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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Oct 06. 2024

1930년대 통속소설 『찔레꽃』과 어머니의 ‘찔레꽃’

1937년 김말봉의 『찔레꽃』이 『조선일보』에 연재되던 그 해 중일전쟁이 터진다. 전쟁 시국은 사람들의 모든 일상을 흔들어놓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오히려 이 시기 식민지 조선은 자본주의의 열풍이 일고,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상업적 통속소설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중 『찔레꽃』은 가장 인기를 끈 통속소설이다. 이 소설 역시 극 중 남녀인물들 간 몇 겹의 삼각관계를 그린다. 그러나 이 소설이 유독 독자들의 관심을 끈 건, 아마도 독자들이 다소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현실적인 부호층 집안의 풍속이 그려지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22살 보육과 출신으로 유치원서 교편을 잡았다가 실직한 주인공 안정순은, 두취(은행장) 조만호 집 가정교사로 입주한다. 그녀는 이미 사귀던 남자가 있지만, 이 커플과 조만호 집안의 사람들이 이리저리 얽히면서 ‘막장 드라마’와도 같은 복잡다단한 삼각관계가 펼쳐진다.  


조만호의 큰딸 경애는 동경서 미술공부를 했다. 그의 아들은 경도제대 졸업 후 세계 일주를 다녀왔다. 조만호 집은 “층층대로 올라가는 이 층집”이다. 서가에는 서양화와 골동품이 즐비하다. 가족들은 간식으로 ‘멜론’이나 ‘아이스크림’, 때로는 양주(洋酒)가 든 초콜릿을 즐긴다.  


경애의 취미는 승마인데 보이프렌드와 함께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서울 거리를 거닐어 세간의 화제가 된다. 이들은 수시로 일본을 다녀오는데, 요코하마에서 서울까지는 기차와 기선으로 시간이 단축돼 이틀도 안 돼 나들이를 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또 외국 여행을 위해 총독부 외사과에서 여행권을 발급받는 일화도 나온다. 이런 것들이 당시 아예 없었던 일은 아니겠으나, 독자들에게 상류층에 대한 강한 호기심과 선망을 불러일으켰으리라. 이에 비해 주인공 정순은 보잘것없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다.


조만호 집안의 사람들은 사악하고 타락한 욕망들로 가득 차 있으나, 이와 대조적으로 정순은 가난할지언정 자기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여인이다. 물론 독자들은 이게 잘 와닿지가 않는다. 정순의 이런 모습들이 개연성 있는 사건과 행위를 통해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찔레꽃’이라는 이미지 하나로 그녀의 모든 것이 설명된다. 그러니 통속소설이라 하지 않겠나! 정순이 좋아하는 꽃은 찔레꽃이다. 부잣집 딸 경애가 좋아하는 꽃은 프리지어나 달리아이다. 경애네 식탁은 치자 꽃으로 꾸며지고, 고려자기 화병엔  늘 꽃 몇 송이가 꽂혀 있다.   


그러나 찔레꽃은 “보아주는 이가 없어도 홀로 피고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향기를 보내주는” 꽃이다. 정순은 그런 여인이다. 사람들은 그 찔레꽃에서 정순의 “값 높은 영혼”을 비로소 알아차리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엔 아예 유행가 가사 같은 내용이 흘러나온다.    


“창 너머 잎도 떨어지고 가지도 시들어진 찔레 덤불 위에 때 아닌 찔레꽃이 송이송이 나르니 그것은 겨울의 선물 흰 눈이다. 그것은 하염없이 흩어지는 찔레꽃 화변의 하나 하나이다. 아니 덧없는 인생 행복. 정순의 가슴을 가시처럼 할퀴여 주고 간 사랑이 아닐까.” 


『찔레꽃』이라는 소설 전체가 찔레꽃이라는 상징으로 덮여 있음에도 내 경우 그동안 찔레꽃이라는 꽃 자체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다. 요즘 찔레꽃을 생각하면 어머니 때문에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진다.     


아흔네 살의 노모는 지금 요양원에 가 계신다. 이년 전 치매 증상으로 혼자 지낼 수 없게 된 어머니를 처음부터 요양원에 모시는 건 너무도 가혹한 일이라 우리 집에 모셨었다. 요양원 가기 직전인 작년 5월에는 아주 잠깐 주간 보호센터에 다니기도 했다.


그곳에서 코로나에 감염돼 일주일간 병원에 격리입원을 하게 됐다. 어머니가 갑자기 낯선 환경에 가있다 보니 용변을 보는 문제와 함께 섬망 증세가 심해져 어머니 당신은 물론 간병하는 이들 모두 곤욕을 치렀나 보다. 


병원 원장은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실 것을 완곡히 권했다. 나도 거의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이런 상황을 전혀 모르는 어머니는 퇴원하셔 우리 집으로 가게 되자, 아들네 집으로 돌아간다는 기쁨에 마치 어디 소풍이라도 가는 어린애같이 들떠하셨다. 


차 안에서 바깥 풍경을 보던 어머니는,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하얗게 무리 지어 핀 찔레꽃을 발견하곤, 저게 다 무슨 꽃이냐 하면서 꽃들이 예쁘다는 감탄사를 연발하셨다. 


어머니와 다시 찔레꽃을 볼 수도 있으련만, 인제는 어머니를 집에 모신다는 일이 겁부터 나는 불효자다. 최근 어머니는 고관절 수술로 누우셨다. 작가 김말봉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야산 숲 속에 버려진 눈물인 듯 피워 난 찔레꽃을 순정한 여인에 비유했다.  


어머니는 덤불 속에 흐드러진 그 찔레꽃들을 보며, 꽃 이름도 모른 채 예쁘다며 탄성을 지르셨다. 지금 생각하니 어머니는 아들네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는 안도감에 굳이 찔레꽃이 아니더라도 오월의 모든 것이 행복하고 아름답게 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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