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트비아 리가의 음악 여정

by 양문규

발트 삼국 중 가운데 있는 나라가 라트비아다. 가장 위쪽에 있는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서 버스를 타면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까지 오는데 4시간 정도 걸린다. 편도 1차선 길이라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리기는 한다.


에스토니아만 해도 한국인 관광객들이 더러 눈에 띄지만 라트비아에 오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다. 리가 시내를 걸어가는데 우리가 라트비아를 관광하는 것이 아니라 라트비아 사람들이 우리를 구경하는 꼴이었다.


호스텔서 라트비아인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가 한국서 왔다니까, 북한 수도 이름을 물었다. 외국인들이 장난삼아 남한서 왔는지, 북한서 왔는지를 묻는 경우는 있어도 평양을 묻는 이는 처음이었다. 라트비아인 중엔 ‘한국’이라고 하면 ‘북한’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단다.


그만큼 우리에겐 낯선 나라이지만 구경거리는 많았다. 브레멘이나 그단스크가 중세시대 북해를 무대로 한 한자 무역도시라면, 리가는 발트 해의 거점 한자도시였다. 에스토니아 탈린은 예쁘장한 중세의 테마파크 같았는데, 리가는 상업적으로 번성했던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리가4.jpg 한자 도시임을 느끼게 하는 리가 올드타운의 골목길
IMG_20120705_171534.jpg 리가 올드타운의 광장


붉은 벽돌로 된 세관 창고의 건물이라든지, 과거의 상업적 번영을 말해주듯이 시내의 독특하고 다양한 건축물들이 많았다. 리가의 랜드 마크 격인 ‘검은 머리 전당’은 중세 시대 리가의 상인조합(길드)이 건립해 운영한 건물이다.

리가9.jpg 우측의 검은머리 전당과 좌측에는 베드로 성당이 보인다.
리가6.jpg 15, 17, 18세기에 만들어진 세 건물이 나란히 붙어 있어 삼형제 건물이라 부른다.
리가3.png 바자르 식의 중앙시장 건물과 그 건물 사이로는 스탈린 시대 결혼 케이크 모양의 건물이 보인다.


라트비아는 먼 나라 같은데, 심수봉이 부른 ‘백만 송이 장미’가 라트비아 방송국 주최 가요 콘테스트에서 1등한 노래라 한다. 클래식 음악에 좀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그 이름을 들어봤음 직한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기든 크레머와 첼리스트 미야 마이스키가 이 나라 출신이다.


여행 끝나고 돌아온 후 FM 음악방송을 들을 때 가끔 라트비아 교향악단의 연주가 소개되는 것을 보면서 라트비아가 음악에 저력이 있는 나라임을 알게 됐다. 심지어 리가 거리에서 적선을 구하던 소년의 클라리넷 솜씨조차 여간 아니었다.


리가의 스카이라인을 장식하는 또 하나의 랜드 마크인 베드로 성당을 구경하고 나오는데 성당지기가 오후 7시에 좋은 콘서트가 있으니 듣고 가라고 해서 일부러 기다렸다. 성당은 여행하다 힘들 때 앉아서 기도하는 양 하다가 그만 졸다 나오기 딱 좋은 곳이다.


단 이 날 성당 천장을 울리고 나오는 합창 미사곡은 영혼을 울렸다. 소리가 동굴서 메아리치듯 하는데, 고딕성당은 그 자체가 최고급 스피커다. 라트비아는 독일과 러시아 문화권 사이에 껴있던 유럽의 변방 국가이기는 하지만 이 나라 역시 충분히 유럽을 느끼게 했다.


유럽의 여정에는 반드시 서양 고전음악과 이와 관련돼 유명 작곡가나 연주자와 만나게 되기 십상이다. 동양인의 서양 콤플렉스라고도 얘기할 수 있겠지만 유럽의 여행은 이런 데서 갖게 되는 즐거움과 설렘이 크다. 그러나 동서를 막론하고 위대한 예술은 유니버설 한 것이다.


20220925_194707.png 베드로 성당에서의 음악회


식민지 시대 경성제대 영문과를 나온 작가 이효석이 있다. 그는 서양에 대한 선망이 유달리 강했는데 음악에도 관심이 많아 본인이 피아노로 쇼팽을 연주하기도 했나 보다. 그의 피아노 솜씨가 궁금하긴 한데 모르긴 몰라도 그 역시 유럽 여행을 꽤나 해보고 싶었을 게다.


당시로서 유럽 여행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을 터, 대신 그가 유럽을 대리만족해볼 수 있는 게 만주의 하얼빈 여행이었다. 당시 하얼빈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로 유럽과 연결되던 국제도시로 백계 러시아 망명객도 많았고 이 중에는 연주자들도 꽤 있었다.


이효석은 하얼빈을 여행하면서 송화강 유람선상에서 연주되는 차이코프스키 실내악을 듣고 감상에 젖는다. 1940년 당시 ‘만주국’은 일본의 괴뢰정부였다. 이효석은 그곳에서 대동아공영을 내세워 서양문화를 경멸하고 배척하는 일본 제국주의를 착잡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박경리, 김유정, 그리고 슬로바키아의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