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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Mar 17. 2024

체코의 은광 도시 쿠트나호라와 광부의 아들 루터

프라하를 찾는 관광객들 대부분은 프라하 성에 있는, 하늘로 치솟을 듯싶은 고딕 첨탑의 비투스 성당을 구경한다. 그런데 프라하에서 한 60km 떨어진 ‘쿠트나호라’라는 도시를 가보면, 어떤 면에서는 비투스 성당보다 더 아름다운 고딕 양식의 바르바라 성당을 만나게 된다.   


이 성당을 축조한 자는 다름 아닌 프라하의 비투스 성당을 축조한 이의 후손이라고 한다. 고딕의 첨탑들 위로 고깔 모양의 푸른 지붕을 이고 있는 바르바라 성당은 비투스 성당보다 규모는 작지만 그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쿠트나호라가 프라하에 비해 아주 작은 도시임을 감안할 때, 바르바르는 규모가 꽤 큰 성당이다. 13세기 후반 쿠트나호라서 아주 커다란 은광이 발견됐다. 이때부터 16세기에 이르기까지 이 도시는 크게 번영하면서, 옛 보헤미아 왕국선 프라하 다음 두 번째로 큰 도시가 된다.  


쿠트나호라의 바르바라 성당(위) 성당에서 바라본 쿠트나호라의 모습


이 도시가 번성했던 것은 이곳에 은광이 있었을 뿐 아니라, 은화를 제작하는 화폐주조청도 있었기 때문이다. 바르바라 성당은 은광에서 얻은 부로 지어진 성당이었고, 따라서 이 성당에서는 위험한 일을 해야 했던 광부들을 위한 여러 성물들도 구경할 수 있었다.    


성당 안에는 등잔을 들고 작업하는 광부의 목조상도 있고, 작업도구를 든 광부와 은화를 주조하는 이들을 묘사한 프레스코화도 있었다. 이런 프레스코 그림은 유럽의 다른 성당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등잔을 들고 작업하는 광부의 목조상(위), 작업도구를 든 광부와 은화를 주조하는 이들을 묘사한 프레스코화


유럽 그중에서도 독일 작센 지방과 그와 인접한 체코의 보헤미아 지역 등이 위치한 중부유럽은 14세기 중엽까지 세계서 은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아메리카 잉카 제국 등지서 은광이 새롭게 발견되면서 유럽의 은광도시들은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당시 체코와 독일 지역의 경계는 모호했고, 이 지역에 광산이 개발되면서 양쪽의 기술과 인력 왕래가 활발했었던 듯싶다. 중세 후반부터 18세기까지의 시기는 독일이 광산 개발로 부를 축적한 시대이기도 하다.


이 시기 영국은 해외 식민지를 향해 바다로 나가지만, 독일과 체코 등의 중부유럽은 광산이라는 지하세계로 들어간다. 뒤에 괴테 같은 독일 문호가 광산과 지질학 등에도 관심이 많았던 것도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보헤미아 옆 작센지방은 앞서 말했듯이 독일의 주요 광산지역이다. 이 지역의 은광은 지역 제후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했다. 종교개혁을 주도한 루터의 아버지도 작센 광산의 광부로 일하다가 용광로 관리인이 되고, 말년에는 구리 광산 주인으로 변신한다.


루터는 광산촌의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그의 주위에는 체코 보헤미아 출신의 이주민을 비롯한 외국인 광부들도 많이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넉넉한 수입 덕분에 대학서 공부하고 처음엔 변호사, 나중엔 수도사가 되지만 루터의 생애 전반은 광산업과 밀접한 관계에 놓인다. 


루터가 살던 시기 푸거라는 대자본가가 있었다. 푸거는 얼마나 유명한 부자인지 독일 우표에 그의 초상이 오를 정도다. 이 푸거가 큰돈을 벌기 시작한 것이 다름 아닌 광산업에서고 거기서 번 돈으로 대금업을 해 많은 전쟁과 해외탐험, 가령 마젤란의 세계 일주에도 돈을 댄다.


루터 집안은 중소규모의 광산업자고, 이에 비해 푸거 등은 교황 또는 황제들을 배경으로 막대한 자본을 갖춘 광산업자이며 금융자산가였다. 루터네 광산은 푸거 등의 대자본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푸거는 바티칸이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까지 돈을 대주면서 교황이나 황제를 쥐락펴락 한다. 급기야 푸거는 교황과 공조해 면죄부 판매 사업도 고안해 내는데 최초로 면죄부가 판매된 곳 역시 다름 아닌 체코 국경 근처의 광산 도시에서다.

루터는 결국 독일이 로마 바티칸으로부터 독립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면죄부를 죄악으로 비난한다. 그런 루터에게 이단의 평결을 내린 제국회의의 배후에는 푸거의 돈이 있었다. 나는 보헤미아 지역의 광산 도시들을 구경하면서 물질이 가진 정치적 속성을 새삼 절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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