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 모양의 스페인 영토 중 옛날 무슬림 세력이 지배했던 중남부가 안달루시아 지역이다. 코르도바는 안달루시아의 옛 중심 도시이다. 스페인 최남단 말라가에서 코르도바까지는 승용차로 2시간 걸리고, 거기서 스페인의 수도인 마드리드까지가 또다시 2시간이 걸린다.
코르도바 시내를 진입하면 어느 위치에서나 보이는 게 이슬람 양식의 메스키타 사원이다. 세비야나 그라나다도 옛날 무슬림의 도시였지만, 코르도바는 도시 중심에 이 메스키타가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어 옛날 이곳이 이슬람 왕국의 수도였지 하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한다.
코르도바가 기독교도에게 점령당한 후, 이 사원은 가톨릭의 대성당으로 변신한다. 현재의 이름은 코르도바 산타마리아 성당이다. 이 사원을 접수한 기독교 왕은 모스크는 파괴하지 않고 대신에 모스크의 첨탑만 성당의 종탑으로 용도 변경을 했기에 옛 모습이 그대로 남는다.
이 메스키타는 세계 이슬람교 사원 중 세 번째로 큰 사원인데 다 그럴만한 배경이 있다. 전성기의 이슬람 제국은 중앙아시아서 시작해 북아프리카를 거쳐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에 이른다. 그 제국의 동쪽 심장부에 바그다드가 있었다면 서쪽엔 코르도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슬람의 황금기는 이들 두 도시를 중심으로 꽃을 피운다. 특히 내가 흥미를 갖는 건 이들 두 도시를 중심으로 거대한 도서관들이 세워진다는 점이다. 먼저 바그다드에 있는 도서관서 그리스어, 산스크리트어, 페르시아어, 시리아어로 된 방대한 필사본의 문헌들이 집대성된다.
학자들은 그 문헌들을 아랍어로 번역하고 주석을 달뿐 아니라, 스스로 천문학, 물리학, 의학, 광학에 관한 박식한 논문들을 생산해 낸다. 이 시기를 ‘이슬람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이슬람 학자들이 주도한 이 성과들은 곧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로 퍼져나간다.
코르도바는 이베리아 반도 무슬림의 지적 중심지였다. 한참일 때 코르도바는 70군데의 도서관을 가졌다. 그중 알카사르 도서관은 40만 권의 서적을 보유했다고 한다. 특히 무슬림들은 그들 치하의 유대인들에게 관용을 베풀어 이들과 협력해 이곳의 학문을 크게 번성시킨다.
이후 코르도바가 먼저 기독교도에 점령된 후, 1492년 마지막으로 그라나다가 점령되면서 스페인 땅에서 무슬림 세력들은 완전히 물러난다. 바로 그 해 1492년, 잘 알다시피 이태리 제노바 출신의 콜럼버스는 무슬림들을 쫓아낸 스페인 왕의 지원을 받아 대서양 항해를 떠난다.
이 콜럼버스의 항해는 스페인을 세계제국으로, 유럽 가톨릭을 세계의 가톨릭으로 만들며, 유럽에는 대서양을 열어 산업자본주의를 촉발시킨다. 콜럼버스의 광신적(?) 열정과 집념이 그의 대서양 항해를 가능케 했지만, 그의 항해 성공에는 여러 다른 요소들도 작용한다.
콜럼버스는 항해 지원을 얻기 위해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왕들을 찾아 여기저기 떠돌아다녔기에 그의 정확한 행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단 그가 이탈리아계 포르투갈 여성과 결혼하고, 코르도바에 장기간 정부를 뒀다는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사생활 정보가 있긴 하다.
그중 나에게 흥미를 끄는 건, 콜럼버스가 항해하기 전인 1486년 바로 그 코르도바에서 서점을 냈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르코 폴로 여행기를 비롯해 지도와 해도 등을 판매한다. 콜럼버스는 코르도바 있기 전에는 리스본서 지도제작소를 운영하는 동생과 함께 했던 적도 있다.
콜럼버스는 동생의 나침반과 지도와 해도들 사이에서 지리학에 관한 책들을 섭렵하고 그가 읽은 책들에 2,500개 이상의 주석을 단다. 참고로 책에 대한 그의 열정은 아들 에르난도 콜론이 물려받는데. 에르난도는 1만 5천 권의 장서를 보유한 16세기 최대의 도서수집가였다 한다.
콜럼버스가 그 많은 곳 중 왜 코르도바에서 서점을 운영했을까? 앞서 코르도바의 도서관 전통도 말했거니와, 이곳 사람들의 책 사랑은 유명해서, 세비아의 어떤 학식 있는 사람이 숨졌을 때, 그의 후손은 일부러 코르도바까지 장서를 보내 정리‧처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책들과 함께 코르도바에 큰 규모로 존재한 유대인 집단들은 아랍어와 문화를 열렬히 흡수하고 무슬림 사회의 많은 영역으로 진출한다. 그리고 수 세기 동안 유대인 학자들은 이곳의 학문적 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코르도바의 지적 전통은 이렇게 형성되는 것이다.
참고로 1492년 스페인에서 축출된 많은 유대인들은 포르투갈로 몰려간다. 그들 중 상당수가 지리, 천문학과 항해술, 세계의 형태, 그 형태를 지도에 표현하는 기술 등에 관한 학식의 전문가들이었다. 포르투갈이 스페인과 더불어 대항해의 시대를 열 수 있었던 배경이다.
콜럼버스가, 스페인 땅에서 무슬림이 유대인들과 협력해 쌓아 놓은 지리학, 천문학 등 ‘이슬람 르네상스’의 학문적 성과가 없었다면, 단지 스페인 왕의 지원만으로 대서양 횡단 항해가 가능했을까를 생각해보게 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