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4년 2월 10일, 베트남 여행을 마치고 귀국을 위해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 갔을 때다. 로비는 엄청나게 많은 전송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떠나는 베트남 청년들을 배웅하러 나온 그들의 가족들 때문이다. 나는 그 청년들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왔다.
한국에 가까이 올수록 그들은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나는 당시의 산업연수생 제도가 ‘현대판 노예제’라는 소문을 들었기에 그들의 앞날을 생각하며 마음이 착잡했다. 한국에 시집온 베트남 신부들의 안 좋은 소식도 여기저기서 들었던 차라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으리라.
당시 베트남을 여행하면서,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한국의 여행객들은 베트남의 가난을 한심하게 바라봤다. 덩달아 베트남 사람들도 한심하고 무능하게 보였다. 오랜 세월 프랑스, 미국 등과 전쟁을 치러야 했던 베트남의 고난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그게 아닌데 말이다.
2.
2014년 안식년으로 체코에서 일 년을 보낸 적이 있다. 프라하 도착 직후 숙소를 정하고 간단한 식료품을 사러 동네의 슈퍼마켓을 찾았다. 우연히도 가게 주인은 베트남인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프라하 ‘동네 슈퍼’, 열 중 아홉은 베트남 사람이 주인이었다.
2차 세계대전 후 공산국가로 출발한 체코(당시는 체코슬로바키아)는 동구 국가들 중에서 공업 강국이었다. 체코는 사회주의 동맹국들을 원조하는 차원에서 아시아의 공산국가였던 북한, 베트남(당시 북베트남), 몽고의 기술자와 학생들을 자국으로 대거 초청한다.
그러나 1989년 체코에서 ‘벨벳 혁명’이 일어난 이후 북한은 학생, 기술자, 노동자들을 모두 자국으로 소환하고, 몽고도 상황은 비슷했으나, 베트남 사람들은 대부분 그대로 그곳에 남아 지금까지 살고 있다.
이들은 체코어에 능숙하고 성실하며 장사 수완이 뛰어나 프라하의 골목 슈퍼 등 소매 상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더러 우리 교민들 중엔 베트남 사람들을 시기(?)해서 베트남 ‘조폭’들이 이들 소매상의 뒷배를 봐주고 있다는 근거 없는 말을 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체코 사람들 말에 따르면, 베트남인들은 체코의 외국인 중 가장 세금을 잘 내고 말썽 없이 사는 이들이라고 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중국식당은 음식이 짜고, 한국과 일본 식당은 가격이 비싼데, 베트남 식당은 값도 싸고 맛이 좋아 체코인들로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심지어 한국인들조차 가장 즐겨 찾는 곳이 베트남 식당이다. 내 경우 베트남 사람이 주인인 동네 슈퍼를 역시 자주 이용했는데 아시아 식재료도 팔고 특히 그들의 쌀국수가 맛이 있어 닭고기 삶은 육수에다 말아 기스면처럼 해 먹곤 했다.
광대가 툭 튀어나오고 왜소한 체격의 슈퍼 주인은 내가 살던 아파트 내 가장 큰 평수에서 사는데, 휴일이면 골프채를 들고나가거나 밴에 가족들을 싣고 피크닉 떠나는 광경을 자주 봤다. 내가 본 체코의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에서와 달리 여유 있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3.
20세기 초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해가던 시절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노동이민을 갔던 조선인들이 있다. 당시 하와이로 갔던 대다수의 독신 남성 노동자들은 가정을 꾸리기 위해 소위 ‘사진결혼’을 택해 고국에서 신부들을 구해 온다.
이런 결혼 과정에서 신랑감들은 나이를 속여 젊었을 때 찍은 사진을 보내거나, 재산 상태 등을 속이기 일쑤였다. 조선인 신부들 역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이 결혼을 선택하지만 막상 하와이에 도착했을 때 마중 나온 늙은 신랑과 기대 이하의 열악한 상황에 절망한다.
그럼에도 자기 가족과 집과 나라를 떠나 먼 하와이 땅까지 오는 모험을 감행해야 했던 조선 신부들은 억척스럽게 상황을 헤쳐 나가면서 자식들을 낳고 키워 미국 본토의 대학으로 진학시키는 등 자신이 못 이룬 배움의 꿈을 자식을 통해 실현한다.
이러한 한인 디아스포라의 삶은 우리나라에 온 이주민 특히 동남아 이주민들을 되비춰 보게 하는 거울이다. 어떤 NGO 단체의 보고서에 의할 것 같으면 대한민국은 타 인종에 대한 관용성이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로 분석된다.
민족적 정체성이란 자신의 존재가치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기제이기는 하나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리라. “집에서 벗어났다고 집 없는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뿌리와 고정성에 얽매이지 않고 경계를 부수고 깨뜨려 밖을 보는 디아스포라의 사고방식이 필요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