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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Jan 21. 2024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보물과 모피

상트페테르부르크 관광객은, 파리의 관광객이 루브르 박물관을 두르듯이, 그곳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두르게 된다. 에르미타주는 루브르, 그리고 런던의 영국박물관과 함께 유럽 아니, 세계 삼 대 박물관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오전 10시 30분이 개관 시간인데, 아주 일찌감치 가도 루브르와 마찬가지로 매표소부터 입장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전시실이 700여 개이고, 전시된 270여 만 점의 작품을 이리저리 다 보려면 27km 정도 길을 걸어 다녀야 된다니 박물관의 규모가 어떤지 알 수 있다.


네바 강에서 바라본 에르미타주의 야경


박물관 소장품도 유명한 것들이 많은데 내 경우 주마간산 격으로 확인한 건 유명한 그림들 몇 점일 뿐이다. 가령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그림은 전 세계적으로 십여 점밖에 안 된다는데, 이 중 두 점이 에르미타주에 있다. 


렘브란트 컬렉션의 <돌아온 탕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는 아브라함을 저지하는 천사> 등의 대형 성화는, 오직 이를 보기 위해 한국 교회의 독실한 신자들이 이 먼 러시아까지 여행을 하러 온다는 얘기도 들었다. 


<돌아온 탕자>(위)와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는 아브라함을 저지하는 천사>


현대화가인 마티스 컬렉션에는 그의 대형화 <음악>과 <춤>이 마주 보고 전시돼 있다. 이 그림은 러시아 무역상이 마티스의 그림을 제작 주문도 하고 마구잡이로 사들이면서 러시아로 온 것들 중 하나인데, 당시 프랑스인들은 그 무역상을 ‘미친 러시아인’으로 비웃었다고 한다.


마티스의 <음악>(위)과 <춤>


이런 그림만이 아니라 에르미타주에는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무수한 보물들이 소장돼 있을 것이다. 에르미타주 소장품이 세계적 컬렉션이 된 데는 러시아의 여자 황제 예카테리나 2세가 이 궁을 짓고 서유럽 화가의 그림을 수집하기 시작하면서 비롯됐다고 한다.


루브르와 영국 박물관은, 자신의 유구한 문화도 있고, 또 그들이 경영한 식민지에서 탈취한 많은 문화적 보물들이 그곳을 가득 채웠지만, 러시아는 어떤 재력으로 그러한 문화적 보물들을 끌어 모을 수 있었을까?  


러시아는 영국과 프랑스와 달리 자기 내부의 식민지가 있었다. 바로 그것은 원래 러시아  동편의 시베리아 땅이다. 시베리아 진출의 첨병은 모피 사냥꾼과 상인들이다. 러시아는 모피 무역을 창출키 위해 담비와 여우와 족제비를 닥치는 대로 잡아들이고 씨를 말리며 동진한다. 


러시아의 시베리아에서의 원주민 착취는 유럽의 아시아‧아프리카 원주민, 미국의 인디언 착취에 못지않았다. 17~18세기 러시아 재정의 1/3을 모피가 차지하는데, 19세기말까지도 시베리아 민족들로부터 징수한 모피 세는 제정러시아 내각 세입의 10프로를 웃돈다. 


모스크바 대공국의 모피무역이 창출한 부는, 유럽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노예나 원주민에게 채취해 유럽에서 독점 가격으로 판 은과 설탕, 아편 따위들과 비교된다. 러시아가 모피로 벌어들인 이런 돈들은 에르미타주가 소장한 보물을 구입하는데 쓰인 것이다. 


물론 에르미타주의 소장품 구입에 적극적 역할을 한 역사적 위인은 앞서 말한 예카테리나 여제다. 그녀는 18세기 러시아를 제국으로 성장시킨 유럽을 대표하는 계몽군주다. 서구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볼테르 같은 프랑스 계몽기 지식인과도 친밀한 사이였다. 


볼테르는 예카테리나에게 계몽사상을 전달했지만, 한편으로 예카테리나는 볼테르의 조언에 따라 러시아의 면적이 이례적으로 넓다는 점을 근거로 러시아의 전제군주제 실시를 정당화한다. 사실 이 넓은 땅들은 다름 아닌 모피 때문에 점령해 나간 땅들이었다. 


예카테리나는 서구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해 러시아 제국을 반석에 올려놓은 ‘철의 여인’이자, 에르미타주의 보물 같은 컬렉션을 모은 ‘지혜의 통치자’로 불리지만, 이는 모피를 공물로,  세금으로 갖다 바친 시베리아 원주민들의 착취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에르미타주 입구의 예카테리나 상


요컨대 에르미타주를 탄생시킨 돈은 어디서 왔던가! 발자크는 “모든 거대한 재산 뒤에는 범죄가 있다.”라고 말했다. 반자본주의적인 생각이기는 하나, 지난번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이 있기도 했는데 삼성 일가의 예술적 관심과 안목에 대해 또 다른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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