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유럽의 미술관을 다닐 때, 늘 아내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것은 과일 또는 꽃 등이 그려진 정물화다. 아마 화초를 좋아하는 개인적 취향이 작용한 점도 있겠지만 뭐 다른 사람이라고 정물화를 특별히 싫어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유럽 미술관서 자주 눈에 띄었던 정물화는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세잔이 그린 과일 정물화이다. 세잔 자신의 정물화는 물론이요, 세잔을 오마주 한 고갱의 정물화, 그리고 어디서는 세잔의 사과 정물화를 마네와 쿠르베의 사과 정물화와 비교 전시해 놓은 것을 다 볼 정도였다.
대영 박물관의 어느 코너를 돌아볼 때였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정물화와는 성격이 다른, 화려한 부케 꽃다발을 그린 듯한 정물화를 발견하곤 아내는 홀딱 반해 이를 사진으로 남겼다. 내가 보기엔 화려하긴 하나 좀 영혼은 없는 듯싶은 상업적 느낌이 나는 그런 정물화였다.
혹시나 작가 이름을 까먹을까 봐 화가의 이름도 사진으로 찍어 놓았다. 네덜란드 화가인데 발음도 어떻게 하는지 모를, 얀 반 하위심(Jan van Huysum, 1682-1749)이라는 화가의 정물화이었다. 찾아보니 하위심은 네덜란드의 꽃 정물화가로 유명하다.
하위심만 아니라 그의 집안이 정물화가 집안으로 유명했다. 그의 그림은 같은 시대 네덜란드 화가인 렘브란트 그림보다 몇 배 가격으로 팔렸다고 한다. 화려한 색감을 구사한 하위심은 꽃과 과일의 티치아노라고도 불렸다. 타치아노는 베네치아의 무역 전성기에 활동한 화가다.
화가 하위심이 활동했던 17~18세기 역시 네덜란드 무역의 전성시대였다. 이 시기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동인도에서 나는 향신료를 독점하여 거대한 이익을 취하여, 네덜란드는 유럽 전역에서 그 진취성과 상업적 기량을 인정받는다.
부를 쌓은 네덜란드 무역상들은 여러 종류의 그림을 원했는데, 특히 독실한 개신교도였던 그들은 성경 속의 역사를 가르쳐줄 그림을 집에 걸어놓길 원하고 자녀들도 늘 가까이서 이를 지켜보기를 원했다. 대표적으로 렘브란트가 남긴 <돌아온 탕자> 등의 그림이 그런 예이다.
그런데 아미타브 고시의 <육두구의 저주>라는 책은, 독실한 기독교도 네덜란드인들이 향신료 무역을 독점코자, 향신료 중 하나인 육두구의 산지인 인도네시아 반디 섬의 이교도 원주민들을 몰살시킨 비극을 그린다. 기독교와 제국주의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부분이다.
<육두구의 저주>는 이 시기 네덜란드 화단에 유행하기 시작한 정물화 역시, 다소 비약이 느껴지는 설명이기는 하지만, 제국주의 네덜란드와 관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하위심의 꽃 정물화가 제국주의와 뭔 관계람?
“먹을 수 있게 준비된 무언의 식품 집합”을 화폭에 담는 정물화는 ‘자연’을 거대한 비활성의 자원 덩어리로 보는 식민지적 시선을 반영한다고 본다. 향신료의 재료가 되는 육두구 나무 열매 등은 인도네시아 화산섬에서 바다 냄새를 맡으면서 생명력 있게 자라던 식물이다.
그런데 이런 자연이 유럽에서 향신료로 주목받으면서 자신의 살아있는 생명력을 상실하고 상품으로 유통하게 된다. 유럽인들은 육식을 주로 하는데 후추나 육두구 같은 향신료를 치지 않으면 고기의 누린내 때문에 잘 먹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문제는 이러한 향신료가 단순히 음식 재료가 아니라 나중에는 재력과 권력을 상징하고 귀족들이 신분을 과시하고 자신들 사이에 동질감을 형성하는 사치품으로 변하며 가격이 오르고 이를 독점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해진다는 점이다. 튤립 구근이 투기상품으로 변모하듯 말이다.
당시 네덜란드에는 머나먼 식민지에서 건너온 꽃, 식물, 식품 등의 물산이 넘쳐흘렀다. 네덜란드인들은 이러한 이국적인 것들을 늘어놓고 이를 정물화로 표현하는 것을 즐긴다. 하위심 정물화 속의, 열대 지방서 볼 듯한 화사한 꽃들은 자연 속의 살아 숨 쉬는 꽃들은 아니다.
이 꽃들은 본원적인 강렬한 활력을 잃고 인간의 시선 속에 감금된 꽃들이다. 투박한 자연미보다는 세련된 인공미를 풍기는데, 그래서 그 정물화의 화사한 꽃무더기가 생명력 있는 꽃들이 아니라, 거대한 이익을 창출시키는 상품으로 보이는 것은 나의 오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