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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김유정, 그리고 슬로바키아의 가을

by 양문규

1.

박경리의 『토지』를 읽다 보면 작가가 운명적으로 사랑한 계절은 가을이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토지』의 첫 장면이 한가위 날 차례 성묘가 끝나고, 서편으로 해가 약간 기울 무렵 타작마당서 풍악놀이가 벌어지는 데서 시작되는 것은 상징적이다.


작가는 한가위가 풍요하고 떠들썩하지만, “쓸쓸하고 가슴 아픈 축제”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한산 세모시 같은” 한가위가 지나고 나면, 산기슭에서 먼 지평선까지 텅 비어버린 들판이 놀을 받고 허무하게 누워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가을은 아름다우나 비극적인 계절이다. 특히 가을이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산중의 풍경은 마지막 정열같이 붉고 노란 색채를 펼쳐 놓고 있지만 비정의 칼날 또한 숨겨 놓고 있다.


박경리는 풍성한 가을 산이 왜 그리 쓸쓸해 보이는지를 되풀이하며, 황홀한 절정서 오히려 인생의 비애를 볼 수 있음을 말한다.『토지』는 이렇게 허무주의를 기조로 삼고 있지만, 소설 속 모든 인물들은 삶의 어떠한 순간에도 생존을 위해서 모든 노력을 경주하기에 매력적이다.


2.

식민지 시기 대표적 농민소설 작가 김유정 소설에서 가을이 등장하면 여지없이 비극으로 끝난다. 비극까지는 아니더라도 쓸쓸하고 처량하기 짝이 없다. 가난한 농민들에게 가을은 춥고 굶주린 혹독한 겨울을 예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골 나그네」(1933)의 비럭질로 떠도는 여인은, 병든 남편을 부양키 위해 혼인 사기를 벌인다. 사기결혼 후 남편에게 입힐 옷가지들을 챙겨 도망을 치는 여인은 병든 남편의 손목을 잡아끌고 “늑대 소리가 와글와글 굴러 내리는” 으슥한 가을밤 산 편으로 사라진다.


「만무방」(1936)의 ‘응칠’은 지주의 소작료를 견디지 못해 처자를 데리고 밤 도망을 쳐 유리걸식하다가 눈보라 치는 밤 처자와 갈라선다. 한편 그의 아우는 타작 후 지주에게 모든 것을 빼앗길까 봐 밤을 타서 자신의 벼를 훔치는 도둑 아닌 도둑의 처지로 떨어진다.


「가을」(1936)의 농사꾼 ‘복만’은 늦가을 추수가 끝나니 빚 가림도 못하겠거니와, 당장 식구들과 겨울을 날 도리가 없어, 어린 자식을 생각해서라도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아내를 소장수에게 팔아넘긴다. 며칠 후 복만은 아내를 소장수에게서 다시 빼내 함께 줄행랑을 친다.


“길은 산길이라 사람은 없고 앞 뒤 산들은 울긋불긋 물들어 가끔 쏴 하고 낙엽이 날린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에 먼 봉우리는 자줏빛이 되어가고 그 반영에 하늘까지 불콰하다.” 산골의 가을은 이렇게 깊어만 가는데 농민들의 처지는 난감하기만 한 것이다.


3.

슬로바키아를 여행한 시기는 10월 초순이었다. 이쪽 지방은 8월 중순을 넘으면 이미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10월 초순에는 완연한 가을을 느끼게 되는 정도가 아니라 산간 지방은 만추의 분위기로 가득 찬다.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한때는 같은 나라이기도했지만, 두 나라 자연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체코는 산간 지역이 별로 없는데 반해, 슬로바키아는 저 남동쪽의 루마니아에서 시작되는 카르파티아 산맥이 국토의 머리를 가로질러 가기 때문에 대부분이 산간 지역이다.


어떤 점에선 산간으로 이뤄진 우리나라의 분위기와 비슷하지만 우리의 가을이 불타는 붉은 단풍으로 화려하기 그지없다면, 슬로바키아의 가을은 누런 색 또는 갈색의 단풍들이 주를 이뤄 자못 사색적이어서, 회화예술보다는 문학이나 철학에 가까운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IMG_2796.JPG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브 성의 가을
20141017_112733.jpg 슬로바키아 Čičmany 민속촌의 가을
반스카 슈티아브니차.jpg 은광도시 반스카 슈티아브니차, 사진 상단에 로켓 모양의 성이 보인다.


슬로바키아의 가을이 더 을씨년스럽고 처량한 것은 곳곳에 흩어진 수많은 고성들 때문이다. 나라의 크기에 비해서 많은 숫자인 100 여 개의 성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이 지역이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한 유럽-합스부르크 제국의 마지막 방어선이었기 때문이다.


성이란, 외적의 침입이 잦으면 문화의 세련과 영속화라는 기능보다는 그 일차적 기능인 보호의 기능을 주로 발휘하게 된다. 슬로바키아 성들은 대체로 이런 경우인데 그러다 보니 성은 아름다움과 위엄을 간직하고 있기보다는 현재는 대개가 영락한 상태다.


가을 슬로바키아의 고성들에서 확실히 보게 되는 것은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그 위에 자라난 이끼와 마구 헝클어진 가시덤불들이다. 성에는 인간이 의도했던 역사는 사라지고 없다. 살아남은 것은 망각뿐이며, 모든 것은 무로 변했고. 지속하는 것은 오직 시간일 뿐이다.


고성도 그렇거니와 슬로바키아의 이름 모를 시골을 지날 때, 울긋불긋한 빨래들이 날리고 남루한 행색의 어린애들과 개가 뛰노는 것이 눈에 띄었다. 운전 중 스쳐가며 봤지만 집시 마을이었다. 날씨가 차갑고 스산했기에 곧 다가올 겨울, 집시들의 운명이 서글펐다.


- Svätý Anton.jpg
833.jpg 슬로바키아의 고성 Svätý Anton의 궁전(위)과 정원
트르나바.jpg 슬로바키아의 '리틀 로마' 트르나바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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