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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Aug 18. 2024

한자도시 그단스크 항구의 갈매기

비행기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폴란드 바르샤바를 가고자 했을 때였다. 중간에 그단스크를 거쳐 바르샤바로 가는 싼 가격의 비행 편이 있었다. 떡 본 김에 굿 한다고 그단스크라는 곳을 관광하고 가면 어떨지 생각했다. 


이 도시는, 1980년대 공산주의 정권에 맞서 이곳 조선소를 중심으로 동유럽 최초의 합법 노조인 자유노조를 조직해 투쟁운동을 일으킨 바웬사라는 노조운동가 때문에 유명하다. 폴란드에는 민주화를, 바웬사에게는 노벨평화상을 안긴 곳이 바로 이 그단스크다.    


바웬사 때문에 그단스크를 간 건 아니고, 굳이 말한다면 이 도시가 대표적인 한자(Hansa) 도시라는 점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서부터 연착이 됐던 비행기가 그단스크 다 와서는 발트해의 돌풍으로 착륙을 못 하고 바다 위를 떠돌더니만 결국은 바르샤바 공항으로 가서 착륙했다.  


내가 가려고 했던 바르샤바를 이틀 먼저 온 셈이 됐다. 항공사 쪽에서는 버스로 승객들을 다시 그단스크로 데려다준다고 했다. 그단스크에서 바르샤바까지 비행기로는 1시간이지만, 버스로 가면 도로사정이 안 좋아 5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한밤중에 그단스크를 들어가게 되니, 다음 날 하루 남짓 그곳을 머물다가 다시 비행기를 타고 바르샤바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단스크가 고향이라는 부인과 그녀의 아들인 젊은 청년에게 그단스크가 가볼 만한 곳이냐고 물어봤다.  


그 어머니는 꼭 가보라고 하고, 아들은 시크하게 별 볼 일 없다고 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은 가기로 결정했다. 나중에 보니 그 엄마 말도 맞고 아들 말도 맞았다. 자정 넘어 그단스크에 도착하니 불빛 하나 없는 시커먼 밤이라서 주위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올드타운에 위치한 숙소 앞에 신천지가 펼쳐졌다 그단스크는 한자도시다! ‘한자’는 중세 시대의 강력한 무역조직을 말한다. 루프트한자 항공사의 바로 그 한자다. 북해와 발트해에서 교역하던 한자동맹은 수십 개의 기지와 창고, 수백 척의 무장선박을 거느렸다.


그단스크 올드타운의 풍경들


한자동맹은 도시마다 무역 거점인 ‘팩토리’를 만들었는데, 팩토리는 제품 보관 창고, 사무실, 교회, 회사원을 위한 주거시설 등을 갖춘다. 그단스크는 한자동맹에 소속된 항구 도시들 중에서도 큰 형님 격의 포스를 차지하는 대도시였다.


15~16세기에 세워졌을 법한 등대, 망루, 잔교, 운하 양편의 세관, 수출입사무소, 창고들은, 마치 도시 전체가 창고였다 하는 암스테르담을 방불케 했다. 그단스크는 유럽 바깥서 들어오는 서유럽 물품과 폴란드 밀 등의 곡물, 러시아의 임산물을 중개하는 중요한 허브 항구였다.   


그곳은 중세 시절의 항구가 어떠했는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곳이었다. 건물의 양식도 서유럽 항구도시의 건물을 닮았으면서도 동유럽적인 요소들이 가미가 돼있어 더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은 고립이 아니라 다양한 교류에서 피어난다.”는 말을 실감하겠다.


와보기를 대단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옛날의 모습이 신기할 정도로 보존이 잘 돼 있어 좀 이상하기는 했다. 그단스크는 한때 단치히라고도 불렀다. 이 요지의 항구도시는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이름이 그단스크가 됐다가 단치히가 됐다가 한다.     


내륙지역인 폴란드는 발트해로 진출할 전용 무역의 통로를 늘 갈구한다. 북해와 함께 발트해를 장악하고자 했던 독일도 이 도시를 끊임없이 넘본다. 프로이센 치하에 있던 단치히는 1차 세계대전 종료 후 국제연맹에 의해 독일도 폴란드 영토도 아닌 ‘단치히 자유시’가 된다.  


이후 와신상담(?) 하던 독일은 1933년 1월 총리로 임명된 히틀러가 먼저 단치히 내의 반(反) 폴란드 세력을 규합하기 위한 선동에 나선다. 그리고 1939년 9월 1일 독일군이 바로 이 단치히를 침공하면서 2차 대전이 발발한다. 이 지역은 전쟁 중 폭격으로 무참히 파괴된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단치히는 그단스크로 영구 개명된다. 남은 독일인들은 모두 추방되고 그 자리를 폴란드인들이 채운다. 내가 본 그단스크는 폭격으로 만신창이 된 후 복원된 것이다. 중세의 항구도시가 재건되면서 일부는 일종의 테마파크의 건물처럼 변한 셈이다.


별 볼 일 없다고 한 건 그단스크의 이런 모습 때문은 아닐까? 그럼에도 임립힌 창고와 창고 사이 어두운 골목길, 그 사이로 길을 잃고 헤매던 갈매기가 소리 지르고 푸른 하늘로 날아가는 풍경에서, 발트 바다의 가슴을 헤치고 들어오던 한자 상선과 선원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그단스크 시의 모트와바 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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