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의 도시 프라하에 가서 한 해 살게 되었을 때 스스로 나 자신을 안타깝게 생각했던 건 내가 그리 애주가는 아니라는 점이다. 애주가이기는커녕 맥주 몇 잔을 마시면 얼굴이 금방 뻘게져서 늘 술자리 술은 혼자 다 마신 것 같아 보이는 위인이다.
그래도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고 흥도 많아 술자리에는 자주 불려 나가는 편이었다. 그러나 프라하에서야 술집으로 나를 불러 같이 맥주를 마실 사람도 없다 보니 아내와 더불어 마셔야 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사람이 환경의 지배를 받는 건 확실한 지라, 나 같이 술을 잘 못 마시는 이도 체코에서는 맥주 없이 살기가 힘들었다. 맛대가리도 없고 느끼하기만 한 체코 음식을 먹자면 꼭 맥주를 곁들여야 했다. 물이나 탄산수도 있지만 맥주가 이보다 싸니 맥주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맥주를 즐기게 되다 보니 어떤 때는 음식을 먹으면서 맥주를 마시는 게 아니라, 맥주를 마시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경우도 있었다. 정작 체코 사람들은 잘 안 먹는데, 이상하게도 한국의 여행 책자에는 체코의 대표 음식으로 알려져 있는 족발 비슷한 콜레뇨라는 요리가 그렇다.
이 족발 요리는 처음 한 번은 몰라도 몇 번을 먹자면 확 질리는 음식이다. 단 이 요리와 함께 주문하는 수제 흑맥주의 유혹은 뿌리치기 어렵다. 이것이 없었다면 한국서 손님들이 올 때마다 콜레뇨를 노래 부르듯이 찾는데, 어떻게 이를 견디며 먹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프라하의 낭만 중 하나는 시내 곳곳에 있는 광장의 노상 카페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거다. 고색창연한 고딕 성당 또는 화려한 바로크 궁전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며 기분을 내보는 거다. 성수기 때 천문 시계탑 광장은 이러한 여행객들로 꽉 차 거대한 야외 비어홀로 변신한다.
나는 굳이 거기서는 아니지만 시내에 아내와 장 보러 나왔다가 이곳저곳 크고 작은 광장의 노점서 생맥주를 주문해서 먹다가 집에 돌아가곤 했다. 물론 그 시절은 낭만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주로 서민들이 모이는 그곳 음식은 체코 음식 중에서도 유달리 맛이 없었다.
짜디 짠 소시지와 신문지에 싸다 주는 감자전을 먹어야 하는데, 그래도 이 음식을 용서해 줄 수 있는 건 역시 함께 주문한 맥주이다. 체코에는 수제맥주는 제외하고 브랜드를 갖고 판매되는 맥주는 한 서른 종류 이상 되나 보다. 난 그중 한 삼분지 일이나 먹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가장 즐겨 먹은 건 꼬젤(염소) 맥주인데 한국 편의점에서도 많이 판다. 꼬젤도 라거와 에일이 있는데 주로 먹은 건 에일이었다. 달콤 쌉쌀한 맛 때문에 좋아했던 것 같다. 집에서 식사할 때도 거의 매일 곁들여 먹었다. 염소 맥주도 있지만 고슴도치(Ježek) 맥주도 있다.
체코 중부 지역 보헤미아 땅과 모라비아 땅이 만나는 곳에 텔치라는 중세풍의 오래된 도시가 있다. 텔치는 고도임에도 보헤미아의 소녀가 꿈을 꾸는 듯한 예쁜 도시인데 이 도시 근처 이흐라바라는 곳에서 생산되는 맥주가 고슴도치 맥주다.
체코인들 역시 자신이 사는 고장에서 생산되는 맥주를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텔치에서 고슴도치 맥주를 따라주는 주모에게 시답지 않은 말을 걸며 노닥거리다가 기차를 그만 놓쳐 밤늦게 프라하로 돌아온 적도 있다.
돌아오는 기차 안, 한 아저씨가 배낭에서 맥주를 꺼내 권했다. 버드와이저는 아니고 그의 원조 격인 체코 남쪽 부데요비체 지역에서 나는 부드바 맥주였다. 동구 영화에서 자주 볼 법한 침울하게 생긴 아저씨의 마음은 고마웠지만, 안에 뭐나 타지 않았나 의심하면서 먹었다.
체코에서 흑맥주를 더 즐겼다고 했지만 그건 내 취향이고, 역시 체코 맥주를 대표하는 맥주는 라거 맥주의 최고로 꼽히는 필스너 우르켈이다. 검은색의 에일 맥주에 비해, 하얀 거품 모자를 쓰고 산뜻한 황금색으로 빛나는 필스너는 눈으로 마실 때가 더 좋다.
필스너는 약간 비싼데, 또 다른 라거로 체코서 두 번째 큰 스타로프라멘 맥주가 있다. 그 양조장은 프라하 블타바 강 건너 공장 지대에 있는데 마치 옛날 우리 영등포에 있던 맥주공장을 생각나게 했다. 스타로 맥주는 우리 찐빵 같은 덤플링과 먹으면 괜찮은 한 끼가 됐다.
필스너에 비해 서민적 느낌이 나는 스타로프라멘 맥주는, 그렇지 않아도 싼 체코 맥주 중에서도 유독 싼 축에 속한다. 물론 그보다 더 싼 맥주도 있긴 했는데, 한국 돈으로 500원 이하짜리 맥주도 있었다.
감귤 맛 나는 브라니크 맥주가 그런 맥주였는데, 음력 설날 동아시아학과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학과) 교수들에게 갖다 주려고 약과를 만들거나 술떡을 만들 때, 이 맥주를 청주 대신 넣어 썼다.
그런데 역시 나는 한국 사람이다. 프라하에서 가장 진한 술을 먹었던 건 체코 맥주에다 한국 소주를 짬뽕시켜 ‘쏘맥’으로 먹었을 때다. 언젠가 그곳 한인교회 집사들 사이에 통문이 돌았다.
한 집사님이 하는 한인 식당에서 모임을 가질 터인데 목사님은 빼놓고 부른다는 거였다. 가보니 프랑스에서 직송했다는 엄청나게 큰 농어를 회로 뜨고(체코는 내륙이라 바다생선이 귀하다) 서더리로 매운탕까지 끓여놓았다.
쏘맥으로 시작된 술자리는 교회 모임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한국 여느 아저씨들보다 더 진하게 마시며 놀고 취했다. 노래방까지 가자는 데 거긴 빠지고 얼굴이 불콰해져 트램을 탔다. 어두운 거리서 밝은 불빛의 트램 안으로 들어오니 체코 사람들 모두 뚱하게 쳐다들 봤다.
속도 거북하고 술도 깰 겸 집에서 두, 세 정거장 떨어진 카프카의 무덤이 있는 유대인 공동묘지 정류장에서 내려 걸어갔다. 공동묘지 담벼락을 따라 호젓한 길을 걷다 보니, 카프카는 자기 고향인 프라하에서도 쓸쓸했다는데, 잠시 떠나온 한국 고향이 그립기도 했다.
그러나 집사님들과 술에 취해서 한국서와 다름없이 떠들고 놀다 보니 서울이나 프라하나 다 그게 그거 아닌가 싶어 삶이 시시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겨울 초입 과음한 상태에서 외투도 안 입고 귀가하다가 지독한 체코 감기에 걸려 한 달 너머를 고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