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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에이 캠핑 사이트에서

by 양문규

유학생 부부를 쫓아간 우리는 돈을 아끼기 위하여 엘에이 시내 숙박업소에 묵은 게 아니라 엘에이 중심부에서도 차로 대략 한 시간 넘어 떨어져 있는 조그만 마을의 캠핑 사이트에 숙박 장소를 정했다. 말이 한 시간이지 왔다 갔다 해보니 그 유명한 엘에이의 러시아워에 걸리면 한도 없고 끝도 없었다. 이곳 텐트촌에 숙박하는 이들은 RV(recreational vehicle) 차량을 사용하는 백인 말고는 대부분이 돈이 넉넉지 않아 보이는 라티노들이었다. 나는 젊어서도 별로 안 해보던 캠핑을 나이 마흔이 넘어서 해야 되는 것에 불편하기도 했으나, 주체성(?) 없이 남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여행자가 감수해야 되는 대가라 여겼다.


그러나 텐트촌 숙박에서 진짜 문제가 된 것은, 7월 말 한참 여름인 때고 오렌지와 레몬 나무가 자라는 캘리포니아지만 일교차가 상당히 나서 밤에는 엄청 추워진다는 점이었다. 내 기억으로 밤에는 섭씨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해외 토픽을 보면 가끔 열대나 아열대 국가에서 영상의 기온에도 사람이 동사하는 경우가 있다는데 이곳 새벽에 우리가 그렇게 될 판이었다. 과장이 아닌 게, 언젠가 2월에 베트남 북쪽을 여행할 때도 영상 5도 날씨에 기온이 급강하했다고 그쪽 사람들이 파카를 껴입고 사시나무 떨 듯 떨고들 있었던 게 생각난다. 어쨌든 첫날은 참았는데 다음날은 어쩔 수 없이 월마트에 가서 사람 숫자대로 침낭을 구입했으니, 모텔에 안 가려고 아낀 돈을 죄다 써야 했다.


우리는 엘에이에 도착하던 그 날은 숙박지에도 두르지도 않고 곧장 엘에이의 코리아타운으로 직행했다. 유학생이 저녁식사는 ‘북창동 순두부’ 식당에 가서 꼭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순두부 타령은 여행 떠나기 전부터 계속했는데, 그 타령이 어이없어 보이기도 했지만, 오랜 타향살이에서 오는 고향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이해도 되었다. 순두부 집엔 한국사람 말고도 미국인들이 코를 박고 시뻘건 순두부찌개를 먹고 있었다. 주인아줌마는 이 식당은 모든 것이 한국 음식점과 똑같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단 한 가지 다른 점은 식사 마치고 나갈 때 여기는 미국이니 팁은 놓고 나가야 된다는 점으로 이를 잊지 말 것을 강조했다.


유학생 부부는 식사 후 한인 마켓에 가서 장도 봤는데 말이 장이지 웬 쥐포와 라면을 그리 많이 사는지, 하긴 우리 애들도 한국서 사 먹던 과자들을 닥치는 대로 장바구니에 넣었다. 장을 보고 나오는데, 코리아타운에 ‘수학 보습학원’이라는 한글 간판이 달린 건물을 보고 정신이 번쩍 났다. 한국서 우리 애들 학원 보내던 일을 잠시 새까맣게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부터 우리는 캠프촌 숙소에서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며칠간에 걸쳐 왔다 갔다 하게 됐다. 이곳을 가기 위해서는 엘에이 시내를 뚫고 가야 했는데 시내 교통은 서울과 비슷하게 복잡하다. 단지 도심 고속도로의 교통 소통 상태는 서울보다 좋아 상당한 속력으로 차들이 질주하고 때로는 껴들곤 하여 아찔할 때가 많았다. 유학생이 겁을 주는데 차가 껴들 때 멕시칸 운전자들과 괜히 눈을 맞추지 말라고 했다. 그들 중에는 다혈질인 자들이 많아 화나면 총질까지 불사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뻥이 들어간 얘기지만 어쨌든 한국에서는 강릉, 미국에서는 유타 같은 조용한 곳에 살다가 엘에이에서 운전을 하자니 오금이 저렸다.


밤늦은 시간 돌아올 때는 늘 악명 높은 엘에이의 러시아워도 경험해야 했다. 그럼에도 차가 막히는 게 차라리 낫던 게, 차들이 밤에 조금만 속력을 내면 죽어라고 유학생 차 뒤꽁무니만 쫓아가던 나는 그 차를 놓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학생은 내 차를 다시 발견할 때까지 어느 지점에서고 기다려주곤 했는데, 어두운 밤에 수많은 차량의 행렬 속에서 상대방 차를 확인하는 방법은 전조등이나 후미등의 모양을 잘 알아두는 수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무지했던 게 아무리 남을 졸졸 쫓아다니는 여행이라지만 외국의 낯선 곳을 여행하면서 어떻게 자동차 교통지도는커녕 내가 묵고 있는 곳의 주소조차 알아두고 다니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길을 잃어 경찰이 물어본다 해도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을 것이다. 당시엔 휴대전화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엘에이 갔다 온 이후로 우리 가족끼리만 여행하게 되었을 때는 50불인가 회비를 내고 트리플 에이(AAA)의 회원으로 가입했다. 여기 회원이 되면 여행하는 지역의 지도를 제공받고, 여관 예약을 주선받기도 하며, 차 사고가 났을 때 견인 서비스를 제공받는다든지 등의 혜택을 받게 된다. 내가 방문했던 트리플 에이 사무소에는 할머니 사무원이 있었는데, 그 할머니가 뭘 알랴 싶기도 했지만, 여행할 곳을 얘기해주면 단순히 지도만 내주는 게 아니라, 지도에다 색연필로 여행길을 그려주며 자상하게 안내를 해줬다. 이로부터 십 년도 훌쩍 넘어 유럽에서 자동차로 여행하게 됐을 때는 내비게이션이라는 게 생겨 이런 것들이 모두 옛날 얘기같이 돼버렸는데, 과거 미국에서 내비게이션 없이 여행 다녔던 게 신통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 같이 공간지각 능력이 평균 이하인 사람도, 한번 해보고 나면 미국처럼 자동차로 여행하기 쉬운 곳도 없다. 대부분 도로에 일정한 간격으로 출구(Exit) 번호 표시가 있어 지도 한 장만 달랑 들고도 시간과 거리를 대충 가늠하며 미국 전역을 어렵지 않게 여행한다. 특히 우리와 달리 도로의 입‧ 출구가 한 곳에 있어, 설사 출구를 지나쳤다 하더라도 곧 다음 출구로 나와 바로 같은 장소에 위치한 입구로 들어가서 되돌아가면 됐다. 도로 중앙 분리대에 넉넉히 마련해놓은 풀밭으로 된 안전지대도 인상적이었다. 미국 고속도로 안전지대의 총면적을 합치면 남한 땅 크기만 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의 눈이란 게 간사해서 그런 널찍한 길에 익숙해 있다가 한국에 막 돌아왔을 때 고속도로의 자동차들을 보니 마치 트랙이 있는 실내 자동차 경기장서 시합을 하듯이 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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