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판결에 부쳐
이지사의 무죄 선고 판결이 내려지던 날 조마조마했던 마음 한편을 쓸어내렸다. 반면 모르긴 몰라도 아내와 직장 다니는 딸은 ‘아 그 인간!……’ 하며 장탄식을 했음에 틀림없다. 과거 민주노동당 당원이기도 했던 지인 여교수 한분 역시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지사와 여배우의 추문을 믿는 아내는, 그런 이지사가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아내와 ‘알콩달콩’ 금슬을 과시하는 것을 보면서 가증스러워 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 인간의 내면과 진실을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결국은 알 수 있는 데까지만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러나 저러나 내가 마음 한편을 쓸어내린 것은, 지금 회자되는 진보진영 측의 대선후보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라도 덜어질까봐 걱정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지사는, 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몇 있다 치더라도, 대체로 진보 또는 민중지향의 정치인임에 틀림없다. 그의 개인적 삶의 이력도 그렇거니와 그의 정치적 출발이 경기도 성남이었다는 사실도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내가 ‘성남’이라는 도시와 인상적으로 만나게 된 것은 대학 시절 읽었던 윤흥길의 창작집『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1977)에서다.
1960년대 후반 삼남지방의 대흉년은 수많은 농민들을 무작정 서울로 상경케 했다. 그러나 서울은 이들에게 판자촌을 허용하기에도 이미 만원이었다. 그 와중에 청계천변에 밀집한 무허가 판잣집을 철거, 철거민들을 성남으로 집단, 이주시킨다. 상하수도, 도로도 전기도 없는 상태에서의 강제이주는 주민들의 반발을 일으켰고 1971년 십오만 주민 중 육 만 명 이상이 공권력을 상대로 폭동을 일으킨다. 2013년 통합진보당 이석기의 ‘경기동부연합’ 운운하는 그룹도 멀리로는 이 광주대단지와 성남시에 대한 차별과 배제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윤흥길 창작집에 실린 작품들은 바로 광주대단지 폭동을 소재로 하고 있다. 윤흥길이라는 작자 자체가 개인사적으로 한국전쟁과 전후의 궁핍한 현실 속에서 어린 시절부터 가난에 대한 반발과 생활무능력자였던 부친에 대한 증오심으로 성장기를 보냈다. 그리고 그의 가족이 어렵게 장만한 무허가 판잣집이 강제철거 당하면서부터 가출을 일삼으면서 밑바닥 인생을 체험한다. 아마도 이러한 개인사적 체험이 작가로 하여금 광주대단지 폭동 사건에 관심을 갖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윤흥길 소설의 궁극적 관심은 광주대단지로 쫓겨난 주민들의 절박한 삶의 현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는 민중주의자들 혹은 소시민 지식인들의 관념성, 위선과 가식 또는 값싼 연민을 가차 없이 비판한다. 작가는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에서 경찰과 맞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던 군중들이 느닷없이 트럭에서 쏟아져 나온 참외를, 만사를 다 제치고 허겁지겁 주워 먹는 벌거벗고 조야한 모습을 그리면서, 과연 민중주의자들은 이러한 그들의 현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그래서 하는 얘기인데, 이지사 만큼은 이러한 민중 삶의 솔직한 현실을 몸으로 체험하여 알고 있는 진보진영 정치가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선입견이 개입된 것이기는 하지만, 밑바닥 인생을 체험한 그는 세상이 얼마나 이익으로 움직이는 곳이며 이 때문에 모든 이들은 자기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정직하게 직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정치가들 중의 하나라고 판단한다. 다시 말하자면 적어도 현실 삶을 이해하는 데 그에게서는 추상성 또는 관념성이 발견되지 않고 늘 사태의 구체성에 직면해서 행동하는 것이 발견된다.
단지 이지사의 이러한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장점과는 다소 모순이 되는 바람을 그에게 가져본다. 이지사는, 자신이 늘 추구하는 경쟁이 조각낸 사회적 연대를 복원하려는 과정에서 이전보다는 더 따뜻한 공감의 매순간을 보여줄 수 있으면 한다. 이지사가 보여주는 매력은 사회비판의 날카로움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것인데, 이지사는 이와 함께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한 믿음도 같이 할 수 있으면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어느 여성학자의 주장처럼, ‘진보란 여성이 공적 영역으로 진출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이 사적 영역으로 들어오는 데서 시작한다.’는 말도 있는데, 이지사는 이 말을 곰곰이 음미해봤으면 한다.
트럼프 같은 희한한 대통령을 뽑는 나라가 미국이기는 하지만 우리도 이제는 미국과 같이 시장, 주지사 등을 거쳐 정치적 훈련과 검증을 받은 후 대통령직에 도전하는 비슷한 경우를 바야흐로 맞이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굳이 이지사를 겨냥한 것은 아니로되 향후 그의 건투와 다른 진보진영 대선 후보자들 간의 멋진 경쟁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