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안식년을 지낼 때 미국의 수도 워싱턴디씨를 꼭 가보고 싶었다. 추수감사절 기간을 이용해 다녀올 수 있었다. 포토맥 강으로 은행잎이 흩뿌려지는 만추의 워싱턴은 미국 국내 정치뿐만 아니라 국제정치의 긴박한 현장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이러한 평화롭고 아름다운 인상은 이 도시의 정연한 모습 때문에도 더 그런 것 같았다. 워싱턴은, 미국의 한때 수도였던 필라델피아나 뉴욕과 달리 원래 삼림과 농지가 뒤섞인 곳에, 미국이라는 신생국의 가치를 보여주고자 의도를 갖고 만들어진 계획도시였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아름다운 풍경은 물론이요, 이곳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단지 안에 있는 수많은 박물관과 내셔널 갤러리 등을 무료로 관람하면서, 미국이 부자 나라이고 번영의 제국임을 새삼 느꼈다.
한편 워싱턴디씨 하면 역시 링컨기념관이다. 파르테논 신전을 본뜬 이 기념관은 밤이 돼 사방 조명을 받으면 더 장엄히 솟아오른다. 기념관 중앙 링컨의 거대한 동상은 미국다운 과장법은 보여도, 워싱턴디씨가 누구 말처럼 미국 민주주의의 에덴동산임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워싱턴 관광을 할 때 시내에서 숙소를 구하기 쉽지 않아 포토맥 강 건너 버지니아에 있는 조그만 여관을 잡았다. 그래서 며칠간 이곳 여관서 워싱턴을 출퇴근(?)했는데. 저녁이 돼 숙소로 돌아올 때면 늘 버지니아 주의 주도 리치먼드로 가는 이정표를 봐야 했다.
리치먼드는 남북전쟁 당시 남부 열한 개 주가 미합중국서 탈퇴하면서 결성한 남부 연합의 수도였다. 여행할 당시만 해도 리치먼드 시내에는 로버트 리 장군을 비롯한 5명의 남부군 지휘관 동상이 있고 남부 연합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고 들었지만 가보지는 못했다.
링컨이 있던 워싱턴에서 남부 연합의 수도인 리치먼드까지는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셈이었다. 남북전쟁(1861~1865년) 내전에서 미국은 60만 명 웃도는 희생자를 냈다. 수많은 공방이 벌어졌을 법한 리치먼드로 가는 이 길도 나에겐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물론 미국 내전 중 최대 규모의 전투가 벌어진 곳은 워싱턴디씨 북쪽 펜실베이니아 주 게티즈버그다. 이 전투의 사상자 수는 5만 1천 명인데, 이는 1962~75년의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의 사상자 수와 완전히 같다고 하니 당시 미국의 동부 지역은 어느 곳이든 아비규환이었다.
추수감사 연휴기간과 함께 워싱턴 여행이 끝나면서 뉴욕케네디공항으로 가고자 워싱턴디씨를 빠져나오니 곧바로 메릴랜드 주의 주도인 볼티모어였다. 볼티모어는 워싱턴과 그대로 붙어있는 셈인데, 남북전쟁은 실제 이 볼티모어에서 시작된다.
메릴랜드 주는 남북전쟁 당시 연방에서 탈퇴하지는 않았지만 분리 독립에 찬성하는 즉 남부 연합을 지지하는 정서가 강했다. 북부 연방을 지지하는 정서도 역시 강했으니, 볼티모어는 한마디로 화약고였다. 그래서 링컨은 수도인 워싱턴을 차단하기 위해 메릴랜드를 점령한다.
흥미로운 것은, 메릴랜드 주의 주가(州歌) 가사는 이 점령 과정에서 소위 ‘폭군 링컨’에 의해 죽은 남부 지지자의 희생을 기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노래는 2021년에 와서야 비로소 주가로서의 지위를 잃었다고 한다.
링컨을 암살한 이는 미국의 유명한 연극인 집안인 부스 가의 아들 존 윌크스 부스다. 메릴랜드가 고향인 부스는 당연히 노예 폐지를 반대하는 자였는데, 그는 북부사람들이 ‘양키 방식’ 즉 돈벌이되는 것에만 가치를 두는 자들이라며 혐오감을 보였다고 한다.
사실 남북전쟁 후 노예들이 해방돼 문제가 해결됐냐면 그건 아니고 새로운 고난이 기다린다. 흑인들은 대농장서 북부도시로 이주해도 일거리가 없고 공동체도 없었다. 대농장서는 백인도 흑인도 면식이 있지만 도회지서는 교류가 없다. 인종차별이 오히려 혹독해진 면도 있다.
부스가 이를 내다보고 노예제 철폐를 반대하고 링컨을 암살한 건 아니리라. 그럼에도 미국의 본격적 인종주의는 역설적으로 노예제가 폐지된 이후 심화된다. 그리고 이러한 인종주의는 지금까지도 미국 사회의 여러 복잡한 문제와 모순을 은폐하는 기능을 해오고 있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 연합의 버지니아와 이를 지지하는 정서가 강했던 메릴랜드는 수도 워싱턴디씨와 붙어 있다. 세월이 흘러 2021년 트럼프 지지자들이 워싱턴디씨의 국회의사당을 무력 점거하고 난동을 부리던 그날도, 남부 연합의 깃발은 의사당 안을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