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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에서, 동부 부자들의 아편 밀수

by 양문규

미국이나 유럽의 동양학 연구소 또는 도서관을 가서 한국의 도서 컬렉션들을 살펴보면 질로나 양으로나 중국은 물론 일본에 비해서도 한참 빈약한 편이다. 아주 옛날 얘기이긴 하지만, 보스턴 인근 하버드대 옌칭 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한국인 사서는 4명이었다.


이에 비해 일본인 사서는 12명, 중국인 사서는 24명이었다. 사서의 숫자가 국력 및 장서 규모에 비례하는 셈이었다. 옌칭 말고도 대부분의 동양학 연구소는 중국인들이 장악하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은, 18세기 이후 근세 들어 서양 나라들의 대단히 큰 관심 대상이었다.


유럽의 후예인 미국 역시 중국에 대한 관심을 기울인다. 단 미국은 초기에는 유독 경제적 교역 측면에서 중국에 접근한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되기 이전 식민지 미국은 영국 동인도회사에 꼽사리 껴서 중국과의 무역을 해왔다.


미국은 독립한 이후에는 독자적으로 무역의 길을 터나가야 했다. 그러나 미국은 당시 중국에다 갖다 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형님’ 격인 영국이 당시 중국과의 거래에서 큰 이문을 남기던 장사에 주목한다. 바로 인도나 가끔은 터키서 중국으로 가는 아편밀수다.


아편사업에 손을 댄 미국은 19세기 중엽 아편전쟁이 일어날 시기쯤에는 중국서 소비하는 아편의 1/3을 밀수한다. 영국 동인도회사의 아편시장 지배력에 적잖은 위협을 가했던 셈이다. 게다가 미국은 단순히 아편 밀수만 아니라 아편무역에서 몇 가지 혁신을 주도한다.


그중 하나가 미국 북동부 볼티모어 항구에서 쾌속 범선을 설계해 인도에서 중국까지 아편을 운용하는데 기동력을 가지고 활용한다는 점이다. 또 이 선박은 인도 계약직 노동자들을 영국 식민지로 실어 나르는 고수익 사업에도 사용된다.


미국상인들은 중국 아편무역에 뛰어들면서 불과 몇 년 만에 엄청난 부를 거머쥐고 미국 북동부 지역의 상류층으로 부상한다. 미국 동부 지역의 엘리트는 남부와 같이 면화농장 지주가 아닌 상인 계층이다. 소위 돈벌이되는 것에 지고의 가치를 둔 이른바 북부 ‘양키’들이다.


보스턴에 머물 때 옌칭 말고도 세일럼의 피보디 에식스 박물관을 방문했다. 원래는 『서유견문』을 쓴 개화파 유길준 관련 유물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유길준은 박영효를 수반해 미국을 왔다가, 유학생으로 남아 동물학자인 모스의 제자로 그의 집에 기숙하며 그를 사숙한다.


유길준은 한국 최초의 미국 유학생인 셈이다. 유길준의 스승인 모스는 바로 이 박물관의 초대 관장을 맡기도 했다. 유길준 전시실은 당시 보수 중이라 정작 그곳을 구경하지는 못했다. 대신 미국 상인들이 청나라와 무역하면서 가져온 중국 관련유물들을 볼 수 있었다.


하버드 옌칭(연경; 북경의 옛 이름) 도서관이 중국 관련 고서적들로 가득 차 있다면, 피보디 에식스 박물관은 미국이 중국과 무역하면서 광둥 등지서 가져온 값비싼 희귀품과 옷장, 부채, 골동품 등 청나라 일상용품들의 구경거리로 가득 차 있었다.


물론 당시 이 박물관을 구경하면서 초기 미국 상인들이 벌어들인 부의 대부분이 아편 밀수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미국 상인들은 아편 무역을 하면서 새로운 국제무역과 금융을 이해하고 다수는 성공한 기업가로 성장한다.


이들은 아편으로 거둔 돈을 미국 경제의 여러 분야에 투자한다. 미국의 아편 상인들은 자신들의 상행위 대해 크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본국으로 돌아가서는 이를 비밀에 부친 채 선한 시민이자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기부에 힘쓰고 사회의 모범으로 살아간다.


아편무역에 뛰어든 미국 가문 중 유명해진 가문 중 하나로 매사추세츠 출신의 ‘델러노’ 가문이 있다. 고래잡이 소설 『모비 딕』으로 유명한 멜빌의 단편소설 「베니토 세레토」에는 이 델러노가 흑인 노예들을 너그럽고 친절하게 대하는 선장으로 등장한다.


물론 이 소설에서 아편 얘기 따위는 비치지도 않는다. 델러노 집안은 미국 32대 대통령에 오른 ‘금수저’ 출신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의 외가 쪽 집안이다. 우리가 잘 몰라서일 뿐, 벼락갑부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과정은 대개가 평화롭지도 합법적이지도 않다.


그렇다고 아편 장사로 이득을 취한 이들이 나쁜 사람이라는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니다. 만약 우리가 마음을 저울질해 본다면 그들의 마음 역시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역사 속 이 시기를 움직인 물리적 힘은 운명이나 인간 본성이 아닌 자본주의라는 걸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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