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 년간 체코 프라하에서 지낸 일이 있다. 체코는, 지도에서 보면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지만, 유럽 한복판에 놓여 있다. 그래서 체코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동유럽도 아니고 서유럽도 아닌 중부 유럽의 나라라고 일컫는다.
프라하는 유럽에서 사통팔달이라,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면 네, 다섯 시간 안에 독일 베를린이나, 오스트리아 비엔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등지에 도착한다. 비행기로 한, 두 시간이면 파리, 로마, 모스크바 등에도 간다.
싼 게 비지떡이기는 하지만 저가 항공을 잘만 이용하면 서울-부산 간 기차요금으로 북유럽과 영국 등 대서양 쪽의 나라들도 세 시간에 갈 수 있다. 이렇게 교통이 좋다 보니, 유럽의 여러 군데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대개 유럽 관광을 하고 온 한국 사람들은 성당 소리만 하고 성당 그림만 봐도 멀미가 난다고 할 정도로 가는 곳마다 성당 아니면 교회들을 구경하고 다니게 된다. 나도 그 점에서 예외가 아니었으나, 단지 거기다 박물관 또는 미술관 한 가지를 덧붙일 수 있지 않나 싶다.
여행 초반에는 입장료 생각하느라고 그냥 지나친 곳도 많았다. 그러나 여행을 할수록 미술관을 꼭 가봐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들었다. 영국, 스코틀랜드 등은 국립 미술관이 무료라서 얼씨구나 하고 구경했는데 그때의 즐거웠던 추억이 이후 계속 미술관을 찾게끔 해줬다.
스페인에서는 차를 빌려 여행을 다니다가 그만 차량 사고를 낸 적이 있다. 마지막 날 마드리드 공항에 차를 반납해야 되는데 사고비용이 얼마나 나올까 해서 여행 내내 심란했다. 차를 반납하기 바로 전날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역시 무슨 기분으로 구경을 하랴 싶었다.
그런데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무료입장이라는 정보를 듣고 저녁 먹는 것도, 발 아픈 것도 잊고 ‘폭풍 관람’을 했다. 그때 미술관에서 차사고까지 잊어가며 가졌던 행복한 경험을 이후에도 잊지 못해 다른 미술관을 계속 찾게 되었다.
유럽의 미술관은 역시 유럽의 유구한 기독교 전통 때문에 기독교와 관련된 명화들이 많이 전시돼 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에는 누가복음의 <돌아온 탕자> 이야기를 소재로 한 렘브란트의 그림이 있다.
한국의 어떤 크리스천들은 오로지 이 그림을 보고 싶어 그곳을 일부러 찾아간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렘브란트가 태어난 네덜란드는 종교개혁 이후 독실한 기독교도 무역상들이 생생한 색깔로 표현한 성경 속 이야기들을 자기 집 벽에 걸어놓고 보기를 원했다고 한다.
자녀들도 생활 속에서 그런 그림들을 늘 가까이 두고 지내기를 바랐다. 그래서 상인들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는 아브라함을 저지하는 천사라든가, 돌아온 탕자 등과 같은 그림을 화가에게 의뢰했고, 렘브란트의 그림들도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무료 관람이었던 런던의 국립 미술관에서는 그동안 어렴풋이 만 알았던 카라바조라는 화가를 만날 수 있었다. 그곳에는 그의 명화 <엠마오의 만찬>이 전시돼 있다. 성서의 예언대로 삼일 만에 다시 부활한 그리스도는 낙심하고 뿔뿔이 흩어진 제자들을 찾아 나선다.
엠마오라는 작은 마을로 쓸쓸히 발을 옮기던 두 명의 제자들에게 부활한 스승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가 예수라 생각하지 못하고, 그 음성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았다. 마침내 일행은 작은 주막에 도착해 음식을 주문하고 식사하기 전에 감사 기도를 한다.
바로 그때 그들은 그가 예수임을 깨닫는다. 카라바조의 이 그림은 식탁 가운데 앉아 감사기도를 하는 예수와, 그 스승을 알아보고 깜짝 놀라는 두 명의 제자, 그리고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주막 주인이 등장한다. 그림에서 재발견하게 되는 성경의 감동이다.
참고로 같은 미술관에서 본 벨라스케스의 <예수와 마리아와 막달레나>도 기억에 남는다. 종교화의 절정은 미켈란젤로이니, 그가 사 년에 걸친 대 작업 끝에 이뤄낸 로마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인 <천지창조> 역시 그것들 중 하나다.
‘노아의 홍수’를 비롯해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그린 이 작품은 너무나 장엄하고 화려해 오히려 현장에서 그 감동을 제대로 느끼기가 어려웠다. 당시 관람하던 거대한 인파 때문에도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와서 미켈란젤로에 관한 이런 글 저런 글들을 다시 읽어보았다. 미켈란젤로는 그의 예술적 재능만큼 잘난 척도 엄청 심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화를 내거나 흥분하면 거의 안하무인으로 행동했다고 한다.
심지어 교황 앞에서 거들먹거리다 얻어맞았다는 이야기까지 전해 온다. 그의 예술적 천재성이야 여기서 더 첨언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러한 천재도 그의 생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신앙고백과도 같은 아래의 글을 남겼다고 한다. 인문학을 하는 나로서도 마음에 울리는 글이다.
“이제 내 인생은 이미 그 항로를 마쳤다. …
예술이 우상이나 왕이 될 수도 있다고
나더러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것은 한낱 환상이었음을 …
너무나 행복하고, 너무나 허망한 생각은
이제 다 끝났다. 이중의 죽음이 가까워진다.
하나는 확실한 죽음이고, 또 하나는 죽음의 조짐이다.
다시 하나님에게로 돌아서는 영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하나님에게로 돌아서는 영혼을
그림과 조각은 더 이상 진정시키지 못한다.” (김상근, <르네상스 명작 100선>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