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의 친일과 『아버님 춘원』

by 양문규

1.

국문과에는 ‘작가론’이라는 제목의 수업이 있다. 문학작품을 연구하기 위해 그 작품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작가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다. 국문학과 학부 학생의 졸업논문 대부분은 작가론의 방법으로 써질 정도로 문학연구에서 가장 기초적인 방법론이라 하겠다.


나 역시 학부 시절에 작가론 수업을 들었다. 수업 중 한국 현대 작가 한 명을 선택하여 작가론을 발표하는 과제를 하게 됐다. 나는 이광수를 선택했는데 나 혼자서 이광수를 발표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한 명과 짝을 지어 발표를 하게 됐다.


나의 짝은 여학생 S였다. S는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다. 성격도 조용하고 차분한 편이었는데 졸업을 하고 교사 생활을 얼마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중에는 선교사인 남편과 함께 동남아 지역 선교를 가서 지금까지 그곳에서 살면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이광수의 친일 행적을 조사하여 그의 문학 작품에 나타난 반민족적 성격들을 밝히고자 했다. 그때만 해도 혈기 방장 하던 시절이라 이광수를 대단히 부정적으로 보며 그를 신랄하게 비판했었다. 교수님한테 칭찬을 받을 것도 내심 기대했었다.


그런데 곧 S의 발표가 이어지면서 그런 기대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S는, 다소 흥분했던 나의 발표와는 달리 아주 차분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발표를 했다. 우선 그는 이광수의 친일에 대해 나와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발표를 진행했다.


S는 이광수 발표를 위해 『아버님 춘원』이라는 책을 주요한 자료로 활용했다. 물론 나는 그러한 책이 있었는지 알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 작가론 연구에서 긴요한 자료 싸움(?)에서 밀린 격이었다.


2.

『아버님 춘원』은 이광수의 둘째 딸인 이정화가 1951년, 당시 이화여고 재학 시절에 썼던 것이다. 출간이 즉시로 이뤄지지 않고 몇몇 이유로 미뤄지다가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간 이후인 1955년에야 출간됐다.


이정화가 실제 이 글을 집필했던 바로 전 해,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1950년 7월 12일 아버지 이광수는 납북돼 간다. 그녀가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북쪽으로 끌려간 아버지의 생사 여부조차도 확실히 모르고 있었을 때였다.

이 글이 책으로 출간되던 시기 즈음엔 아버지의 사망을 짐작했으리라 본다. 실제 병석에 있던 이광수는 북쪽에 끌려간 바로 그 해 10월 사망했다. 이광수의 자녀들은 이후 미국 대학서 교편을 잡고 그곳 시민권자라 방북해서 아버지 산소를 찾아 성묘를 했다고 한다.


『아버님 춘원』은 아버지 이광수가 납북돼 생사여부도 모르는 상황에서 쓴 것이기에 어린 딸의 피눈물 나는 심정이 담겨 있다. 특히 이 글은 납북의 사연뿐 아니라 친일파로 매도된 아버지를 옹호하기 위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딸 이정화가 아버지와 관련돼 지극히 원통해하는 일은 “아버지는 일제 때에는 일본인에게 잡혀 당겼고, 대한민국에서는 반민법(반민족 행위 처벌법)으로 잡혔고, 공산당은 반동이라고 잡아간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버지는 소설을 쓰시는 재주를 가지고 계셨으니 그것만 쓰고 계셨더라면 그런 일을 당하지 아니하였을 것을 왜 정치에 참견을 하셔서 그 불행을 손수 사시지 아니하면 아니 되었나!” 하면서 매우 안타까워한다.


이광수는 일제 말 적극적으로 친일에 나서는데, 이도 딸 말에 의하면 당시 양주 사릉으로 피신해 사는 아버지가 편히 있지도 못했다 한다. 신문사에서 잡지사에서 친일 하는 글을 써달라고들 내려오는 바람에, 이곳에서도 친일 하는 글을 아니 쓰고는 못 견디게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해방이 되자 서울로 오지 않고 계속 시골서 사 년 동안 돌베개를 비고 주무셨다고 한다. 아버지 생각으로는 친일이 민족을 위하는 길이요 동지를 구하는 길이라고 해서 한 일이 나중에 와서는 민족을 해쳤다 해서 비난과 배척을 받았다는 사실에 힘들어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이것이 자신이 다 부족하고 덕이 없는 까닭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돌베개를 비고 입이 비뚤어져가면서까지 자신을 채찍질하며 당신의 몸을 닦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광수는 반민법 재판에 출두하여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나는 민족을 위해 친일 했소. 내가 걸은 길이 정경대로는 아니오마는 그런 길을 걸어 민족을 위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알아주오.” 『아버님 춘원』에는 수감된 아버지의 병보석을 위해 당시 중앙고 학생이던 저자의 오빠가 재판부에 혈서로 탄원서를 올린 절절한 사연도 나온다.


3.

S는 약간은 눈물 섞인 톤으로 이광수의 친일의 이면을 살피고 그가 이뤄낸 문학적 성취를 폄하하지 말아야 할 것을 주장했다. 역시 교수님의 칭찬이 이어졌다. 특히 남들이 잘 찾아보지 못한 자료를 통해 이광수의 생애를 살펴본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했다.


단 교수님은 S에게, 작가 연구를 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아버님 춘원』은 작가의 혈육인 딸이 쓴 글이기에 이러한 자료는 사실의 진위 여부를 꼼꼼히 살피면서, 작품의 올바른 해석을 위해 자료의 내용을 잘 취사선택할 수 있는 비평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나는 과거 학부 시절, 이광수의 친일행적을 밝히면서 일제의 압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타협, 굴복한 작가, 지식인들을 단죄하고자 했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하면 문학연구는 민족정기의 차원에서 작가를 단죄하거나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친일문학은 일반적 통념과는 달리 외부로부터의 강요가 아닌 대부분이 철저하게 자발적 협력으로 이뤄진다. 다시 말해 친일문학은 나름의 엄밀한 내적 논리가 작동한다. 문학연구는 그러한 내적 논리의 구조와 체계를 제대로 규명해야 하는데, 이는 작가론의 영역을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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