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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의 골드 스트라이크 호텔​

by 양문규

미국 와서 일주일 만에 서둘러 차는 구입했지만, 차를 갖고 내가 살던 바깥으로 선뜻 나서지는 못했다. 원래 겁이 많은 나는 강릉서도 차를 사고 난 한참 후에야 대관령을 넘고 서울까지 가보는데도 상당한 시일이 흐르고 나서였다. 그런데 여기 와서 알게 된 유학생 부부가 자신의 조카들이 한국서 놀러 와 로스엔젤리스(이하 엘에이)를 가려하는데 우리 보고 같이 가지 않겠느냐 하는 제의를 해왔다.


우리 가족끼리만 선뜻 장거리 여행에 나서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차, 얼씨구나 싶어 그들을 쫓아가기로 했다. 유타에 사는 유학생들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기회가 되면 엘에이를 가고 싶어 했다. 그곳이 대처이기도 하지만 코리아타운도 있고 한국 음식점도 많아 그곳에 가서 향수를 달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 유학생은 여행을 떠나면서부터 엘에이의 ‘북창동 순두부’ 갈 계획을 염불 외듯 했다. 그래서 이들을 쫓아가기로 했는데 그 참에 여행과 관련하여 배운 점도 많지만 덥석대고 쫓아갔던 것이 아무래도 유학생 부부와는 나이 차이도 있어서 수월한 여행은 아니었다.


엘에이는 유타서 밤을 새 가며 꼬박 하루를 운전해야 가는 다소 먼 곳이기는 하나, 차를 운전해서 갔다 올만한 거리이기는 하다. 비행기로는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니 말이다. 유학생들끼리는 팀을 이뤄 교대로 운전을 해가며 밤새워 간다고 하지만, 우리야 그럴 수는 없고 라스베이거스에서 하룻밤 묵고 이틀에 걸쳐 이동하는 것으로 했다. 라스베이거스까지는 엘에이까지 가는 거리의 대략 삼분의 이 정도가 됐다.


유학생 말에 의하면, 라스베이거스의 야경이 큰 볼거리인데 그 야경을 근사하게 보려면 유타에서 낮 시간에 출발해야 한다 했다. 미국서 처음 떠나보는 장거리 여행이라 제법 설레기도 했고, 초반에는 유타 남부와 애리조나 귀퉁이를 걸쳐 가게 되는데 그곳은 대협곡 이른바 캐년의 장관 때문에 지루하지 않았다. 그러나 네바다 주를 들어서면서부터는 선인장이나 기껏해야 사람 허리 높이밖에 안 되는 키 작은 사막 식물들, 그 조차 듬성듬성 돋아나 있는 황량하기 짝이 없는 사막의 풍경이 이어지면서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네바다 모하비 사막은 과거 핵실험장의 주 무대였다. 이곳에 핵실험장이 세워진 것은 1951년인데. 지금까지 수 십 년 간 1000개 이상의 핵무기가 터졌다고 하니, 이곳은 어떻게 보면 끔찍한 곳이기도 하다.


밤이 되어 캄캄해지니 광활한 사막 사이로 간신히 나있는 도로를 차 전조등에 의지하여 가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여행이 계속되었다. 얼마나 라스베이거스가 기다려졌는지 네온사인으로 장식된 건물이 눈에 띄는 마을만 나타나도 그게 라스베이거스인지 알고 반가울 정도였다. 물론 모텔과 주유소 등 집들이 몇 채 있는 곳을 라스베이거스로 착각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규모가 있는 마을의 네온 불빛만 보면, ‘아, 이젠 영락없는 라스베이거스구나!’ 하길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러던 중 밤 아홉 시 정도 돼서 구릉지 같은 위치에서 라스베이거스 시를 내려다보는 지점에 이르게 됐다. 황량하고 끝이 없는 묵시록과도 같은 사막의 끝에 나타난 라스베이거스의 야경은 상상을 초월했다. 강릉서 서울을 다녀올 때 늦은 밤 대관령을 넘으면서 보는 강릉의 야경은 반짝거리는 사금파리 한 줌을 뿌려 놓은 것 같았는데, 라스베이거스의 야경은 우주 벌판을 범람하는 별들의 대하(大河)였다. 세상에 사막 한가운데 인공의 힘으로 저런 일을 벌이다니 - 미국 자본주의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라스베이거스 시내로 진입하였다. 메인 스트리트인 라스베이거스 불바드(Blvd)에는 네온의 꽃밭과 덩굴 숲이 펼쳐지고, 네온사인 글자들이 춤을 추기도 하고 방울방울 흐르기도 하고 폭발하기도 한다.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라는 영화에서 본 장면들이 실제로 보이니 신기하기도 하나, 우리의 목적은 잠을 자러 이곳을 두른 것이기에 시내를 관통해 서둘러 숙박지가 있는 시 외곽으로 방향을 돌렸다. 유타에 와있는 한국 사람들 중에는 라스베이거스가 좋아 몇 번이고 이곳을 찾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가족들과 라스베이거스에 가게 되면 반드시 서커스, 마술 공연 등을 보고 오라고 자랑스레 권유도 했지만, 우리는 형편이 어려운 유학생을 쫓아온 여행이라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다소 후회도 되지만 사실 나는 라스베이거스까지 기를 쓰고 오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다 나가 버려 빨리 숙소로 기어들어가고 싶었다.


