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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Feb 04. 2024

하와이의 타로 음식을 먹으면서 가진 단상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팔자에도 없는 하와이 여행을 다녀왔다. 팔자에도 없다는 건, 난 1980년대 결혼 당시에도 인기 신혼 여행지였던 제주도를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하와이 하면 와이키키 해변인데 아내가 과거 수영복을 입었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나 역시 수영은 물에나 간신히 뜨는 수준이니, 하와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럼에도 미국을 드나들던 애들이 환승용으로 구입했다가 미처 사용하지 못한 하와이안 에어라인의 표가 있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여행을 다녀오게 된 것이다.


막상 하와이 여행을 결정하고 나니 가서 해야 할 일이 별로 떠오르지를 않았다. 그곳의 주요 관광 상품이 수상 액티비티일진대, 앞서 말했듯이 우리 부부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여행 블로그를 뒤지다 보니 그곳의 전통음식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여행 일정 중 식사 한 끼는 전통음식 식당에 가서 해본다는 별로 신통찮은 여행 계획을 세워보았다. 내가 방문한 전통음식점은 여러 블로그에서 소개된 식당이다. 최근 TV의 어느 여행 프로그램에서 인기 유튜버가 그곳을 찾아 식사하는 것도 본 적이 있다. 


식당이름이 ‘하이웨이 인’으로 무슨 기사식당 내지는 패스트푸드 식당이름 같으나, 하와이에서 흔히 보는 쾌적한 분위기의 미국식 레스토랑이다. 나는 웨이터를 불러 하와이 전통 음식은 난생처음이라고 하면서 여러 블로그에서 얻어온 음식 정보들을 주섬주섬 읊어댔다. 


하와이안 청년 웨이터는 그때마다 아주 친절하고 상세히 설명해 줬다. 그리고 내 질문을 인내심을 갖고 들어줬던 게, 내가 할 말을 다 마치고 나니 그때서야 그러지 않아도 그런 음식들을 모아놓은 세트 메뉴가 있으니 그걸 주문하라고 일러줬다.     


'하이웨이 인' 식당(위)과 하와이안 청년 웨이터


하와이 전통음식의 맛은 어떤가? 우리 부부는 아주 좋았다. 맛있기도 하지만 경험해보지 못한 맛이라 더 좋았다. 반면 젊은이들은 그저 그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서 얘기한 TV 화면 속 유튜버의 표정과 멘트가 딱 그랬다.


음식 빛깔이나 모양이 예쁘거나 세련된 것도 아니고 달콤한 맛이 나는 것도 아니다. 타로를 으깨 만든 보랏빛 색깔의 ‘포이’는 쉰 맛조차 난다. 어찌 보면 요구르트 맛이기도 한데, 그러나 구성지면서도 신선하다. 원주민들에겐 젖먹이 우유대용품이나 이유식으로도 쓰인단다. 


타로 잎을 쩌 코코넛 밀크와 오징어와 섞어 만든 ‘루아우’는, 오징어에 그런 맛이 있었나 싶게 웅숭깊은 맛이 났다. 닭고기나 돼지고기를 타로 잎에다 싸서 우거지같이 찐 ‘라우라우’, 타로를 녹말가루와 섞어 만든 후식 같은 ‘우알라’ 등, 음식들 거개가 타로와 관련돼 있다. 


하와이 모둠 전통음식(위), 세트 메뉴판


미국 음식들이 대체로 즉각적이고 자극적인 맛이지만, 타로 음식은 천천히 원재료를 음미하면서 알아가야 하는 맛이다. 우리 근대시인 중 서북 출신의 백석 시인이 있다 그의 시는 한 100여 편 되는데, 그의 시들에는 지역의 음식물이 자그마치 110종이나 등장한다. 


그중 <국수>라는 시에서는, 평안도 지방의 메밀국수를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맛”이라 표현한다. 이 맛이 어떤 건지 정확히 모르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고향 국수의 맛은 문명의 조미료 등이 제공하는 계량되고 예측되고 표준화된 맛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이웨이 인’의 하와이 음식은 현대 미국인들의 입맛에 맞춰 개량된 부분도 있겠지만 약간은 청승스러운 맛이 나는 것이, 이곳서 살았던 원주민의 잃어버린 시간을 떠올리게 했다. 하와이에 미국 자본이 유입되는 건, 19세기 후반 이곳에 사탕수수 농장이 경영되면서부터다. 


사탕수수 농사는 전형적인 자본주의 방식의 플랜테이션 농업이다. 플랜테이션은 지역민과 지역작물을 초토화시켜 거대한 빈 땅을 마련한 후, 외부서 노동력을 끌어와 생산에 투입한다. 20세기 초 노예와 같은 처지로 하와이에 갔던 조선인 이민노동자들도 바로 그런 노동력이다.    


하와이는 이후 사탕수수, 파인애플 플랜테이션을 경영하고, 그것이 시들해지면서 태평양의 주요 군사기지이자 관광지로 부상한다. 이러한 진행과정 안에서 원주민들의 삶은 <알로하오에>의 노래에서처럼 “검은 구름 하늘 가리고 이별의 날이” 왔듯이 점차 사라져 갔으리라. 


원주민의 남은 후예들은 하와이에 투자된 미국자본에 기생하며 오늘에 이른다. 와이키키 해변의 불야성을 보면 미국의 한 주로 편입된 원주민들의 삶을 불행한 것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으나, 타로음식을 먹으면서 과거 그들 삶의 고유한 무게와 시간을 헤아려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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