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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Sep 01. 2024

찬비 내리는 베르겐에서 다시 뭉크를

노르웨이 제2의 도시이자 항구도시인 베르겐을 간 건 7월 하순경이었다. 이곳의 위도가 60도지만 대서양 연안이라 겨울에도 그리 혹한의 날씨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간 시기가 여름이었음에도 날씨는 추웠고, 오보인지 잘못 들은 건지, 눈까지 온다는 일기예보도 있었다. 


눈은 물론 안 왔으나 종일 바람이 불고 비가 오락가락하는 을씨년스러운 날씨였다. 노르웨이가 지금은 석유도 나고 연어수출도 하고 심지어 험악한 지형인 피오르드 해안마저 관광지로 각광을 받아 그렇지, 옛날엔 사람 살기 참 고달픈 산천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여행 내내 했다.


그럼에도 베르겐이 고향인 그리그가 작곡한 페르귄트 모음곡 중 첫 곡인 ‘아침의 정조’를 들으면 노르웨이의 산천이 고달프기보다는 신비롭고 영롱한 색채로 다가온다. 어쩌면 이 곡을 낭만이 넘치는 피오르드 유람선상에서 계속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피요로드 해안


“사람은 그 부모를 닮기보다 그 시대를 더 많이 닮는다. 그러나 그보다도 먼저 그 산천을 닮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노르웨이 여행을 하는 내내 이곳 출신의 화가 뭉크를 떠올리게 했다. 음악가 그리그나 극작가 입센은 당연히 노르웨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뭉크는 오히려 프랑스나 독일 쪽 화가가 아니었는지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아마도 그의 그림이 프랑스 인상주의에서 독일 표현주의로 가는 길목에서 중요한 가교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인상주의가 성행하던 19세기 중후반만 해도 유럽의 자본주의는 일층 성숙해지고 낙관적인 미래를 보장하는 듯싶었다. 그러나 세기말로 다가서고, 20세기 들어 1차 대전을 치르면서 유럽의 낙관주의는 비관주의로 바뀌는데 표현주의 미술은 이러한 어두운 배경 속에서 성장한다.


뭉크는 이 표현주의 미술에 큰 영향을 준다. 그의 그림은 알다시피 얼굴이나 자세의 왜곡을 통해, 인간의 불안, 고독, 조바심의 내적 심리를 표현하는데, 독일 표현주의 미술이 이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뭉크의 그림은 20세기 유럽의 시대적 불안을 앞서 예고했던 셈이다. 


뭉크의 그림 속 불안은 그의 비극적 개인사와 관련된 것으로도 얘기된다. 뭉크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면서, “내 요람을 지키던 검은 천사는 질병과 정신 이상이었다”라고 말한다. 뭉크의 어머니는 그가 겨우 5살 되던 해 결핵으로 숨졌다. 


아버지는, 뭉크와 가장 친했던 누이의 죽음을 똑똑히 지켜보라며 한밤중에 그를 깨운 미치광이였다. 누이 역시 결핵으로 죽고, 그때 뭉크의 나이는 15살이었다. 뭉크는 “정신적 고통은 나와 내 예술의 한 부분이다. 나로부터 그것을 떼어낸다면 내 예술이 파괴될 것”이라고 했다.


뭉크의 '임종'


노르웨이 하늘의 구름은 빠르고 사납게 흐른다. 구름은 때로 햇빛을 받아 순간 빛나고 다채로운 형상을 띠기도 하지만, 곧 세찬 바람의 어두운 기운으로 잿빛 그늘이 지고 우울하게 엉키고 성을 냈다.  


바람이 불면 북구의 나무와 숲들은 외로움에 서로의 몸을 격렬히 섞었다. 노르웨이의 침울한 하늘과 구름, 언덕, 숲과 나무, 바다는 모두 뭉크 그 자체다. 베르겐에 있는 코데(KODE) 박물관에는 뭉크 최고의 컬렉터 라스무스 메이어(Rasmus Meyer)의 뭉크 컬렉션이 있다. 


뭉크, 제목 미상


그곳에서 천천히 다가가 본 뭉크의 회오리와도 같은 붓질은, 곧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노르웨이의 하늘과 구름이었다. 노르웨이는 북위 57~81도 사이에 위치해 국토의 삼분의 일이 북극권에 속한다. 빙하가 국토의 75%를 점하고, 절반 이상이 해발 500m 이상의 산지다. 


노르웨이의 하늘, 구름, 바다


작곡가 그리그는 국민음악가라 부르는 만치 당연히 노르웨이의 풍미 진한 민속에 뚜렷이 빚지고 있다. 그의 유명한 피아노협주곡 A단조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1번과 자주 헛갈리는데 양자 모두 북구의 애수를 드라마틱하게 표현한다.   


 『인형의 집』의 입센은 그의 연극이 지닌 사회적 교훈 때문에 명성을 떨치긴 했어도, 원래 그는 북구의 우울한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제자임을 기억해 보자! 베르겐 차가운 바다를 긋는 물새를 보며 뭉크는 그중에서도 그곳의 산천과 날씨를 가장 닮은 예술가라 생각했다.    


베르겐 해안(위)과 부둣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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