도시 외곽으로 나가니 일단 분위기는 한산해졌다. 우리가 묵은 호텔 이름은, 도박도 시답게 이름 하여 ‘골드 스트라이크(Gold strike)’ 호텔, ‘일확천금의 금광을 터뜨린’ 호텔이다. 이들 호텔은 한국의 설악산 관광단지 같은 데 가면 볼 수 있는 대형 콘도들을 몇 배로 확대해 놓은 크기의 호텔들이다. 말 그대로 특급호텔임에도 숙박료는 다른 도시의 모텔 숙박비에 훨씬 못 미치는 30불 정도다. 도박 손님들을 유치하기 위한 라스베이거스라는 도시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랄 수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숙박비만 싼 것이 아니고 호텔 안 뷔페식당의 음식 값도 비교적 싸서 돌아올 때는 유학생 부부의 기분도 맞춰줄 겸 한 끼 식사를 그곳서 대접하기도 했다.


다른 지역과 달리 이곳의 호텔 로비에는 거개가 슬롯머신, 룰렛 머신 등으로 가득 찬 거대한 카지노장이 있다. 이런 식의 배치는 라스베이거스 호텔에서는 일반화되어 있는 듯하다. 따라서 우리가 묵은 골드 스트라이크 호텔을 들고나자면 반드시 이 카지노장을 거쳐야 했다. 처음 우리 일행은 갖은 짐 보따리에 누추한 행장으로 남부여대하여 이 화려한 카지노장을 통과해야 되는 것이 창피했는데, 웬걸 괜한 걱정을 한 것이 슬롯머신 앞에 있는 자들은 우리 일행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예 관심 밖이었다. 현대판 미궁과도 같은 카지노장 안에는 도박기계에 몰두한 인간들과, 수도 없이, 쉴 새 없이, 굉음을 내면 돌아가는 수박, 오렌지 그림과 러키 세븐이 적힌 기계들 속에서 “척척척 … 촤르르…�동전 쏟아지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화려한 카지노 호텔에서 돈을 아낀다고 궁색하게도 방에서 밥까지 해 먹었다. 지금 생각해도 좀 낯이 뜨겁다. 물론 해 먹는 티를 내지도 않고, 호텔 방 안에 밸지도 모를 김치, 된장찌개 냄새를 없애기 위해 커피를 끓여 놔둬 보기도 하며, 취사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자 깨끗이 청소도 해놓곤 했다. 그러나 호텔 청소를 주로 도맡고 있는 라티노 아줌마들이 이를 왜 몰랐으랴! 그래서 남들도 다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침대에다 팁 2불은 꼭 놓고 나오는 것으로 용서(?)를 구하고자 했다. 유학생은 그럴 필요도 없다고 했지만 말이다. 우리 가족은 이렇게 전기밥통을 들고 다니느라고 결국 뚜껑 일부가 깨져 한참을 테이프로 붙이고 다녔는데, 미국을 떠날 때는 완전히 밑천 뽑았다는 기분으로 과감히 버리고 왔다.


다음날 골드 스트라이크 호텔에서 눈을 떴을 때 호텔 창밖을 내다보니 라스베이거스의 황당한 풍경이 나타났다. 이곳은 도시 외곽이라 더 그러했겠지만 들어올 때의 화려한 야경과는 달리 온통 삭막하기 짝이 없는 사막의 풍경이었다. 황량한 벌판에 인간이 만들어 놓은 구조물들과 억지로 심어놓은 야자수들이 웅기중기 놓여 있었다. 아침에 시내로 나가보니 지난밤의 풍경과 대비되어 더 황당한 느낌이었다. 여행 작가 빌 브라이슨(Bill Bryson, 1951~)이라는 이는 이러한 풍경을 “갑자기 촬영이 끝난 을씨년스러운 영화 세트장”같다고 했다.


나의 경우는 그 광경이 마치 화장이 지워진 연예인의 후줄근한 얼굴을 보는 것 같았다. 아니 연예인의 맨 얼굴은 때로는 신선하기라도 하겠지만 아침의 라스베이거스는 불빛 아래서는 잘 알아차릴 수 없었던 화장독이 오른 여인의 얼굴이었다. 화려한 네온사인들이 이런 라스베이거스의 맨 얼굴들의 정체를 가리고 있었던 셈인데, 이렇게 맨 얼굴을 가리는 화려한 야경이 미국 자본주의의 괴력이라는 점을 새삼 생각하게 했다. 라스베이거스는 나에게 번지수도 맞지 않고 어느 한 구석 어울리는 곳이라고는 없는 데라는 생각에 서둘러 빠져나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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