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교회에 새 신자 등록을 하고 얼마 안 되어 1년 간 프라하에 있는 찰스대학교 한국학과의 방문학자(visiting scholar)로 가게 됐다. 지금은 프라하를 많이 놀러들 가지만 체코가 오랜동안 공산국가였던 탓에 막상 그곳에 간다고 하니 그곳 사정을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
개중에는 프라하가 체코 가까운 데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같은 학과 동료선생은 분명 내가 체코를 간다고 말했는데 헝가리를 가냐고 물어보더니, 돌아온 후에도 그래 헝가리가 어땠냐고 또 물어보았다.
그 양반이 보기에는 체코나 폴란드나 헝가리나 다 거기서 거기로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이역만리 낯선 체코에 가서 일 년간 무사히 지내고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컸음은 물론이요 프라하 한인교회 목사님과 신도 분들의 도움도 있었기 때문이다.
늦은 밤 프라하 공항에 도착하던 첫날 부목사님이 나와 주셨다. 다음날 아침엔 식전부터 목사님이 숙소로 찾아와 주셨다. 체코서 장기 체류를 하려면 그곳 관청서 처리할 일들이 많은데, 한인식품 가게를 하는 집사님께서는 자신의 일을 작파하고 하루 종일 이를 도와주셨다.
재밌던 기억은 열 살 남짓 꼬마가 집사님을 따라왔는데, 심심해서 아빠를 쫓아왔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곳 초등학교를 다니는 그 꼬마가 체코 말을 할 줄 알아 우리 어른들 통역을 돕기 위해 나섰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 부부의 체코에서의 일 년간 생활이 시작됐다.
일 년간 지내면서 얘기해야 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이 글에서는 우리 부부가 한국 교회에서는 하지 못했으나, 그곳 프라하 한인교회에서 할 수 있었던 일 몇 가지를 얘기해보고자 한다.
첫째, 우리 부부는 난생처음으로 주일 예배 때 전체 신도들 앞에서 대표기도를 몇 번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내가 다니던 한국 교회에서 대표기도는 장로님이나 하는 것으로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정인즉슨 한인교회에는 신도들 대부분이 유학생 아니면 젊은 해외주재 상사원들이라, 신앙에 관계없이 나이로 그리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표기도가 끝나면 열 명 남짓한 성가대의 찬양도 있었다. 대표기도를 통해 나름 신앙훈련을 한 셈이다.
둘째는 음식봉사를 했던 일이다. 한인교회 주일 예배 시 어떤 때는 신도들 대부분이 학생들이거나 프라하를 놀러 왔다가 예배를 드리러 온 관광객들일 때가 많았다. 그분들은 예배도 예배지만 특히 유학생들의 경우 일주일에 한 번씩 먹게 되는 한국음식을 고대했다.
어떤 학생들은 음식이 남으면 봉지에 싸가지고도 갔다. 음식 준비는 교회 식구들 중 두 가족이 한 팀이 되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했다. 교회에서는 음식 재료비를 얼마큼 보조해주었으나 신도들도 자비를 좀 보태 준비했다.
음식 준비는 아내가 주로 했지만 칠십 명 넘는 이들을 위한 네댓 가지의 반찬을 준비하노라면 나도 힘닿는 대로 도와야 했다. 준비할 때 힘은 들었어도 음식을 먹고 좋아할 유학생들을 생각하면 큰 즐거움이었다.
프라하는 대중교통이 잘 돼있어 우리는 굳이 자가용을 장만하지 않았는데, 음식을 준비해서 교회를 가야 하는 날에는 음식 짐 때문에 그곳 택시를 불러야 했다. 아마 체코 택시 기사 아저씨도 무슨 영문인가 했을 것이다.
언젠가는 프라하를 놀러 왔던 한국의 지인들이 우리가 음식 봉사하는 것을 기특히(?) 여겨 음식 장만하는데 보태 쓰라고 돈을 주셔 그것으로 한인가게에서 떡을 맞춰 신도들과 함께 즐겁게 나눠 먹었던 추억도 있다. 봉사를 통해 신앙훈련을 한 셈이다.
끝으로 나는 학교에 나가느라고 그리 할 수 없었지만 아내는 한국에서는 자신의 일 때문에 나가지 못했던 구역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다. 아내는 막상 구역식구들과 헤어지게 되었을 때는 정이 듬뿍 들어 눈물을 글썽였다.
체코를 떠나던 당일 공항에서 목사님과 구역식구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시간이 서로 맞지 않아 교회 식구들이 공항에 도착했을 때 이미 우리는 출국장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냥 인사도 못하고 헤어지나 싶었다.
그런데 구역식구 분 중 누군가가 출국장의 체코인 관리에게 사정을 해서 출국장 문을 간신히 열어놓고 서로들 손 한번씩 부여잡고 헤어지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아내는 친교를 통해 신앙훈련을 한 셈이다.
프라하 한인교회에는 이렇게 우리 부부같이 일 년간 또는 몇 년간 체코에서 살다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는 신도들이 많다. 목사님께선 그들이 떠날 때마다 주일 예배 때 전체 신도들 앞에서 축도를 해주신다.
그 축도의 내용은 늘 다음과 같은데 다름 아니고 프라하 한인교회에서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한국에 돌아가서 꼭 베풀라는 것이다. 당연한 말씀이지만 우리 부부가 한인교회에서 받은 은혜가 아주 큰 것이어서 그만큼을 그대로 베풀고 살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닌 듯싶다.
‘프라하의 봄’이라는 말도 있지만, 체코의 긴 겨울이 지나 어느 꽃 피는 아름다운 봄 주일날, 말레슈이츠케 나므네스티에 있는 프라하 한인교회로 예배를 보러 가던 추억이 지금도 아련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