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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Nov 10. 2024

프라하에서의 오페라 구경

라디오나 음반으로 서양 클래식 오페라를 듣는 건 좋아해도, 실제 오페라 공연을 간 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프라하에 일 년 살면서는 서울 살 때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주 오페라 구경을 갔었다. 


체코 사람들 말로는 프라하가 인구 대비 오페라 공연 비율이 유럽에서 제일이라고 한다. 그만큼 오페라 공연이 빈번하다는 얘기인데, 그래서 자주 갔던 건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오페라 공연장에 가는 것 자체가 비교적 수월한 일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일단 프라하의 인구도 백만은 훨씬 넘지만, 도시 규모는 서울과는 비교할 바 없이 작다고 생각하면 된다. 크지 않은 도심 안에 이름난 세 개의 오페라 극장들이 다 모여 있다. 바츨라프 광장 인근에 있는 국립 오페라 극장(State Opera)은 지하철역과 곧바로 연결된다. 


블타바 강가 국립극장 역시 트램 정류장서 내리면 코앞이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바니’와 ‘티토의 자비’가 초연됐던 ‘어스테이트’ 극장은 내가 안식년으로 간 카렐 대학교 바로 옆 골목에 있다. 학교를 오가며, 매일 그곳에서 세계 각국서 온 관광객들이 사진 찍는 걸 봤다.  


국립오페라 극장(위), 어스테이트 극장 앞  <돈조반니> 오페라에 나오는 유령을 형상화 한 조각.


이렇게 유서 깊은 오페라 극장들이 도심 안에 모두 모여 있는 것은 유럽의 오페라 문화나 역사로 볼 때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근대 부르주아 시대 이전 서구 도시에서 공공대중에 대한 상징 건축물은 성당들이었다. 


19세기에는 그 상징물들이 성당에서 부르주아지의 대성당 격인 오페라 하우스 또는 철도역등으로 바뀐다. 현재는 다시 그것이 공연시설과 스타디움 또는 국제적 호텔, 쇼핑몰로 바뀌었다. 19세기 서구 도시는 자신들 도시를 선전하고자 경쟁적으로 오페라 하우스를 지은 것이다. 



루돌피눔 극장. 메인 홀은 드보르작 홀로 현재 체코 필하모니의 근거지다.(위), 스메타나 극장(중),  프라하는 아니고 브라티슬라바의 국립극장


파리, 비엔나, 부다페스트 등 모두 오페라 극장 앞엔 오페라 역이 있다. 이에 비한다면 우리 유명 공연장들은 강남이 개발되면서 최근에 지어진 것들이 많다. ‘예술의 전당’은 바스티유 감옥의 성채 같이 서초동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가까이하기에는 좀 먼 당신이다.  


시골서 온 할머니가 강남터미널서 택시를 잡고 “전설의 고향”을 가자니까 기사가 알아차리고 “예술의 전당”으로 데려다줬다는 우스개 얘기도 있지 않은가! 강남 서초동에 역시 자리 잡은 국립도서관도 그렇게 쉽사리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두 건물 다 어마어마한 규모에 웅장한 외양을 갖췄지만, 그 앞으론 엄청나게 넓은 차선에  많은 차량들이 다니고 있어, 그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지쳐버린다. 아무래도 서울과 같은 메트로폴리스는 일반 시민들이 문화를 즐기기에는 썩 적합지 않은 도시 같아 보인다. 


체코 살 때 프라하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프라하 경제대학교 학생을 우연히 만났다. 그는 부전공으로 신학을 하며 성악도 공부한다고 했다. 오페라 구경도 자주 간다고 했다. 그게 체코 학생들의 일반적 경우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식으로 공부하고 생활하는 게 부럽고 신기했다. 


나는 그에게 한번 오페라를 같이 보러 가자고 제의했다. 그 친구는 매표소 직원과도 아주 낯이 익은 걸로 봐 오페라 관람이 일상화 돼있는 것 같았다. 오페라 극장의 관람료 등급은 한국보다 훨씬 다양했고 등급 별 가격차도 우리처럼 크게 나지 않았다. 


학생은 일반인의 삼분지 일 정도가 됐나 보다. 그 학생이 매표소 직원에게 내가 카렐대학교의 방문학자로 와있다고 얘기하니, 입장료의 반 정도를 할인해 줬다. 국내서 조조할인영화를 보는 가격 정도였다. 나 같은 구두쇠(?)도 이후 프라하서 오페라 구경을 자주 가게 된 이유다.  


오페라 극장은 최대한 많은 관객을 수용하면서도 관객들을 무대에 가까이 앉게 할 방법을 찾는데, 그 해결책이 관객석에 많은 층을 경사지게 둬 위에서 내려다보더라도 최대한 무대가 가깝게 보이게 하는 것이다. 요금이 싼 고층의 발코니 좌석에서도 늘 생생한 무대를 느꼈다.   


프라하 오페라 극장의 고층 좌석들은 과장을 보태서 얘기한다면 무대로 곤두박질쳐 내려갈 것 같이 경사져 있다는 느낌을 줬다. 오페라 극장들의 규모도 우리 서울에 있는 유명 연주회장과 달리 일정 정도의 크기를 넘어가지는 않았다. 


국립 오페라 극장의 내부(위), 휴식 시간에 와인 한잔을 즐기는 관객들


근데 솔직히 말하면 프라하서 오페라 구경 자체가 특별히 감동적인 건 아니었다. 오히려 공연이 끝난 후 집에 돌아갈 때의 밤 풍경이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프라하의 봄이 오면 이미 해가 꽤 길어져 오페라가 끝난 시간에도 아직도 푸르스름한 저녁 기운이 남아 있었다. 


오페라 극장 앞으로 트램이 지나가면, 거리의 불빛들이 프라하의 아름답고 오래된 건물을 적시듯이 스며들었다. 그러면 나는 혼자서 낯선 거리를 걸어 그날의 아리아들을 콧노래로 흥얼거리며 일부러 다음 정류장까지 걸어가 트램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먼 옛날 대학시절, 서울예고 학생들의 연주회가 유관순 기념관에서 자주 열렸다. 공연이 끝난 후 호젓한 정동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행복했었다. 늦은 밤 예술의 전당 앞 장사진을 이룬 버스정류장서 황망히 버스를 잡아타고 귀가해야 하는 지금과는 비교가 되던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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