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에서 베를린으로

by 양문규

체코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동유럽도 서유럽도 아닌 중부 유럽에 속한다고 말한다. 실제 위치도 그렇다. 프라하에서 기차를 타면 그곳에서 베를린이나 빈 또는 부다페스트까지 거의 비슷한 시간에 갈 수 있다. 프라하는 중부 유럽 그 중서도 가장 한가운데 있는 셈이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프라하는 아주 오래전에는 신성로마제국의 수도로 있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근세 들어 프로이센 제국(독일)이 강성해지고 합스부르크 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이 번영을 이루는 시기, 프라하는 변방의 도시로 뒤처진다.


프라하에서 살 때, 그곳이 빈티지 느낌이 가득 한 낭만적 도시이기는 하지만, 베를린이나 빈에 비하면 모던하거나 풍요롭지 않아 보였다. 아니 설사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프라하 바로 옆에 붙은 독일의 드레스덴만 가도 이 도시가 프라하보다는 훨씬 윤택해 보였다.


이십일 세기 자본주의의 첨단 도시 서울에서 살아본 나로서는 독일 대도시의 풍경이 프라하의 풍경보다는 훨씬 익숙했다. 베를린을 관광하고 다시 프라하로 돌아오면 프라하는 중세 유적지와 관광지로서는 손색이 없으나 다소 침울하고 무기력한 분위기로 비치기까지 했다.


프라하의 이러한 느낌은, 일차 세계대전 전후 세기의 불안을 끌어안고 산 작가 카프카를 생각하게 한다. 카프카의 고향은 바로 프라하다. 그렇다고 그는 체코 사람도 아니었다. 체코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프라하에 있는 그의 무덤을 가보면 그의 묘비명은 히브리어로 씌어있다.


자신의 작품은 체코어도 히브리어도 아닌 독일어로 썼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의 변방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카프카는 독일어가 상용어인 그 나라들의 중심도시 베를린이나 빈을 선망했을 것이다. 베를린까지 아니더라도 앞서 말한 독일의 드레스덴만 가도 그는 감격한다.


그는, 드레스덴을 가면 어디든지 신선한 물건들이 가득하고, 청결하고 딱 부러진 서비스와 조용히 말해지는 단어들이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콘크리트 기술의 결과로 건물의 외관이 거대해 보인다고 말한다. 베를린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을 것이다.


카프카가 태어났던 19세기말 베를린은 대도시로 급격히 발전한다. 중앙집권국가였던 영국이나 프랑스의 수도와 달리 베를린은 뒤늦게 급성장한 신흥도시다. 베를린이 급속도로 유럽의 대도시로 성장한 배경은 당시 사회에 전반적으로 진행된 과학기술의 발전에 있다.


1871년 독일이 프로이센 중심으로 통일되는데 이로부터 1차 대전이 일어나는 1914년까지 독일은 생산량이 500퍼센트 증가하며 대국으로 성장한다. 그야말로 전 세계에서 독일은 넘치는 활력과 기술의 탁월성의 화신이었다. 베를린은 말할 필요도 없이 그 중심에 서 있었다.


독일제국의 정치적 통일성을 상징했던 국회의사당.JPG
프러시아 군국시대의 개선문으로 베를린의 상징.JPG
베를린의 새로운 중심 포츠담 광장 역.JPG 독일제국의 정치적 통일성을 상징했던 국회의사당(상), 프러시아 군국시대의 개선문으로 베를린의 상징(중), 베를린의 새로운 중심 포츠담 광장 역


그러나 군사 강국 프로이센 제국의 번영에는 비관주의와 불안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 곧이어 터진 1차 세계대전과 독일 제국의 붕괴가 이를 말해준다. 체코가 속한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 빈 역시 풍요로운 난세 속에서 화가 클림트 같은 퇴폐주의 예술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카프카는 독일어로 작품을 쓰면서 알게 모르게 독일어 국가인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선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유럽의 변방에 서서, 19세기 후반 폭풍 같은 자본주의 세계의 성장을 지켜보며 그것이 가져올 불확실한 미래와 파국을 훨씬 민감하게 느꼈을지 모른다.


한편 카프카에게는 편지로만 사귀던 베를린의 한 여인이 있었다. 기차를 타고 베를린으로 그녀를 기껏 만나러 가서는, 만나보지도 않고 자신은 도저히 한 여자와 결혼해서 행복한 삶을 꾸릴 수 없는 인간이라 생각하고 좌절하며 프라하로 돌아온다.


직업을 갖고 결혼을 해 가족을 이루며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공포! 직업·결혼·가족의 성 삼위일체가 기초가 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의 소외가, 자신의 특이한 소설 세계를 낳게 한 건 아닐까? 그래서 카프카는 우리가 사는 현대를 근본에서부터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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