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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탈린 시의 백야

by 양문규

러시아와 핀란드를 거쳐 에스토니아에 도착한 시기는 6월 하지로부터 열흘 즈음 지난 때였다. 러시아는 백야 시즌으로 관광 성수기였는데,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역시,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보다 위도는 약간 낮아졌지만, 백야 비슷한 현상을 만날 수 있었다.


러시아나 핀란드를 여행하면서 이 기간 중 한 번도 캄캄해지고 나서 잠이 들어본 적이 없고, 늘 창의 커튼을 내리고 잠을 청해야 했다. 그럼에도 정작 백야를 실감하고 낭만적(?)으로 느껴보았던 곳은 이 자그만 도시 탈린에서였다.


발트 삼국 중 가장 꼭대기에 있는 에스토니아는 한반도 0.2배 크기의 작은 나라로 인구는 150만이 안 된다. 수도 탈린 역시 숙소가 있던 올드타운은 다 거기가 거기라서 밤늦도록 노닐 수 있었기에, 숙소 바깥에서 해 질 즈음 백야의 풍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탈린은 유럽의 오래된 도시 중에서도, 중세의 모습을 제법 큰 규모로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 도시다. 들은 바로는 2차 대전 중 탈린의 올드타운은 큰 화를 입지 않았는데, 그건 발트해 상에 안개가 잔뜩 끼어 폭격기들이 바다에다만 폭탄을 쏟아붓고 돌아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녁을 먹은 후 성문을 출발해 조금만 걸으면 구시청사와 시청 광장을 만난다. 유럽서 옛날에 지어진 시청 건물 중엔 가장 오래된 고딕 양식의 건물이란다. 중세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찍으면 딱 좋을 듯싶은 풍경 속에 관광객들이 붐비는 게 어쩌면 비현실적이다.


올드타운은 상인, 평민들이 거주하던 저지대와 영주, 귀족들이 거주하던 고지대로 나뉜다. 저지대엔 상인 길드의 건물이 옛 모양 그대로인 채, 용도만 식당, 카페, 상점들로 바뀌었고, 고지대엔 교회와 대사관, 부유층의 집들이 있어 도시의 구성도 옛날과 크게 달라진 바 없다.


시내.jpg 탈린의 올드타운


저지대서 자갈돌이 깔린 경사진 한적한 길을 따라 올라가면 고지대인 톰페아 언덕이 나타난다. 그곳엔 알렉산더 네프스키 성당이 있고 이 성당은 러시아가 에스토니아를 지배하던 시기의 러시아 정교회다. 옆에 있는 돔 성당 시계탑의 시간은 오후 9시 50분인데 아직 대낮이다.


톰페아 언덕에는 탈린 시를 내려다보는 전망대 역할을 하는 성곽이 있다. 그곳 언저리의 노천카페에서 맥주를 마신 건 10시 20분인데 여전히 날은 환했다. 계속되는 여정인지라 약간의 맥주에도 취하고 기분도 몽롱했다.


여름날 한낮에 술을 먹고 취한 적이 있다. 식당에서 반주로 시작됐던 술이 과해져 거나한 상태로 식당 문을 나서는데 어디서 들은 대로 세상은 돈짝 만해져 가고 있었다. 술에 취해보지 않은 이는 세상을 반쪽밖에 못 보는 것이라는 말도 맞기는 한 것 같다.


톰페아 언덕의 성곽에서도 약간의 취기를 갖고 아내와 같이 올라서 있으니 성 밑으로 한 명의 기사가 백마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성 발코니에서는 아름다운 여성이 모습을 드러내 기사에게 스카프를 던진다. 기사는 그것을 받아 들고 모험 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고 있는 순간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밤 10시 40분쯤 됐나 보다. 탈린 시내 빨간 지붕의 건물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우리가 헬싱키에서 배를 타고 에스토니아로 건너온 발트해다. 하늘엔 햇빛이 아직 여전한데 작고 동그란 달이 이미 하늘 한가운데로 올라왔다.


밤 11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우리의 몸과 기억은 이 시간을 시커먼 어둠의 밤으로 인지하고 있는데 보이는 현실은 아직도 푸르고 환하다. 단지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초저녁 붉은 석양 대신, 푸른 기운이 더 많은 노을이 그나마 밤으로 진입하는 걸 짐작하게 한다.


다소 비현실적이고 몽상적인 풍경이다. 땅에 발을 딛고 있지도 않은 것 같다. 사실주의 문학이라도 환상적인 로망스의 요소는 있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듯이 사람은 사실적 현실로만 살 수 없을 것이다.


백야2.jpg
백야3.jpg 밤 11시의 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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