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이, 임금을 비롯해 노동시간, 노동권 더 나아가 생존권 등의 문제로 고용주나 당국과 협상 내지 투쟁을 벌일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고공농성을 택하는 경우가 있다. 고공농성의 사례는 아주 오래전 식민지 시기부터 있어 왔다.
1931년 평양고무신 공장 파업 사건 때다. 고무신 공장서 일하던 여성노동자가 임금감하를 성토하기 위해 평양 모란봉에 있는 을밀대 지붕 위로 밧줄을 타고 올라가 평양 시민을 대상으로 연설하며 농성을 벌인다. 우리 노동운동사에서 최초로 있었던 고공농성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 평양은 고무회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고무공업협회”가 있고 이들은 노동자 파업이 발생할 때마다 공장폐업 또는 전원해고 등을 망설임 없이 단행하면서 경찰 등 일제 공권력의 협력을 받는다. 이에 노동자들은 총파업으로 대처하는 등 그 반발 역시 격렬했다.
이 고무신 공장 파업 이후 식민지 시절에 또 다른 고공농성 사건이 있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어쩌다 한두 번으로 그친 건 아닌 것 같다. 이북명의 단편소설 「연돌남(煙突男)」(1937)을 통해 이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북명은 함흥 질소비료공장에서 실제 노동자로 일했던 노동자 출신 작가다. 그는 자신에게 공장이란 작가수업을 받은 대학과 다름없다고 말할 정도다. 그가 쓴 작품들을 읽으면 노동자들의 파업뿐만 아니라 당시 공장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을 만나볼 수 있다.
「암모니아 탱크」(1932)의 소재는 산업재해다. 흥남질소비료공장의 황산 공장은, 강한 산성 화합물을 다루다 보니 사고가 끊이지 않아 ‘살인 공장’이라고 불렀다. 「암모니아 탱크」도 탄산가스로 가득한 탱크 소제를 하다가 승강기 고장이 나면서 질식 사고를 당하는 사건을 다룬다.
「오전 세시」(1935)의 ‘오전 3시’는 야근 노동자들에게 가장 졸음이 오는 시간이다. 노동자들은 단 한 시간일지언정 수면시간 확보를 위해 회사와 협상을 벌인다. 협상에서 꼭 이겨야 하는데,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진다는 것이 아니라 죽는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현대의 서곡」(1936)은 전문학교 출신 인텔리가 공장 노조를 결성하기 위해 위장 취업을 하는 얘기다. 주인공은 노동자로 위장하기 위해 몇 달간을 산에 가서 산림 채취 등 막일을 하면서 손을 거칠게 만든 후 공장 입사시험에 응하는 흥미로운 장면도 나온다.
「연돌남」에서는 노동자 셋이 점심시간 휴식을 취하던 중, 백이십 척(40m) 정도 높이가 되는 공장굴뚝 꼭대기에 올라가 그곳서 소리(노래) 한마디 하고 내려오는 사람에게 술을 사주자는 내기를 벌인다. 그중 한 이가 굴뚝에 부착된 쇠사다리를 이용해 한 칸 두 칸 딛고 올라간다.
삼분지 이쯤 올랐을 때부터 굴뚝은 적은 진폭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막상 맨 꼭대기에 오르자 그 노동자는 정신이 아찔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꼼짝을 하지 못한다. 겨우 정신을 차려 꼭대기에 앉아 떨리는 목소리로 아리랑 노래를 부른다.
“공장의 기계는 우리 피로 돌고/ 수리조합 봇물은 내 눈물로 차네.” 그때 갑자기 공장 경비의 소리가 들려오고 십여 명의 경비가 달려온다. 노동자 하나가 굴뚝에 올라갔다는 소문이 공장 내로 삽시간에 퍼지면서 사람들도 여기저기서 모여든다.
직공들은 신문에서는 이런 일을 봤지만 실제로는 처음 보는 일이라고 앞을 다퉈 굴뚝으로 모여든 것이다. 경비가 올라간 노동자에게 내려오라고 소리치지만 올라간 노동자는 정신이 혼미해져 내려갈 수 없다는 뜻으로 말한다.
그러나 군중들은 그가 무언가 버티면서 안 내려오는 걸로 해석한다. 튼튼해 보이는 경비 하나가 굴뚝 위로 올라 그를 간신히 데리고 내려와 경찰서로 끌고 간다. 술내기 장난서 시작됐지만 ‘연돌남’은 시위혐의를 받고 소요죄로 해고당하며 술내기 한 두 사람은 감봉을 당한다.
‘웃픈’ 이야기지만 이북명 소설에 이런 이야기가 소재로 등장한다는 사실 자체가 당시 고공농성의 사례가 빈번히 있었음을 보여준다. 고공농성! 인간이 살 수 있는 곳 또는 살아가야 하는 곳은 땅뿐이다.
그런데 땅에서 살 수가 없게 되고 지상에서의 종결이 난망하게 된다면, 사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더는 갈 데 없이 땅에 있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고공농성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최근에도 어느 시인이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꼭대기로 소풍 가요/ 우리가 딛고 걷는 바닥은 아무 데도 없거든요/ 저기 교묘하게 죽어 있는 바닥들이 보이잖아요/ 우리의 바닥들은 바닥을 치고 위로 더 위로 올라가죠 …”(유현아, 「소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