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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Sep 15. 2024

로마에서 세비야로, 스카를라티 덕후!?

스페인 세비야로 가기 위해 이태리 로마의 다빈치 공항을 출발했다. 세비야는, 로마와 마찬가지로 같은 남부 유럽의 도시지만, 로마와는 싹 다르다. 로마는 많은 세월을 거쳐 서서히 쇠잔해 왔는데, 그럼에도 유럽 문화의 영원한 전범이 되는 도시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은 “오, 로마! 나의 조국! 영혼의 도시여! 마음의 고아들은 그대를 향해야 한다.”라고 했다. 프랑스 파리는 로마를 흉내 냈고, 독일 베를린은 파리를 의식해 대신 아테네를 본떴다고 한다. 그 무엇이든 그리스‧로마는 유럽의 고향이다.   


스페인은 아니다. 스페인의 첫 도착지였던 세비야가 이를 잘 보여준다. 세비야는 8세기부터 500여 년 동안은 이슬람세력의 지배를 받는다. 곳곳에 이슬람문화가 남아 있다. 물론 14세기 무슬림들이 물러난 후 다시 가톨릭 스페인이 들어온다.


에드먼드 버크는 “스페인, 그것은 유럽 해안에 좌초한 거대한 고래”라고 말했다. 유럽인들에게 스페인은 유럽의 예외적인 지역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세비야에서 펼쳐지는 이슬람적 유럽의 풍경은 자못 화려하고 화사하다.  


세비야 성당은 이슬람 양식과 가톨릭의 고딕 양식, 그리고 유럽의 여러 양식들이 공존한다. 오렌지 뜰이 있던 세비야 성당은 아주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여러 문화가 조화로운 짜깁기를 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각각의 문화의 차이들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이기 때문이다. 


세비야 성당


로마는 순수하고 동일하다. 세비야는 어수선하지만 다양하고 풍부하다. 세비야 말고 그라나다, 톨레도, 코르도바 어디든 이슬람문화가 없으면 그 도시들이 빛나지 못했으리라. 아라베스크, 격자문양, 타일, 좁고 구부러진 골목들이 없는 이들 도시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세비야의 알카사르 궁전
톨레도 골목의 화가



도미니크 스카를라티는 약간 낯선 음악가이기는 하나 음악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다. 나는 스카를라티 덕후(?)이다. 덕후는 한 분야에 집착하는 사람. 또는 이에 전문적인 지식을 지닌 사람을 말하는데, 딴 사람이 그리 인정하는 건 아니고 나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한다.  


스카를라티의 건반악기 소나타 곡이 550여 개 된다. 전곡을 하프시코드로 연주한 음반은 있되, 피아노로 연주한 음반은 아직 없다. 외국의 한 마이너 레이블에서 연주자를 바꿔 가며(한국 피아니스트도 몇 명 있다.) 일 년에 한 두 개꼴로 음반을 출시하는데 아직 완료를 못했다. 


나 스스로를 스카를라티 덕후라고 부르는 건, 1994년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 출시된 그의 앨범 28개를 오랜 세월 구입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앨범은 구하기 힘든 것도 아니고 비싼 것도 아니다. 그냥 30년에 걸쳐 구입했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 기특히 생각할 뿐이다.  


내가 ‘덕질’을 해온 스카를라티는 이태리 나폴리 출신 사람이다. 바흐와 비슷한 18세기에 활동한 음악가다. 그런데 그를 대표하는 작품인 건반악기 소나타 대부분은 그가 이태리에서 스페인으로 이주하고 난 후인 그의 말년에 작곡된 것들이다.


나는 음악 전문가가 아니고 단지 스카를라티를 사랑하는 자이다. 바흐가 모차르트나 베토벤 등의 서양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음악가라는 건 누구나 다 인정한다. 내 생각으론 피아노 소나타만큼은 스카를라티가 모차르트 등 그 이후의 소나타를 예견하고 있는 듯싶다.    


더 이상 얘기하다간 알량한 음악지식이 들통날 것 같아 각설하고, 내가 스카를라티를 사랑하는 건, 바로크 시대 음악가인 그의 피아노 소나타에 스페인 요소가 곳곳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특히 스페인 전통의 대표적 악기인 기타 기법, 트레몰로 소리 등이 피아노서 재현된다.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스페인의 민속, 플라밍고, 이야기들도 들어 있다고 한다. 이런 스페인의 요소들에는 거슬러 오르면 이슬람적인 요소도 있으리라. 요컨대 스카를라티의 피아노 소나타에는 정통 유럽만이 아닌 다른 이질적 문화들이 혼효돼 있어 매력적이다.  


순수는 빈곤하고 억압적이지만, 혼효는 풍부하고 관용적이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스카를라티의 혼성 내지 혼효가 없었으면, 모차르트나 베토벤 등은 어쩌면 바흐로부터의 순수한 동일성을 반복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로마는 유럽의 본질과 보편성을 상징하지만, 세비야는 개별적인 것의 다양성을 얘기한다.  이슬람, 기독교, 유대문화 등 여러 문화의 공존! 스피노자는 이상적 사회란 우정과 사랑으로 하나로 일치하며 저마다의 능력에 따라 자유롭게 살아가는 자발적 결사체를 의미한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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