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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우리나라 관광객 유감

by 양문규

베트남 관광을 간 건 지금으로부터 한 20년 되니, 아득한 옛날 일이다. 이 글은 여행기는 아니고 당시 같이 여행했던 이들에 대한 나름의 소회를 적은 글이다. 이는 비단 베트남만 아니라 이후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도 동행한 우리나라 관광객들에게 가졌던 생각이기도 하다.


베트남 관광에 동행했던 이들은 내가 재직했던 학교 연구소 소속 선생님들이었다. 그 연구소는 다소 보수적인 성향을 띠었는데, 선생들의 성향 역시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그런 편이었다. 베트남 여행이라고 해봤자 하노이와 그 인근을 갔다 오는 며칠간의 여행이었다.


여행을 한 건 2월 초순경이었는데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 도착하니 밤 11시쯤 되었다. 기온은 10도씨 이하로 떨어졌고 비도 부슬부슬 내렸다. 베트남 사람들에겐 대단한 추위였는지, 이들은 두툼한 파커나 잠바를 입고 의자에 앉아서 다리들을 달달 떨고 있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공항에서 시내로 진입하는 길에는 가로등이 충분하지 않아 상당히 어두운 편이었다. 왜소한 체격의 베트남 사람들이 주는 인상, 그리고 가난한 나라라는 선입견이 여행 내내 베트남의 가난한 현실들을 자주 의식케 했다.


한글 상호가 그대로 남아 있는 한국산 중고차들, 오토바이나 다니는 길임에도 하노이에서 100km도 훨씬 안 되는 관광지를 3시간 너머 걸려서 가는 도로 사정. 베트남서 귀국하는 비행기에 동승한 긴장된 표정의 산업연수생 청년들, 풍문으로 들려왔던 베트남 신부들 이야기…


그러나 가난이 무슨 죄도 아니고, 이 나라가 한 세기 너머 외세와의 대결이라는 험난한 역사적 과정을 겪은 나라라, 나는 그런 점은 무시하고 관광을 했던 참인데 동행한 선생들은 어딜 가든 이들의 가난을, 우리의 경제적 번영과 비교하며 한심해했다.


특히 선생들은 베트남이 오랫동안 미국과 대결해 싸운 공산주의 국가라는 점에서, 그들의 가난을 비웃었다. 그러나 베트남전이 종료되던 사이공 함락 당시 베트남을 탈출한 보트 피플의 다수는 베트남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화교들이었다는 사실도 환기해 볼 필요가 있다.


비단 베트남뿐 아니라, 과거 공산주의 국가였던 동유럽 국가들을 여행할 때도 우리나라 관광객들은 비슷한 생각을 했다. 우리와 달리 공장도 눈에 잘 띄지 않고 농사짓는 땅도 드문드문 있는 동유럽 나라들을 보면서 대체 이들은 뭘 해서 먹고 사는지를 궁금해하기도 했다.


‘관광객’은 보통 떼로 다니면서 어디를 가든 그곳을 달갑지 않게 보고 사사건건 제 나라와 비교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여행자’는 어떤 장소나 사회를 가만히 관찰하는 것이지 거기에 개입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


여행은 자신을 넓히는 연습이자 자신의 한계를 아는 연습이다. 내 나라에서 이름난 것이 외국에서는 무효하거나 우스꽝스러울 수 있다. 아무리 진실하더라도 내 견해에만 의지하는 것은 기준이 다른 나라에서는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베트남은 미국과 오랜동안 싸웠지만 이전에는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프랑스 식민 지배에 저항해 독립운동을 해온 나라다. 19세기 제국주의 프랑스가 인도차이나를 침략하던 당시, 베트남은 애초부터 생산능력이 발달하고 약탈할 자원이 풍부한 식민지였다.


프랑스는 베트남을 통해 세계를 향해 자신들의 식민 경영능력을 자랑하고 싶었고 하노이를 프랑스의 도시로 개조한다. 가령 1911년 파리의 오페라 극장을 본 따 하노이에 오페라 극장을 만들기까지 하는데, 하노이 거리를 거닐다 보면 유럽적 풍모가 여기저기서 느껴진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살피면, 베트남의 가난이 설사 사실이라 치더라도 이를 좀 더 애정과 관심을 갖고 바라보게 된다. 베트남은 식민지 이전에는 한국, 일본과 같은 한자문화권 나라였다. 동료 한문학 연구자의 말로는 과거 베트남의 한문학 수준이 만만치 않다 한다.


베트남의 독립영웅 호찌민이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애독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가 나온 것도 다 이런 배경서 나온 것이다. 호찌민의 아버지 역시 유교 교육을 받고 한문학을 공부했으나 관직에 진출하지 않고 프랑스 식민지 체제에 반대하는 운동에 나섰던 이다.


우리는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 그 나라에 대해 섣불리 진단하지 않고, 질문은 더 많이 던지되 답은 성급히 내지 않으려 애써야 한다. 가끔은 여행한 나라가 그냥 좋았고, 왜 좋았는지 말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우며, 왜인지 말하면서 그곳을 더 사랑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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