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카를로비바리 온천의 ‘괴테’와 ‘마르크스’

by 양문규

체코에 가서 일 년 살기 전엔 체코가 그렇게 온천이 많은 나라인지 몰랐다. 온천도 많을 뿐 아니라 그 온천들이 모두 유서가 깊고 유럽에서는 나름 꽤 유명한 관광지다. 그중에서도 프라하에서 버스로 두세 시간 남짓 걸려 가는 카를로비바리 온천이 가장 유명한 편이다.


카를로비바리는 주위가 보헤미아 산자락으로 둘러싸이고 테플라 강이 도시를 관통하면서 자연경관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호화로운 궁전 풍의 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어 예로부터 유럽의 많은 인사들이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러, 또는 병을 치료하러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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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jpg 카를로비바리의 궁전 같은 건물들(위), 시내를 관통하는 테플라 강(가운데), 카르로비바리의 아름다운 호수


베토벤, 브람스, 쇼팽 등의 음악가, 독일의 실러, 러시아 푸슈킨 등과 같은 문호들, 그리고 러시아의 계몽 군주 표토르 대제 등이 이곳을 방문한 유명 인사들이다. 그중에서도 독일 아니 세계의 대문호 괴테는 이곳을 어쩌다가 한 두 번 두른 게 아니고 아주 자주 찾아와 머물렀다.


괴테 자신은 피부병, 위장 장애, 심장병 등의 지병으로 이곳을 다녔다. 당시 이름은 ‘카를로비바리’가 아니고 독일 식 이름 ‘카를스바트’, 즉 “카를 황제의 온천”이었다. 괴테가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갖고 그 유명한 이탈리아 기행을 떠나고자 출발했던 곳도 바로 이곳이다.


카를로비바리에는 그래서 1883년 이곳을 자주 찾았던 괴테를 기리는 동상까지 세워졌다. 한편 이곳은 수 세기 동안 독일 주민들이 많이 거주해왔는데, 2차 대전 때는 나치 독일에 합병되기까지 했다. 독일이 패전하면서 이곳에 살던 많은 독일인들이 추방된다.


당시 체코인들은 독일인들이 미웠던 나머지 독일 출신인 괴테의 동상을 없앤다. 그리고 공산화된 체코는 괴테의 천재성과 그 세계적 명성은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론 그가 귀족과 지배층의 편에 서서 그들에게 굴종적 자세를 취했다고 비판한다.


'1786년 괴테가 거주했던 곳'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흥미로운 건 괴테 말고도 마르크스가 1883년 런던에서 죽기 전, 1874~76년 사이 카를로비바리에서 치료를 받느라 머물렀다는 점이다. 그는 스파가 있는 ‘게르마니아’ 숙소에 머물렀는데, 그 숙소가 20세기 초 다시 지어지고, 공산화된 체코 시절에는 ‘마르크스’ 호텔로 불린다.


1950년 한국전쟁이 한창일 당시 프라하에서 세계평화를 위한 국제학생연맹 회의가 열리는데 북한도 참가한다. 북한 대표단은 카를로비바리도 방문하는데 그때 북한의 김도만이라는 시인이 카를로비바리와 관련된 시를 쓴다.


카를로비바리에서 받은 시인의 강렬한 경험은 마르크스와 관련된 것이었다, 시인은 그곳에서 치료받은 마르크스를 기리며, “오, 꽃으로 장식된 테라스여/그곳에는 우리들의 선생님 /마르크스가 있었다./ 미래 세대의 영원한 삶을 꿈꾸며!”라고 노래한다.


마르크스 호텔은 체코가 자유화가 된 지금은 오성급 호텔인 “올림픽 궁전” 호텔이 돼 있다. 카를로비바리를 찾았던 괴테나 마르크스는, 당대의 이데올로기의 부침으로 그곳을 빛내는 인물로 기억되기도 하고 격하되기도 하고 때로는 기억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괴테나 마르크스는 문학 또는 철학으로 자신이 진리라 생각한 것을 얘기했다. 당시 상류층인 괴테의 세계관에 한계는 있지만, 그가 독일 민족문화에 갇히지 않고 세계문학의 개념을 창출한 건, 그가 유럽 중심의 우월한 세계관서 벗어난 몇 안 되는 문인 중 하나임을 말해준다.


한편 영국 BBC가 언젠가 국내외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실시 한 설문조사 ‘천 년간 가장 위대한 사상가가 누구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압도적 1위를 차지한 게 마르크스, 2위는 아인슈타인, 3위는 뉴턴, 4위는 다윈이었다.


진리란 어찌 보면 서커스의 외줄 타기와도 같은 것이다. 인간의 역사를 보면 인간이 말한 진리는, 자주 특정 정치권력이 독점하여 왜곡시켜 왔다. 진리는 권력이 아닌 신에게 맡겨야 한다는 한나 아렌트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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