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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랜드와 유니버설 스튜디오, 그리고 미국

by 양문규

엘에이 여행의 첫 번째 행선지인 디즈니랜드를 갈 때, 우리를 안내한 유학생도 몇 번이고 길을 물어가며 어렵사리 찾아가야 했다. 힘들게 도착해 디즈니랜드에 입장하려니 입장권을 1일, 2일, 3일짜리 및 연간 이용권 등으로 나눠 판다고 했다. 우리는 하루만 볼 것인지 이틀을 볼 것인지를 갖고 망설였다. 나야 하루만 보고 끝내고 싶었지만 애들은 그게 아니지 않은가? 결국은 일단 1일 입장권을 구입하기로 했는데 그렇게 결정한 것이 잘했던 게 우리 애들이나 유학생 조카애들이나 디즈니랜드를 시큰둥해했다. 못다 본 곳을 다음 날 다시 보자고 했더니 모두들 고개를 저었다. 이유는 한국서도 다 본 것들이라는 거다. 얘기인즉슨 디즈니랜드가 한국의 에버랜드, 롯데월드보다 나을 게 없다는 말이다. 글쎄 엘에이 디즈니랜드는 플로리다 올랜도에 있는 디즈니월드를 만들기 위한 밑그림에 불과했다는 말도 있으니, 애들이 올랜도로 갔다면 또 얘기가 달라졌을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올랜도 건 뭐건 캠핑 촌에서 엘에이 도심을 뚫고 디즈니랜드까지 오느라고 정신이 쏙 빠져 애들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 관람하는 것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그래서 애들이 뭐 한다고 할 때마다 쉬는 게 약이다 싶어 아무것도 안 하고 맥없이 쳐다만 보았다. 나는 여행에는 관심이 많지만 정작 여행을 전혀 즐기지 못하는 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단지 나는 디즈니랜드 구경이 거의 끝나갈 즈음 엉뚱한 데서 남모를 감회에 젖어버렸다. 그것은 저녁 해 질 무렵 백설 공주, 미키마우스, 구피, 도날드 덕 등, 월트 디즈니가 제작한 만화의 다양한 캐릭터 주인공들이 행진하는 퍼레이드에서였다. 화려한 고적대 밴드나, 불꽃놀이에 감동을 받은 게 아니라, 밴드가 연주하는 오펜바흐(Offenbach, 1819~1880)의 곡들 때문이다. 그 곡들 대부분은 디즈니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으로 쓰인 곡들인데, 이 곡들이 나로 하여금 디즈니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던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돌아가게 해 줬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볼 때 그 내용보다는 디즈니가 작품에 사용하는 음악이 훨씬 흥미로웠다. 미키마우스가 지휘하는 로시니(Rossini, 1792~1868)의 <빌헬름 텔 서곡>은 어린 시절 내가 클래식 음악에 입문(?)하는 계기가 된 곡이기도 하다. 서곡 마지막 부분에 트럼펫으로 시작되는 피날레는 워낙 좋아해 입술로 갖은 방정을 떨며 나팔 소리를 흉내 내 부를 정도였다. 어린 마음에도 디즈니는 어떻게 저리도 음악과 영상 속 캐릭터들의 동작 또는 상황이 딱 맞아떨어지게 만들었을까 신기할 정도였다. 디즈니는 자신의 작품에서 캉캉 춤곡이 나오는 오펜바흐의 <천국과 지옥 서곡>도 즐겨 사용했지만, 그것 말고도 오펜바흐의 여러 오페라 또는 오페레타에 나오는 아름다운 아리아의 선율들을 작품에 많이 활용했다. 그 영향으로 나는 현재 오펜바흐의 오페라 거의 전부를 시디로 갖고 있을 정도다. 나는 디즈니랜드 여행이 힘들었지만 오펜바흐의 곡으로 재충전돼 캠프촌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다.


다음날은 할리우드에 있는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갔는데, 디즈니랜드와 달리 애들도 나도 모두 만족스러워했다. 이곳에 입장하면 누구나 ‘백롯 트램 투어’(Backlot Tram Tour), 즉 트램을 타고 영화 야외 세트장(백롯)을 구경하며 다니게 된다. 불타는 뉴욕의 도심이 나오는 <킹콩>,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십계>, 철교가 붕괴되는 <콰이강의 다리>, 풀장이 피로 물드는 <조스> 등 명화의 장면이 세트장에서 그럴싸하게 재현된다. 그러나 사람들을 정작 즐겁게 하는 것은 그런 장면들을 연출하기 위해 영화가 일종의 속임수를 쓴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해 준다는 점이다. 대중문화 평을 자주 쓰는 강준만 교수의 말대로 영화적 트릭과 기만을 또다시 오락의 대상으로 삼는 할리우드의 오락 정신을 기막히게 보여주는 것이다.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1946~) 왈, 영화를 만드는 것은 사람들이 빠져드는 기술적인 환상을 만드는 것으로, 영화기술을 요리하되, 그것을 잘 감추어 사람들이 영화관의 좌석에 앉아 있는 동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데 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그래서 줄곧 나한데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았다. “미국 문화가 천박하다고 경멸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런 경멸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천박하다는 게 뭔지 모르지만 일단 어른이고 애들이고 모두들 즐겁다고 열광하지 않는가? 감동은 물론 흥미와 교훈이 잘 어우러져야 하지만, 쾌락이나 흥미가 극점까지 가게 되면 그것이 감동이 될 수도 있는 거야! 유럽 영화 아무리 심각하고 좋은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뭘 해? 대중이 보고 즐거워해야 하지 않는가?”


우리 학교 어떤 선생님 별명이 ‘우리 미국’이다. 이 양반은 미국에 안식년을 갔다 온 이후 말끝마다 ‘우리 미국은 이러이러 한데’라며 미국에 대한 선망과 찬양을 입에 달고 다녔다. 나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양반과는 거꾸로 미국을 어떻게 하면 삐딱하게 얘기해야 할지로 늘 전전긍긍해한다. 디즈니랜드 역시, 보드리야르(J. Baudrillard, 1929~2007)의 입을 빌려 결국은 아메리칸드림으로 표상되는 허구의 미국을 구축한 것이라든지, 월트 디즈니가 매카시 광풍 당시 할리우드 내의 정부 끄나풀이었고, FBI 비밀요원이라든지 하는 얘기 따위를 입에 올리기를 즐긴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도 애들하고 함께 기껏 좋다고 보고 나서도 뭔가 토를 달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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