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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Jun 16. 2019

그랜드캐년과 '산 멀미'

고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천관우의 그랜드캐년 기행문이 실려 있었다. 그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절 영어 선생님께서 당시 무슨 교원 해외연수에 선발됐던 것인지, 미국을 다녀와서 그랜드캐년 얘기를 해주셨던 게 더 기억에 남아 있다. 그분은 시니컬하기는 하지만 유머러스하기도 하셔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당시 우리가 공부하던 영어 교과서 첫 페이지에 하버드 대학 교정을 배경으로, 어떤 여학생이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한 짓궂은 학생이 선생님께 그 사진을 가리키며 하버드 대학에 갔을 때 이 여학생도 보셨냐고 여쭤 봤다. 선생님은 사진의 여학생을 가리키면서 놀란 표정을 짓더니만, “아니, 제인(Jane)이 어쩐 일로 여기 앉아 있냐?!” 하셔서 우리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그런 선생님이기에 선생님의 그랜드캐년 이야기가 무척이나 기대됐고 또 그 얘기를 듣노라면 오늘 수업은 다 가게 될 거라는 즐거운 기대를 했다. 그런데 의외로 싱거운 얘기로 끝났다. 그랜드캐년의 장관은 한마디도 얘기하지 않고 그곳서 관광버스를 운전하는 한 기사 얘기를 하셨기 때문이다. 그 버스기사는 평생을 그랜드캐년 관광버스를 운전했는데, 선생님이 한국에서 왔다니까 이 ‘지겨운’ 그랜드캐년을 벗어나 한국이라는 나라에 단 한 번이라도 여행을 가봤으면 하는 게 자기의 소원이라고 얘기를 해서, 그 운전사와 선생님이 서로 연락처 등을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그런 말씀 끝에 결론인 듯싶게 그랜드캐년 보고 온 것을 크게 부러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우리들은 선생님의 그 말씀과는 전혀 상관없이 더욱더 그곳을 가보고 싶었다. 그 후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막상 내가 그랜드캐년을 가보니 선생님께서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하는 짐작은 해보게 됐다. 그랜드캐년 가는 도중엔 브라이스 캐년과 그 캐년의 입구에 위치한 레드 캐년도 두르기도 했다. 레드 캐넌은 글자 그대로 붉은색의 바위와 절벽들로 이뤄져 있는데, 어떤 바위들은 뾰족한 돌기둥 위에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싶게 얹혀 있기도 했다. 중학교 때 봤던 그레고리 펙 주인공의 서부영화 ‘마켄나의 황금’에서의 그 장면들이다. 이들 돌 탑, 돌 성루 또는 돌장승 같은 것들이 우뚝 우뚝 선 독특하고 거대한 바위 군으로 이뤄진 브라이스 캐넌은, 저녁노을에 비끼면 더욱 신비하고 아름답게 보인다는데, 시간을 맞추지 못해 도착했을 때 저녁노을은 이미 져버렸다.

 

다음 날 광대한 사막을 지나 학수고대하다 만난 세계 최대의 골짜기 그랜드캐니언의 광경은 ‘필설 난기(筆舌難記)’였다. 새 무리들이 발 밑 저 아래로 날아다니는 깊게 파인 골짜기의 전체 길이는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고속도로 길이보다 좀 더 길다고 한다. 괴테(1749~1832)가 『이탈리아 기행』(1786)에서 나폴리 해안의 베수비오 화산인가를 보고 “이 모든 것을 서술할 감각 기관이 내게는 없다.”라고 얘기를 한 것과도 같다고나 할까? 아마 영어 선생님께서도 그 광경을 우리들에게 설명하기 힘드셨을 것이다. 나는 그랜드캐년뿐만 아니라 유타 주의 다른 캐년들의 갖가지 풍경을 보러 다니면서, 그 신비하고 장엄한 크기 앞에서 인간 삶의 알 수 없는 근원에 대하여 오히려 슬픔조차 느끼며 허무한 감정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다, 캐년의 그 장관들을 처음 마주칠 때는 늘 '와와'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놀라워하지만, 거짓말 안 보태고 몇 번 소리 지르고 나면 나중에는 나머지 풍경들이 다 비슷해지며 시큰둥해지기 시작한다. 오히려 내 경우 고소공포증까지는 아니더라도 높은 데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현기증도 나는 데다가,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들애가 수 천 길 될지 모르는 낭떠러지 위를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것에 놀라 조심하라고 소리를 지르며 쫓아다니느라 더 정신이 없었다. 마치 아들애는 매일 나에게 야단을 맞기만 하다가 이 기회에 아빠의 용렬함을 비웃으려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도 도처에 협곡 사이로 난 길로 이뤄진 캐년 지역을 지나다 보면, 나는 늘 무지막지한 산들이 차를 덮쳐 누를 듯싶은 착각 속에 ‘산 멀미’가 날 정도였다. 이러다 보니 캐년의 풍경보다는 오히려 한국의 경치가 그리워질 때가 많았다. 내가 근무하던 곳인 강릉은 태백산맥과 동해 바다가 만나는 아름다운 곳이다. 설악산으로 올라가는 7번 국도에서 작은 어촌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동해 바다, 계곡 물이 흘러내리는 골짜기를 끼고 가는 소금강 산길 또 그 길을 걷다 보면 어김없이 마주치게 되는 고즈넉한 사찰들! 캐년에 비하면 참으로 아기자기한 풍경들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중세의 신학자 후고(Hugo von St. Viktor, 1097~1141)라는 이는, “자신의 고향을 달콤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직 주둥이가 노란 미숙아다”라고 말했다지만 어쩔 수 없는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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