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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여급의 서글픈 크리스마스 날 밤

- 박태원의 「성탄제」

by 양문규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도 크리스마스 날은 있었고, 그 거룩한 날 밤에도 가난한 사람들의 서글픈 이야기는 있었다. 박태원의 「성탄제」(1937년)는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지만, 일반적인 빈궁문학의 가난한 사람들 이야기와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카페 여급으로 집안을 부양하다가 사생아를 낳고 집안에 들어앉은 큰딸 영이가 있다. 그러한 언니 덕에 여학교에 다니면서도 여급인 언니를 경멸하고 여배우가 되겠다며 학교를 자퇴하지만 결국은 언니의 길을 걷게 되는 동생 순이가 있다.


크리스마스 날 밤 교회당에 간다고 초저녁에 나간 순이는 자정 너머까지 들어오지를 않는다. 영이가 마침 잠을 깬 갓난애에게 젖꼭지를 물리고 있을 때, 순이가 눈을 맞고 들어온다. 그러나 곧 마루로 올라오지 않고 망설거리는 모양이더니 방안을 엿본다.


순이는 늘 언니를 부끄러워했지만, 자신도 그날 밤 언니처럼 남자를 데리고 집을 온 것이다. 영이는 곧 눈치를 채고 순이와 함께 쓰던 방을 내주고, 부모의 방으로 건너가 방에서 곤히 자는 부모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이것이 인생이란 것이냐?” 반문하여 눈물을 흘린다.


1920년대 매춘이 기생이라는 구시대적 이름으로 행해진다면, 30년대 매춘은 도시적 삶의 형태인 다방, 카페 등의 공간과 관련돼 이뤄진다. 식민지 시대 카페 여급이 되는 동기는 당연히 일차적으로 많은 돈을 가장 손쉽게 벌기 위해서였다.


열악한 식민지 경제 구조 속에서 그나마 일자리를 얻은 여성들은 많은 경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러나 그녀들을 바라보는 근대의 금욕적 윤리 또는 가부장적 담론은 그들을 허영 많고 사치스러운 소비문화의 부정적 지표로 집단화시키며 비난을 퍼붓는다.


당시 소설 속 카페 여급들은 지식인의 향락, 성적일탈의 수단으로 그들의 타락을 부추기거나, 또는 지식인의 허무와 절망을 토로하는 대상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성탄제」에서 만큼은 카페 여급이 주인공으로 나올 뿐만 아니라, 여급 자신의 목소리로 스스로를 이야기한다.


이를 위해 「성탄제」의 줄거리는 시종일관 영이와 순이 두 자매가 서로를 비방하고 자기를 변명하며 말싸움을 벌이는 형식으로 돼있다. 독자들은 작가의 간섭 없이 이 둘의 한바탕의 말싸움을 들으면서 오히려 카페 여급의 슬픈 진실에 감동으로 다가서게 된다.


“순이는, 우선, 제 형 영이의 직업이 불쾌하여 견딜 수 없었다.

여점원이든, 여자 사무원이든, 그러한 것이야, 사실, 자기 말마따나 워낙이 배운 것이 없으니까 될 수 없다고도 하여두자. 누가 꼭 그런 거래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참말, 다닐 데가 좀 많으냐? 방적회사 여직공이든, 제사공장에든 영이로서 할 수 있는 일거리란 얼마든지 있을 게다. 그것들은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딸들이 종사하드라도 결코 흉 될 것 없는 직업들이다. 허건만 어째 하필 고르다 골라 카페 여급이 됐더란 말이냐?”



“그래 내가 그렇게도 더러운 화냥년이라 하자. 그럼, 넌 왜 더러운 화냥년이 더러운 짓을 해서 벌어온 돈으로, 날마다 밥은 먹는 게구, 옷은 입는 게구, 학굔 가는 게냐? 응? 흥! 어디 네 대답 좀 들어 보자구나.


아 아니에요. 어머닌 글쎄 가만히 기세요. 그저 어린아이라고 가만 내버려 두니까, 남의 은공은 모르고 밤낮 욕을 하면 욕을 해도 그건 괜찮아요. 요건 고러다가두 지가 아쉬우면 「언니, 언니」하고 살살거리니깐 고게 보기 싫단 말예요.”


이렇게 다투건만 동생 순이가 남자를 데려온 성탄절날 밤 영이는 머리맡 벽 십자가를 보며 기도를 한다. “이 거룩한 밤에 주여! 바라옵건대 길을 잃은 양들에게도 안식을 주옵소서, 아아멘” 이렇게 기도를 드려 두면 자신도 순이도 꿈자리는 사납지 않을 것 같다는 마음에서.


덧붙이는 이야기:

실제로 「성탄제」의 작가 박태원에겐 카페 여급 출신과의 소설과도 같은 이야기가 있다. 카페 ‘쓰루’의 여급 ‘권영희’는 처음엔 「날개」의 작가 이상의 애인이었다. 그러나 ‘정인택’이라는 소설가의 자살 소동으로 이상이 양보해 결혼은 정인택과 한다.


이상은 일찍 죽고, 이후 정인택 부부와 박태원은 북쪽으로 갔는데 정인택이 죽자 권영희는 박태원의 부인이 된다. 박태원은, 그의 본부인 즉 봉준호 감독의 외할머니를 미처 데리지 못하고 북쪽으로 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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