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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의 「할머니의 죽음」 , 두 어머니를 모시며

by 양문규

1.

서울 집을 지인에게 내주고 아내의 고향에 새 집을 지어 이사를 올 때만 해도 나는 그저 그런 마음이었지만. 아내는 마당에 화초도 가꾸고 나무도 심고 또 텃밭농사도 지을 생각에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그런 아내의 꿈은 애초에 한계가 있었던 게, 시골 고향으로 온 이유 중 하나가, 인근에 사는 거동이 불편한 친정어머니의 수발을 들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큰일이 아니었다.


이번엔 내 어머니가 치매증세로 도저히 독립생활을 할 수가 없어 급기야 우리 집으로 모셨다. 바야흐로 두 양반을 보살펴야 하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것이다. 누구는 TV의 휴먼 다큐 「인간극장」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는데, 우리 부부는 그저 심신이 고달플 뿐이다.


부모를 모시고 산 적이 없던 우리 부부가 정년이 지난 이 나이에 두 어머니 봉양을 하게 되니 효도고 뭐고 이게 뭔 팔자인가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그간 비교적 평안한 생활을 해온 나로서는 반성까지는 아닐지라도 늙음과 죽음에 대해 숙고하는 계기를 갖게도 되었다.


오래전 학생들에게 강의했던 현진건의 단편 「할머니의 죽음」(1923년)을 꺼내 다시 읽어보았다. 임종을 앞둔 노인을 앞에 두고 대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심리를 작가는 리얼리스트다운 솜씨로 잘 묘파 해내고 있다.


2.

할머니의 병환이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임종을 맞으러 고향집을 찾은 손자는, 할머니가 일단 죽을 고비는 넘겼으나 욕창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안타까이 바라본다. 게다가 자손들은 망령이 난 할머니에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이를 웃음거리로 삼는 현실도 목도하게 된다.


특히 이 이야기의 중심은, 예절과 효성으로 이름난 둘째 큰어머니(㑖母)가 할머니의 병시중을 도맡아 하면서 이를 방패 삼아 대단한 효부 행세를 하며 집안의 다른 식구들에게 거드름을 피우고 억압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데 있다.


옛날에는 이 부분을 읽었을 때, 효라는 윤리를 앞세워 자신의 주변 친척들은 물론 봉양하는 노인에게까지 억압적인 자세를 취하는 중모의 위선적 태도를 작중 인물인 손자의 입장에 서서 함께 비웃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두 어머니를 모시는 입장에 서보니, 내가 그 중모 같이 동기간에 억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힘듦과 어려움을 형제들이 알아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는 그리도 억울하고 화가 날 수가 없다.


물론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에게 곧 자문을 하게 되는 건, 그렇게 억울하고 화날 일이면 누구 말마따나 눈 딱 감고 요양원에 모실 일이지 왜 집으로 모신다고 자처해 놓고 나선 그런 불만을 토로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장모님은 거동이 불편할 뿐 의식은 말짱하고, 어머니 역시 비록 치매 증세가 있을지언정 아직은 자식도 알아보고 뒤도 가리시는데 차마 어찌 그럴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다. 효자냐 아니냐를 떠나 나는 마음 약해서 현재로선 차마 그런 일은 할 수 없다.


한 번은 두 노모를 번갈아가며 병원엘 모시고 갔더니 원장이 왜 요양원으로 모시지 않느냐고 하면서, 그러다가는 보호자들의 사생활이 없어지는 건 물론이요 십 년은 지레 늙는다면서 혀를 끌끌 찼다. 나보단 젊은 나이의 그 원장도 부모를 요양원에 맡겼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었다.


현진건은, 「할머니의 죽음」에서 병시중을 하는 중모의 생색내는 행동을 ‘거벽스럽다’라고 비판적으로 표현한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작가는 증모의 입장도 고려해서 그려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잘하든 못하든 노인네 병시중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말이다.


작품의 끝은 할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하고 다시 서울 집으로 돌아온 손자가 얼마 후 이 모든 일을 잊고 아름다운 봄날 우이동 벚꽃을 보려 소풍 채비를 하고 나서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는 데서 작품이 끝난다.


이 작품은 이런 깜짝 끝내기(surprise ending)를 통해, 효라는 윤리가 형해화 돼가는 세태를 재치 있게 보여준다. 그러나 내 경우 어머니를 모시다 보니, 형제들 간에 바로 그 “효”를 누가 더 하니 안 하니 따지면서 서로 간 감정의 골이 깊어가는 뜻밖의 복병을 만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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