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태원과 봉준호 감독

by 양문규

나는 한국근대 소설사 연구자이긴 하지만, 소설가 박태원에 대한 제대로 된 논문은 한편도 써보지를 못했다. 그럼에도 식민지 시기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중 하나를 들라면 서슴지 않고 박태원을 들겠다. 일단 내 연구실 책장에는 확대 복사한 박태원의 사진이 하나 붙여 있다. 달래 붙인 게 아니라 ‘갑바 머리’를 하고 ‘대모테 로이드안경’을 쓴 그의 모습을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복사했다가 아까워 그냥 붙여 놓은 거다. 가끔 학생들이 방에 들어왔다가 얼떨결에 그 사람이 나냐고 물어보기도 하는데, 1930년대의 멋쟁이 소설가를 나로 착각하는 게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아 계속 붙여놓고 있다.


또 좀 엉뚱한 얘기이긴 하나 박태원 작가와 내가 음악적 취향이 비슷한 것은 아닌가 싶어 특별히 그를 좋아한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년)을 보면, 구보씨가 다방에 들어가 노닥거리면서 행복에 젖어 듣는 곡이 이태리 테너 티토 스키파(Tito Schipa, 1888~1965)가 부르는 스페인 민요 ‘아이 아이 아이’다. 나도 그 노래를 좋아한다. “아 세월은 잘 간다 아이 아이 아이~” 하는 약간 익살스럽기도 하나, 그러나 애절한 사랑의 마음을 노래하는 것인데, 그걸 벨칸토 창법의 스키파가 부르면 더 제 맛이 난다. 내가 좋아하는 성악가와 노래를 박태원도 좋아했다고 생각하니 시대를 건너 뛰어 그와의 동지애(?)마저 느끼게 된다.


이 같은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하는 것은 그 시대 박태원이란 이가 엄청나게 모던하고 멋쟁이 같았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문학에서도 당대의 ‘독보적 스타일리스트’로 평가받는다. 당시 평론가 최재서는 그의 소설에 나타난 ‘카메라’와 같은 묘사방식의 새로운 특성을 각별히 지적하고 있어, 그의 외손자로 알려진 봉준호 감독의 솜씨도 외할아버지로부터 일부 이어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마저 해보게 된다. 그런데 박태원 소설의 현란한 기법도 매력적이지만, 진정으로 그의 작품이 좋은 것은 한 시대의 보잘 것 없는 이들 지금으로 말하면 ‘루저’같은 이들에게 갖는 작가의 유머러스한 연대의식에서다.


박태원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러한 약자들의 얘기로 가득 차 있다. 단 그는 그러한 약자들을 그릴 때 그걸 비장하게 하지 않는다. 나는 봉감독의 유머도 좋지만 박태원의 유머는 더 좋아 한다. 박태원 소설에는 “꾸다 영감‘이라는 캐릭터가 자주 등장한다.”술 먹꾸 돈 없다.”고 해서 ’꾸다‘인데 이 영감에게 왜 술만 마시고 안주는 먹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술은 주(酒)니까 마시고, 안주는 안 주니까 안 먹는다고 한다. 약재 행상으로도 나오는 꾸다 영감은 비록 외상술은 먹을지언정 반드시 외상을 갚아야 직성이 풀리는 ’경우 바른‘ 인간이고, 또 정작 본인의 외상 빚을 받으러 간 집에서는 주인집 애에게 ’왜 콩‘을 건네주는 인정 많은 노인네이기도 하다.


박태원은 도시 뒷골목 가난한 이들의 일상도 그야말로 귀신같은 솜씨로 그려내는데, 그것은 이른바 ‘봉테일’을 능가할 지경이다. 자기 집 뒷간이 없어 남의 집 것을 슬쩍 이용했다가 한나절 그 안에 갇혀 봉변을 당하는 <골목안>(1939년)의 이야기는 압권이다. 이러한 디테일과 함께 작가가 가난한 이들에게 보여주는 연대의식은 늘 감동적이다. 글쎄 뭘 예로 들어야 뭉클했던 내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으려나?


<천변풍경>(1936년)에는 카페여급 일을 나가며 동거하는 하나꼬와 기미꼬라는 두 아가씨가 등장한다. 당시 여급들은 일본 이름으로 일을 했던가보다. 하나꼬는 청순가련형의 미인으로 카페에서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언니뻘인 기미꼬는 인물은 떨어지나, 나름대로 씩씩하며 한편으론 인정미 넘치는 아가씨다. 하나꼬는 약국을 하는 부잣집 유부남의 꾐에 넘어가 그와 결혼하려 하지만, 기미꼬는 파탄으로 끝날 게 뻔한 하나꼬의 결혼을 줄곧 반대한다. 그러나 막상 혼인이 결정되자 기미꼬는 빚을 내 혼수로 ‘경대’를 장만해주며, 카페 여급에서 이제는 결혼을 하여 여염집의 아낙이 돼야 하는 하나꼬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한다. 그 장면이 아주 뭉클한데, 물론 기미꼬의 염려대로 하나꼬의 결혼은 불행으로 끝난다.


봉감독의 현란한 기술적 환상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에 몰입케 한다. 그럼에도 봉감독 역시 늘 사회적 약자를 향한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기생충>에서도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미래를 향해 어떠한 계획도 세울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결국 우리 사회의 상층계급에게도 부메랑처럼 타격을 가할 것임을 보여주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의식을 강력하게 환기한다. 단지 박태원 소설의 유머는 그래도 아직 따듯했건만, 현대 자본주의 현실을 그려야 하는 봉감독의 영화들은 그 유머에 점점 날이 서고 있으며 그래서 좀 더 절망적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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