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옐로스톤의 ‘노란 돌’ 유감

by 양문규

옐로스톤 공원은 유타서 북쪽으로 간다. 유타 바로 위쪽인 아이다호를 지나 미국에서 인구수가 가장 적은 주라는 와이오밍 지역으로 해서 들어가는데, 우리 사는 데서 승용차로 일곱 시간 정도 걸리니 그랜드캐니언보다는 약간 가까운 거리에 있는 셈이다. 옐로스톤은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의 세 배가 넘는 방대한 지역이나, 나의 여행이 항상 그러하듯이 이박 삼일 정도로 최소화해 다녀오기로 했다. 옐로스톤 공원 내 숙박시설은 몇 개 되지도 않고 그 유명한 간헐천이 솟는 올드 훼이스풀(Old Faithful) 지역의 숙박 단지서 자려면 적어도 반년 전 예약해야 한다고 한다. 후~ 그렇게 오래전에 예약해야 한다니 어차피 못 잘 거여서 나는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옐로스톤은 미국 아니 전 세계 국립공원의 역사를 연 곳이다. 우리가 갔던 8월 25일이 바로 옐로스톤 버스데이(birthday), 즉 옐로스톤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날이라 무료입장을 했다. 물론 다음 날에는 다시 입장료를 냈는데 그때는 내셔날 파크 패스(National Park Pass)를 50불 주고 끊었으니 그게 그거였다. 단 이 패스만 있으면 미국의 국립공원을 1년 동안 무료로 드나든다니, 통상 국립공원의 입장료가 20불인 걸 감안할 때 본전은 찾는 셈이다.


미국이나 캐나다의 국립공원을 다니노라면 자연을 보존하고 보호하려고 하는 이 나라 사람들의 갸륵한 정성들을 누구나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박진빈의 <도시로 보는 미국사>를 읽자면 그게 다는 아니다. 미국 백인들이 국립공원 제도를 만든 것은 바로 원주민 정복을 마치고 난 직후다. 미국은 이 제도에 대해 자연과 생태계 보존이라는 차원에서 뿐 아니라 관광‧역사 자원이라는 차원에서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다. 문제는 국립공원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원주민들의 땅을 빼앗고 이곳을 미국인들이 여가를 보내기에 최적화된 공간으로 개방했다는 점이다.


옐로스톤의 프레리(prairie, 대평원)에는 옐로스톤의 자랑거리인 버펄로가 군데군데 눈에 띈다. 어떤 때는 버펄로들이 차도를 따라 이동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때는 차들이 통행이 가능해질 때까지 몇 시간이고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면서 은근히 이런 일 당한 것을 자랑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그냥 버펄로 무리를 배경으로 차 밖으로 살짝 나와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구경을 대신했다. 버펄로가 때로는 관광객들을 습격도 하는지, 안내소에는 이러한 습격 장면을 촬영한 것을 계속 비디오로 방영하면서 관광객들에게 주의를 촉구하고도 있었다.


1870년대만 해도 이 대평원에는 1,500만 마리의 버펄로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10년도 채 안 돼 들소들이 사라져, 믿기 어렵게도 이제는 800마리로 줄었다. 그 사이 엄청난 살육이 진행된 것이다. 조경학자 고정희는, 들소들이 모여 살던 프레리는 백 퍼센트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인디언들의 손때가 묻은 경관이었다고 한다. 초지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언젠가는 숲으로 천이하게 돼있는데, 들소를 사냥해서 먹고 산 인디언들은 정기적으로 불을 질러 초원 상태를 유지하는 ‘들불 관리’ 기법을 일찌감치 적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미국문명이 이 프레리를 자기들의 이상으로 여기며 오히려 보호하고자 하는 아이러니가 진행되고 있다.


옐로스톤의 또 다른 최고의 구경거리는 역시 증기와 유황 냄새로 가득 찬 수많은 온천들과 간헐천(Geysers)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간헐천이 올드 훼이스풀이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간헐천의 3분의 2가 여기서 흐른다고 한다. 우리라면 이런 곳에 온천장 호텔이 들어서도 수 백 개는 들어섰을 텐데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미국 사람들은 그런 것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이런 나의 환경파괴적인 생각을 꿰뚫어 보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일이 일어났다


우리 가족은 이곳을 돌아다니자니 유황 냄새도 짙게 나고 온천마다 증기에 둘러싸여 그곳을 구경하며 걷는 트레일은 마치 어디 황천길을 걷는 느낌이었다. 온천 주위의 돌들도 온천수와 석회암이 만나 누렇고 노란색들로 변해 특이하게 느껴졌다. 초등학교 6학년생인 아들애가 그 노란 돌들이 신기했는지, 자기 말로는 만져만 보려고 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 사실도 몰랐는데 어떤 백인 아줌마가 아들애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마구 야단을 쳤다. 애는 그 돌을 만지작거리기만 했는데 아줌마가 소리를 치니 놀래서 얼떨결에 돌을 주머니에 넣은 것 같다. 나는 그렇게 화를 내는 미국 사람은 처음 보았는데 미국 사람이라고 다 친절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줌마가 화낸 이유인즉슨 애가 국립공원의 자연물을 불법으로 소지하고자 했다는 것인데 흥분한 아줌마는 ‘파크 레인저’(Park Ranger, 국립공원 감시원)를 부르겠다고 하며 아우성을 쳐댔다. 물론 내가 사과의 말을 전하기는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미국 아줌마가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어린애가 멋모르고 한 짓을, 무슨 대역 무도의 짓을 저지른 것같이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는지 이해가 안 갔다. 이러한 행위는 내가 보기에 미국 시민의 뛰어난 환경주의 정신의 소산이라기보다는, 동양인들을 뭔가 깔보는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어쩐지 우리가 떠들고 다니는 모습을 뒤에서 쫓아다니며 계속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아줌마의 시선을 느껴왔던 차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들애는 옐로스톤 공원이 왜 ‘옐로스톤’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는지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디즈니랜드와 유니버설 스튜디오, 그리고 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