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문자를 매체로 하는 예술이지만, 과거 오랜동안은 말로 전해지는 문학 즉 구비문학도 있어왔다. 구비문학은 그 특성상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문학이기에, 때로는 현장을 나가 구비문학 자료를 채록하고 오는 필드워크도 이뤄진다.
우리 학과에서도 이를 위한 정기 답사가 매년 늦은 가을에 있었다. 나는 근현대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이기에 답사에 참가하지 않아도 되지만, 우리 학과의 경우 학생들 전원이 답사에 참여하기에, 선생들도 학생 지도 차원에서 전공과 무관하게 답사를 함께 나갔다.
학교가 강릉에 위치해 있는지라 답사는 당연히 강원도 일대로 가는데, 그중에서도 영월, 정선, 평창 지역을 집중적으로 나갔다. 산다삼읍(山多三邑)의 ‘영‧정‧평’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 유배지였던 만큼, 답사를 다니던 80년대 후반만 해도 오지가 적잖이 있었다.
이런 오지는 구비문학의 보고이기는 하다. 운이 좋으면(?) 장례가 치러지는 마을서 선소리꾼을 만나기도 하고, 촌부로부터 기대치 않게 정선아라리의 새로운 가사를 얻기도 한다. 또는 능숙한 이야기꾼 노인을 만나 흥미로운 전설을 듣기도 하지만 그리 흔한 경우는 아니다.
답사와 관련돼 지금도 기억나는 일화가 하나 있다. 영월 상동의 어느 촌마을이었다. 이장님이 답사 팀에 호의적이어서 소리 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사람들 몇을 마을회관으로 모아줬다. 이들로부터 민요 등을 듣기 위해 학생들과 함께 술추렴을 하면서 분위기를 돋웠다.
여학생들이 용기를 내 당시 유행하던 대중가수의 노래를 선창 하기도 했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이장님이 민망했는지 대신 다음날 아침밥은 꼭 자기 집에서 먹고 가라고 신신당부하면서 술을 퍼붓다시피 하더니만 이내 곯아떨어져 버렸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러 이장 집을 갔는데 정작 이장님은 없었다. 지난밤 과음으로 급성 위경련이 일어나 새벽 구급차로 실려 갔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도 이장 댁 아주머니는 굳이 아침을 먹고 가라고 해 송구스럽지만 귀한 아침 식사 한 끼를 얻어먹고 나왔다.
이런 일화도 있긴 하나 영정평 답사는 원체 산골이 깊어 쓸쓸한 여정이기도 하거니와 거길 들어가면 산과 물에 갇혀 영 빠져나오지 못할까 싶은 착각에 빠질 때도 많았다. 며칠간의 답사가 끝나고 강릉으로 돌아오면 서울보다 훨씬 번화한 대처로 나온 느낌이 다 들 정도였다.
나는 근현대문학을 학생들에게 가르치지만, 이런 깊은 산골을 돌아다니다 보면 떠올리게 되는 생각은, 모든 시대의 문학이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은 설화나 신화에 도달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신화비평은 이런 데서 시작된다.
영정평 지역 중, 평창을 무대로 한 이효석 소설은 상대적으로 이러한 신화비평의 좋은 대상이다.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에 등장하는 장돌뱅이 허생원은 실제 그가 조선시대의 허생원이든, 식민지 시대의 허생원이든, 아닌 말로 분단시대의 허생원이든 아무 상관이 없다.
허생원은 어느 시대에나 있을법한 인물이다. 그래서 이효석 작품은 소설보다는 차라리 신화나 전설 등의 세계에 가깝다. 가령 유리왕이나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에서와 같이 아버지를 찾아 나서고,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모티프들은 <메밀꽃 필 무렵>에서도 주요한 모티프다.
또 소설에서 아버지(허생원)와 아들(동이)이 봉평장 주막의 충주집을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벌이며 갈등에 빠지는데, 작가 이효석의 죽은 어머니의 실제 고향이 충주라는 대목에서 인간의 영원한 무의식 안서 작동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떠올리게 된다.
소설에서 인간의 영원하고 보편적인 원형을 찾아보려는 신화비평은, 소설 속 인간을 사회와 역사와 관련지어 설명하려는 마르크스주의 비평과는 대조적이다. 나는 후자를 선호하지만 학생들과 공부할 때는 어떤 방식이 더 우월한지를 예단하지 않고 가르치고자 노력한다.
소설이 무엇인가라는 질문 그 자체가 어쩌면 불가능한 무언가를 포착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소설론 첫 수업에선 늘 학생들에게는 이러한 불가능한 시도 자체가 중요하다고 얘기하는데, 그건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알고자 하는 우리의 영원한 질문과 연결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