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최남단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 말라가로 떠나기 위해 알람브라 궁전의 도시 그라나다를 출발했다. 고원지대의 그라나다에서 말라가를 가려면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넘어야 한다. 시에라네바다 산맥은 원래 이곳 지명이지만 미국 서부에 가도 그 이름이 있다.
미국 네바다 사막과 캘리포니아 태평양 사이의 산맥이 시에라네바다이다. 미국 서부에 첫발을 내디딘 스페인 군대가 만년설로 뒤덮인 거대한 산맥을 탐사하면서 본국의 시에라네바다 산맥과 너무나 비슷하다면서 그 이름 그대로 갖다 붙여 부르기 시작한 것이 유래다.
그라나다를 떠나 갈색의 땅, 올리브가 있는 메마른 강을 지나, 높은 하늘을 등에 업은 시에나네바다를 넘으면 유럽의 발코니 네르하가 시원하게 나타난다.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과 열풍이 훅 끼치며 하얀 집들, 갈색 가슴을 내놓은 여인들이 해변에 보이기 시작한다.
거기서 해안선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 말라가다. 말라가 해변은 종려나무나 귤나무들이 가로수다. 남국의 정취가 물씬하다. 유럽 대부분의 검은색 또는 회색빛 성당과 달리 이곳은 흰색 성당이다. 성당에는 밀감나무가 심어져 있고, 벌레 먹은 주황색 밀감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거리에는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은 흥청댄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주말이었는데, 시내 숙소에 묵으면서 한숨을 못 잤다. 함성 소리가 커졌다 줄었다 하기를 반복하면서 밤을 새워 노는데 정확히 아침 8시가 되어서야 조용해졌다.
놀기도 잘 놀지만 말라가엔 멋쟁이들이 많다. 젊은 사람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나이 많은 노인들조차 멋진 패션 취향을 가졌다. 그냥 흰색 바지에 파란색 남방을 걸쳐도, 그 흰색과 파란색의 느낌이 아주 다르다. 나의 선입견도 작용했을 것이다. 말라가는 피카소의 고향이다.
피카소 생가에는 피카소 재단과 박물관이 있으나 시설은 초라하다. 그의 초기 그림에 많이 사용된 파란색은 말라가의 바다색과 관련된다고 한다. 아니면 젊은 시절 성공은커녕 불안정하고 가난했던 피카소의 우울한 내면이 드리워진 색이라고도 한다.
에드먼드 버크는 스페인을 ‘유럽 해안에 좌초한 거대한 고래’라고 했다. 유럽에 있지만 유럽에 번지수를 잘못 찾은 괴물 같은 존재라는 얘기로 들린다. 아랍인과 무어인 등, 무슬림들이 이베리아 반도로 건너오기 시작한 것이 711년이다. 바로 이 말라가 부근을 통해서다.
이후 칠팔 백 년간 스페인 남서부 즉 안달루시아 지역은 화사한 이슬람식 유럽의 꽃이 피어난다.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의 국경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 유럽이 아니다’라는 말도 있지만, 안달루시아 지방은 스페인과도 또 다르고, 말라가는 안달루시아에서도 남쪽 끝이다.
말라가서 지중해 바다를 건너뛰면 북아프리카다. 뉴욕 현대미술관에 피카소의 그림 <아비뇽의 처녀>가 있다. 20세기 현대미술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 작품이다. 이 그림에 5명의 여성들이 등장하는데, 2명은 아프리카 가면에서, 3명은 이베리아 조각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유럽의 많은 화가들이 아프리카 미술에 매료됐지만, 이를 가장 전위적으로 재창조한 이는 피카소다. 새로운 예술의 원동력은 중심권보다는 피카소가 태어난 말라가 같은 변방에서 오나 보다.
1920년대 말 파리로 그림 공부를 하러 갔던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 나혜석은 정작 프랑스 화가들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다. 대신 그 기간 동안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그곳에서 만난 고야나 특히 엘 그레코의 파격적인 그림들에 많은 글을 할애한다.
미술사가들은 엘 그레코가 벨라스케스, 고야, 피카소, 미로, 달리로 이어지는 스페인 회화사를 장식한 천재 화가들의 출발점이 되는 화가라고 본다. 피카소 스스로도 자신이 그레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얘기하고 있다.
엘 그레코는 원래 그리스 사람이다. 이탈리아를 거쳐 스페인으로 와 그곳 톨레도에 정착한다. 그레코는 그리스와 이탈리아, 스페인이라는 지중해의 세 문화가 혼종이 된 소위 다문화(?) 화가다. 변방이나 혼종은 새로운 예술이나 문화의 비옥한 토양이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