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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Oct 13. 2024

디즈니랜드와 오펜바흐의 음악


미국 유타에 있을 때 유학생 가족과 함께 엘에이를 놀러 갔었다. 그땐 우리 애들이나 유학생 조카애들 모두 초등학생들이라 엘에이를 가면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가야 하는 게 정해진 관광 코스였다.  


방학 때라 디즈니랜드 인근에 숙소를 정하기가 쉽지 않아, 엘에이 외곽 캠핑장에 머물며 매일 놀러 갈 곳을 출퇴근하다시피 했다. 엘에이도 교통 정체가 심해 오고 가노라면 한 나절 걸렸다. 운전해서 도착하면 너무 힘들어 애들끼리 놀라하고 나는 맥 놓고 앉아 있기가 일쑤였다. 


애들도 한국서 웬만한 놀이공원은 다 갔던지라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몰라도 디즈니랜드 정도는 시큰둥해했다. 1일 입장권만 샀던 게 다행이지 싶었다. 물론 그 옆에 새로운 테마 파크인 ‘디즈니 캘리포니아 어드벤처’라는 놀이공원도 있다는 건 거기 가서야 알았다.


디즈니가 만화영화 제작가로서의 명성도 날렸지만 이런 놀이공원까지 만들 생각을 했으니 엔터테인먼트의 귀재임에 틀림없다. 나는 어릴 때 보았던 디즈니 만화영화 자체보다는, 그의 만화영화를 통해 알게 된 클래식 음악에 대한 기억이 더 생생하다.


디즈니 작품 중, 미키 마우스가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나와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을 공연하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원래 이 곡의 트럼펫 팡파르가 유명한데, 디즈니는 이 곡을 동물 캐릭터들의 연주 동작 및 악기의 다양한 특성들과 연결시켜 재미있고 익살스럽게 표현한다.


그러니까 난 ‘윌리엄 텔 서곡’이라는 곡을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을 통해 알았고 이것이 계기가 돼 클래식 음악 감상을 평생의 취미로 삼는 출발점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디즈니랜드를 구경 간 날, 하루 종일 애들 노는 것만 지켜보느라고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  


저녁 해가 질 즈음 화려한 고적대 밴드에 맞춘 백설 공주, 미키마우스, 구피, 도날드덕 등의 퍼레이드와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이와 함께 디즈니가 자신의 애니메이션의 배경 곡으로 즐겨 사용하던 오펜바흐의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어렸을 때 디즈니 영화를 통해 들은 이 음악을 현장에서 들으니 비로소 디즈니랜드에 온 보람을 다 느낄 정도였다. 난 디즈니 때문에 알게 된 오펜바흐 음악을 어른이 돼서도 매우 좋아해,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음반들은 구입할 수 있는 한 거의 다 구입했다. 


오펜바흐는 독일 출생이나 프랑스 작곡가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유대계 프랑스인이다. 유대인 음악가 중엔 기독교로 개종해 대성한 이들이 있는데, 멘델스존이 대표적 예이고 오펜바흐 역시 그렇다. 오펜바흐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나름의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그는 당시 프랑스를 통치한 루이 나폴레옹의 후원 아래 승승장구한다. 이 시기 프랑스 자본주의는 무르익고, 대외로 식민지를 확장하면서 제국주의로의 길을 밟으며 나름 경제적 호황을 누렸다. 물론 사회적 모순도 심화돼 노동자들의 코뮌정부가 잠깐 수립되기도 한다. 


어쨌든 오펜바흐의 오페레타에 등장하는 경쾌한 아리아들은 19세기 흥청거리는 프랑스의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나는 프랑스어를 모르지만, 콧소리 강하고 아주 빠른 속도의 프랑스어 가사로 불러지는 오펜바흐의 아리아들이 대단히 코믹하면서 감미롭다. 


자신의 작품 세계가 늘 심각했던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오펜바흐를 아주 싫어했다. 한마디로 그의 음악이 경망스럽기 짝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펜바흐의 음악이 그게 다는 아니다. 그의 음악에는 소위 아이러니가 있다. 


아이러니는 겉의 의미와 속의 의미가 다르거나 정반대가 될 때 발생한다. 문예비평가들 중엔 아이러니를 내포한 문학이 그렇지 않은 문학보다 우수하다고 보는 이들이 있다. 그 까닭은 아이러니가 인생의 체험을 한 단면만 보지 않고 그 정반대의 면도 동시에 보기 때문이다. 


오펜바흐의 음악은, 인생이 마냥 즐겁고 유쾌한 것 같으나 살짝 뒤집으면 슬프거나 애수에 젖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평생 오페레타만 쓰다가 마지막에 정식 오페라를 딱 하나 썼는데 그게 ‘호프만의 이야기’이다. 이 역시 아이러닉 한 서정의 정수다.     


아이러니는 어느 인생에서나 늘 경험하는 것이다. 오펜바흐의 아이러니는 페이소스를 갖는다. 오펜바흐를 좋아한 월트 디즈니도 단순한 예능인만은 아니었다. 늘 미국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활동했던 정치적 성향이 강한 자로 FBI 민간인 요원이었다는 말도 있다.  


자회사 노동자들의 파업에는 대단히 강경했고, 경쟁 관계에 있는 영화계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몰기도 했다. 사업의 위기 때마다 정부의 도움으로 살아남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가 오펜바흐의 음악을 사랑한 이라는 생각이 들면, 나는 그를 발끝까지 비난하지는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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