누보 스타일이 뭔지는 체코 가서 알았는데, 덩굴이나 담쟁이 등 식물의 형태를 모티브로 한 구불구불한 곡선 장식이 특징으로, 무하의 그림을 몇 번 보다 보면 눈썰미 없는 이들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게다가 극장의 중앙 홀인 스메타나 홀의 천장은 무하의 프레스코화로 이뤄져 있다.


비투스 성당과 무하의 스태인드 글라스 작품


아르누보 양식의 시민회관(좌), 입구 우측 벽 하단에 무하 전시회 포스터가 보인다.


무하 그림의 또 하나의 특징이, 긴 머리에 키 크고 날씬하며 물결 같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초상 뒤에 둥근 모양의 고리로 된 후광 등이 씌워 있는 것이다. 이는 무하의 고향인, 체코 안에서도 비잔틴 정교 문화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는 모라비아 지역의 영향이라 한다.


옛날 동로마제국 비잔틴 쪽에서 슬라브족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선교사 키릴로스와 메토디오스를 체코 모라비아로 파견한다. 이들은 슬라브어로 예배도 보고, 또 성경을 번역하기 위해 새로운 알파벳을 만드는데, 이것이 현재 러시아가 문자로 사용하는 키릴 알파벳의 기원이다.


무하의 그림은 비잔틴 정교를 신봉하던 어머니와 고향 모라비아의 지역적 영향을 받고 있는 셈인데, 왜 성인의 머리 뒤에 황금빛 후광을 씌우는 것은 비잔틴 예술의 중요한 특징 아닌가? 무하가 파리로 건너가서 당시 서유럽에서 유행한 아르누보 양식을 받아들이지만, 그 이상으로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체코의 이러한 민족적 요소들이 그의 그림의 매력을 더 하는 것 같다.


무하 박물관
무하 포스터.jpg 박물관의 포스터


이왕지사 프라하에 가있는 동안 무하의 작품들을 더 보고 가야겠다 싶어 시내의 무하 박물관을 찾았다. 우리 여행사 패키지 관광의 경우, 관람시간도 고려해야 하고 입장료도 있고 하니 무하 박물관이 여행 일정에 들어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입장료가 우리 돈으로 만 오천 원 정도 되니, 체코 물가 치고는 그래도 비싼 편이다. 한국에서는 만 오천 원 돈이 별게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외국 나가서 살며 그쪽 돈으로 바꿔 계산할라치면 그게 꽤 큰돈으로 느껴진다.


무하 박물관을 가서 그의 작품들이야 당연히 실컷 볼 수 있었지만 사진 촬영은 금지돼 아무 그림도 못 찍고 나와 아쉬웠다. 소위 ‘인증 샷’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저작권 운운하는데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 요즘 같은 세상에 그게 뭔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카메라 플래시 문제 때문에도 그런가 싶은데 영국 대부분의 공립 미술관 또는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등은 사진 촬영을 허용하고 있으니 꼭 그게 이유의 다인 것만은 같지 않다. 내가 가봤던 유럽의 미술관 중 사진 촬영을 허가하는 여부는 반반 정도 되는 것 같다.


무하 박물관에 가서 정작 무하의 그림이 아닌 뜻밖의 사실로 놀랬던 건, 관람객의 대부분이 일본인 관광객들이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단체 관광객이 아닌 개별적으로 이곳을 찾은 이들이었다. 프라하 시내에서 한국인, 중국인 관광객들은 자주 볼 수 있어도, 일본인 관광객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워낙 성향이 조용히 다니는 사람들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이 미술관에는 유독 일본인들이 붐비는 것이 신기했다. 이곳에서도 일본인들은 역시 아주 조용하게 그림을 관람하고 있었다.


언젠가 이태리 피렌체에서 중국식당이 눈에 띄어 들어갔는데, 마침 이십 여 명 정도가 되는 일본인 단체 관광객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세상에나, 어쩌면 서로들 간에 싸운 사람들처럼 그리도 말 한마디 없이 식사들을 하고 있는지, 오히려 부부끼리만 간 우리의 떠드는 소리가 들릴까 봐 눈치를 살펴야 할 정도였다.


일본인들은 상대적으로 개인으로 여행하는 이들이 많고, 또 개인주의적 성향도 강해 보인다. 이런 점에서 동양인들 중에서 일본인들이 상대적으로 서양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일본인들의 개인주의적 성향이, 사회와 별로 교섭을 하지 않을 때 자폐적인 것으로 빠지기도 하는데 일본의 오타쿠 또는 마니아 문화가 이를 반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일본인들은 무하의 그림 역시 마치 ‘스토킹’ 하듯이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하타노 세츠코라는 일본인 한국문학 연구자가 있다. 그녀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인 이광수 연구 전문가다. 이광수가 초기 동경 유학 시절에 쓴 <어린 희생>(1910년)이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이광수는 이 작품을 발표하면서 외국 소설을 번역한 것이라 밝혔다. 우리는 본인이 그리 말했으니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또 그 외국소설이 뭔지에 대해서도 큰 관심이 없었다.


하타노 교수는 이광수 유학시절 그의 독서와 영화 관람 목록을 꼼꼼히 재구성했다. 그리고 그 <어린 희생>이라는 작품이 외국소설이 아니라 당시 동경에서 상영된 외국영화의 번안 작품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하타노 교수는 그 영화와 관련된 당시의 신문기사 등 여러 자료들을 집요하게 찾아내 <어린 희생>의 실체를 밝히고 있다. 무하 박물관에서 그림을 뚫어져라 보며 무하에 몰두하고 있는 일본인 관광객들을 보면서 하타노 교수를 떠올린 건 너무 비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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