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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에서 본 퀴어 퍼레이드

by 양문규

체코에서 안식년을 보내기 위해 프라하에 도착한 시기는 2014년 8월 12일이었다. 대학에서 정해준 기숙사에 짐을 풀고 얼마간 숨을 돌린 후 시간 날 때마다 나가본 곳이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장소인 시내의 바츨라프 광장이었다.


바츨라프 광장 주변은 국립박물관과 오페라 극장을 비롯한 고급 호텔 등 아르누보 건물로 둘러싸여 화려한 곳이지만, 바로 이 광장에서 1968년 개혁파인 두브체크가 등장하여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주장하며 ‘프라하의 봄’을 주도한 곳이기도 하다.


20140829_200425 (2).jpg 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

체코 사람들은 역사의 격변기마다 이 광장에 모였고 그곳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갔다. 프라하 도착한 며칠 후인 8월 16일 그곳을 나갔다가 뜻밖의 광경을 목격했다. 광장서부터 구시가지가 시작되는 무스테크 역까지 사람들로 하나 가득 퀴어 퍼레이드가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몇 가지 사실에 다소 놀랐다. 우선 체코가 오랜 세월 공산주의 국가였음에도, 이곳에서 이런 행사가 이뤄진다는 점에 놀랐다. 그것도 해마다 8월 중순에 정기적으로 열리는데 이 행사는 체코뿐만 아니라 유럽 각처의 동성애 지지자들이 대거 참석하는 유명한 행사란다.


공산주의 전통을 가진 중국이나 러시아는 동성애에 대해 상당히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강력한 지도자이자 마초(?)의 분위기를 흠씬 풍기는 푸틴은 개인적으로도 동성애자들에 대해 엄청난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걸로 미뤄봐 역시 체코는 동유럽보다는 서유럽의 전통과 문화적 감수성을 가진 듯싶다. 체코 사람들 스스로 자신들을 동유럽이 아닌 중부 유럽 사람이라고 불리기를 원한다. 실제 체코의 위치도 유럽 중앙에 자리 잡아 유럽여행을 시작하는 우리 배낭족들의 거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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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놀랐던 것은 체코 정치‧문화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국제 관광의 메카로 세계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바로 이곳에서 이런 행사가 대놓고 이뤄진다는 점이다. 우리는 매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벌어지는 퀴어 축제의 허가 문제로 논란이 계속돼오고 있다.


퀴어 축제를 반대하는 자들은 제발 사람들이 많이 보는 곳에서 하지 말라는, 다시 말하면 가능한 사람이 안 보이는 곳에 가서 해달라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광장 같은 곳은 퀴어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 성소수자가 축제와 커밍아웃을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존재에서 보이는 존재가 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공공의 장에 노출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광장 같은 곳은 자신들이 행사를 치르기에 최선의 장소인 셈이다.


나는 프라하에서 퀴어 퍼레이드가 벌어지고 있을 때 퍼레이드보다는 이를 지켜보는 프라하 시민들의 태도가 솔직히 더 궁금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떤 시민들의 표정은 굳어 있고, 화난 표정을 짓는 이도 있는데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며 행렬을 향해 침을 뱉는 아저씨도 봤다.


단 하나 확실했던 것은 퍼레이드를 반대하는 자들의 집회나 단체 시위는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퍼레이드 당사자들은 엄청나게 열띤 분위기를 드러내고 신났지만 이로 인해 소란스럽고 어수선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놀란 건, 구글이 부자 기업답게 럭셔리한 퀴어 장식을 하고 참가했다는 점이다. 지금은 구글만 아니라 애플, 갭, 나이키, 아디다스 등도 성소수자의 권리를 지지하는 사회활동에 적극 앞장서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로선 그때만 해도 처음 보는 장면이라 신기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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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발표된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대만은 중동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혔다. 146개국 중 26위다. 중국(72위)은 물론 일본(54위), 한국(59위)도 멀찌감치 따돌렸다. 올해가 처음이 아니고. 2018년 이후 4년째 이런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한겨레』 등의 매스컴에서는 이러한 배경을 여러 각도로 해석했는데 그중 하나가 대만이 개혁적 조처를 통한 사회통합과 자유의 확대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젠더와 소수자 등 정체성 정치에서도 개방적 태도로 시민들의 사회적 자유를 확대했다는 점을 든다.


예컨대 대만은 2019년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다고 한다. 대만은 밖으로 이른바 ‘공산주의’ 중국과 심각한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내부의 자유를 실현해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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