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표의 ‘지옥순례’

by 양문규

식민지 시기 프롤레타리아문학을 한 박영희라는 작가의 <지옥순례>(1926)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작품의 줄거리인즉슨 경성부내 변두리 움집에 사는 빈민이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호떡을 팔러 다니는 소년 행상을 살인하고 호떡을 훔쳐 먹어 감옥으로 잡혀간다는 이야기다.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살인자의 아이가 피 묻은 호떡을 먹는 장면, 아내는 호떡 장수 소년이 들고 다니던 떡 상자를 땔감으로 쓰는 장면은 충격적이다. 당시에도 이 소설의 내용이 너무 했다 싶었는지 박영희의 문학적 동지인 김기진조차 작품의 현실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박영희에게 당시 식민지 조선의 현실은 ‘지옥’과 같은 곳이다. 사람들은 지옥 같은 현실을 살다 살인을 저지르고 결국 감옥에 잡혀가는데 이는 또 다른 지옥으로 ‘순례’를 떠나는 꼴이다. 박영희가 당시 조선의 현실을 지옥이라고 본 것에는 일면의 진실성이 있다. 그럼에도 학생들에게 이 작품을 읽히면 대뜸 하는 말이 “소설을 발로 썼냐?” 하는 반응이다. 우리가 이 작품에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작가의 계급의식 내지 목적의식이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니, 현실을 과장,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20여 일 간 ‘풍찬노숙’하며 밑바닥 현실을 둘러다 봤더니 우리의 현실이 ‘지옥’과 다름없이 보였다고 한다. 또 지옥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살려달라며 절규했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 우리 현실이 지옥 같이 보일 수도 있겠다. 더욱이 황대표는 ‘문재인 좌파정권’이 혐오스럽기 짝이 없고 그래서 이를 타파코자 하는 목적의식에 불타다 보니 우리의 현실이 더욱 더 절망적인 지옥으로 보이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다.


박영희는 소설가이고 황대표는 정치가이지만, 자신의 정치의식에만 매달려 현실을 보게 되면 박영희가 함량 미달의 소설을 쓰듯이, 황대표도 얼토당토않은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 박영희와 비슷한 시기에 현진건이 쓴 <운수 좋은 날>(1924)이라는 소설은 ‘지옥’이라는 말을 굳이 내세우지 않아도 식민지 사회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사회적 의미가 명징하게 드러난다. 인력거꾼 김첨지는 그날따라 돈이 잘 벌려 불길한 예감도 들지만 병석에 누운 아내가 먹고 싶어 하는 설렁탕을 사갖고 갈 수 있어 좋아한다. 그러나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아내는 죽어있고 이 사회는 가난한 이들에겐 결코 행운이 따를 수 없음을 보여준다.


사족으로 박영희는 <지옥순례>에서 ‘단테의 지옥’ 운운하는데, 당시 문인들 사이에 이 ‘지옥순례’라는 말이 유행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 김억이라는 문인도 보들레르를 얘기하며 “단테는 지옥으로 가고 보들레르는 지옥에서 왔다”고 멋을 부려 얘기한다. 박영희가 조선의 비참한 현실을 ‘지옥순례’로 표현한 것에는 다분히 문학적 허세도 들어가 있음을 느끼게 한다. 황대표 역시 우리의 현실을 우정 ‘지옥’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그가 독실한(?)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쓴 말이 아닌가 싶다. 요즘도 길거리에는 이 세상을 말세 지옥이라 치부하면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선교구호를 외치고 다니는 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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