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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프루트에서의 단상

by 양문규

1. 프랑크푸르트학파

내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대학에 마르크스주의와 관련된 강좌는 전무했다. 관심 있는 이들이 음성적으로 공부를 했을지언정,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은 마르크스를 풍문으로만 들었지 이를 공부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꿩 대신 닭으로 마르크스주의와 유사한 프랑크프루트학파가 유행이었다. 그 이름을 들어봤음직한 『자유로부터의 도피』 등을 쓴 에리히 프롬도 이 학파에 속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이 학파의 핵심 멤버는 아니었고 나중에 탈퇴를 했다.


1970년대 후반 철학과 수업을 들으면서 마르크스와 이름이 비슷하게 들리는 이 학파의 중심인물인 마르쿠제의 『부정』과 『일차원적 인간』을 읽고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독후감을 리포트로 제출했던 기억이 있다.


이들이 한국에 소개될 수 있었던 건, 마르크스주의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를 비판하기는 하나, 소련식 사회주의에는 비판적이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프랑크푸르트학파가 자본주의 체제가 마련한 고급 호텔에 숙박하며 자본주의를 비난하는 위선자들이라 공격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그 이후의 세계를 확고히 상정했다. 이와 달리 프랑크푸르트학파는 그 비판에만 주력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서 우리는 다음 어떤 세상이 와야 할지를 좀 더 풍부하게 상상해볼 수 있지 않았는가 싶다.


1930년대 한국문학을 공부하면서 현실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였으면서도 민족주의 우파는 물론 사회주의 좌파 모두에 거리를 두었던 이상이나 박태원 등의 모더니즘 작가들을 이해하는데 이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여러 문예이론이 많은 도움을 줬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유럽의 교통허브이며 독일서 가장 많은 국제선 열차가 오가는 중심도시인 프랑크푸르트의 사회연구소를 무대로 활동했다. 독일 남부 뮌헨에서 북부 쾰른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이동하다 이 도시를 두르면서 프랑크푸르트학파를 떠올렸다.


cats.jpg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2. 라인 자본주의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서 내려 역전 카이저 시장거리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숙소에 짐을 풀고 시내 관광을 시작하자마자 처음 마주친 것이 빌리 브란트 광장의 유로 센터 앞에 놓인 별이 12개 붙어있는 기념물이다. 이 12개의 별은 유럽연합 주축 국가인 12개국을 상징한다.


프랑크푸르트에는 유럽연합 중앙은행이 있고 독일 연방은행 및 독일 금융기관의 본점이 모두 모여 있다. 그리고 세계 10대 금융기관 중 9개가 이곳에 거점을 두고 있다고 하니 이곳은 한마디로 유럽 금융의 중심지이다. 프랑크푸르트는 독일 자본주의의 꽃인 셈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가 자본주의에 비판적이었음에도… 그러나 프랑크푸르트는 영미식 자본주의와는 성격이 좀 다른 ‘라인 자본주의’라는 자본주의의 고향이다. 라인 자본주의는 ‘라인강의 기적’이 아닌, 라인강 따라있는 독일과 프랑스, 북유럽 국가의 자본주의 형태를 일컫는다.


즉 프랑크푸르트에는 유럽 중앙은행도 있지만, 한편으론 독일에서 제일 힘 있는 노조인 독일 금속노조도 함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자본을 대표하는 유럽 중앙은행과 노동을 대표하는 독일 금속노조라는 유럽 자본주의의 양대 기둥이 같이 버티고 있는 것이다.


주주와 경영자의 힘의 균형이 이뤄지고, 노동자들의 충성도가 높으며, 무엇보다 평등과 연대라는 기치를 시민들이 공유하는 것이 라인 자본주의의 특징이다. 막연하나마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지성을 라인 자본주의와 연결시켜 생각해보았다.


유로.jpg 빌리 브란트 광장의 유로센터 앞


3. 뢰머 광장의 시위대

프랑크푸르트 중앙 구시가지의 대부분은 1944년 연합군의 폭격으로 사라졌는데 전후 대대적 재건이 이뤄졌다. 뢰머 광장은 그러한 구시가지의 중심지이다. 15세기 식의 시청 건물, 분수대, 니콜라이, 바울 등의 프로테스탄트 교회와 프랑크푸르트 성당 등은 관광지 뷰포인트다.


관광지 분위기와 달리 광장에는 건장한 체격의 무장한 독일 경찰들 다수가 삼엄하게 진을 치고 있었다. 눈앞의 경찰들은 많은데, 시위대는 저 멀리서 잘 보이지 않았다. 뭔 일인가 했더니 이민자들에 반대하는 우익 민족주의자들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지성과 라인 자본주의의 연대 정신, 그리고 사회정의의 이념을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20세기 들어 한때 나치의 광신적 민족주의에 굴복하고 이용당한 독일을 떠올렸다.


광장1.jpg


경찰.jpg 뢰머 광장(위)과 광장의 경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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