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술관에서 만나는 샤갈

by 양문규

샤갈의 그림은 세계의 유명 미술관이면 어디에든 있겠지만, 특히 미국 미술관에 많은 걸로 알고 있다. 물론 프랑스 니스에는 아예 샤갈 전용 미술관도 있다고 하는데, 그러나 그가 자신의 고향 벨라루스를 떠난 후 평생을 무국적자로 살다가 정착한 나라는 결국 미국이다.


그가 미국 오기 직전 왕성한 활동을 했던 나라는 프랑스다. 샤갈이 파리로 갔을 때가 1910년이다. 파리 화단은 야수파와 입체파로 나뉘어 치열하게 경쟁하는 중이었다. 샤갈은 이들과 거리를 두고 독자적인 활동을 펼친 소위 ‘에콜 드 파리(파리파)’를 대표하는 화가였다.


샤갈은 벨라루스 유대인의 전통적·민속적 이미지와 종교적 이미지를 환상적으로 또는 신비주의적으로 그려내 독자적인 미술 세계를 구축한다. 그는 파리에서 유명해졌지만 앞서 말했듯이 돌아갈 고향이 사라졌거나 그 스스로 돌아갈 의사도 별로 없던 떠돌이 이방인 화가였다.


그가 결국 프랑스를 떠나게 된 건,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면 서다. 1937년 나치는 뮌헨서 ‘퇴폐미술전’이라는 희한한 전시회를 열어 현대 전위파 화가들을 조롱하는데, 샤갈의 자화상에 대해선 “유대인의 삐뚤어진 영혼을 보여 주는 작품”이라고 비난한다.


무국적 신분 유대인이었던 샤갈은 나치를 피해 마르세유로 도망치지만 프랑스 경찰에 체포된다. 유대인 긴급구조위원회에 의해 신속하게 구조돼 프랑스를 탈출하게 된다. 그의 예술적 명성이 그를 살렸는지, 아니면 운이 좋았는지 그는 미국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당시 비범한 사상가이자 문필가였던 독일계 유대인 벤야민은 프랑스 탈출에 실패해서 스페인과 접한 국경에서 자살을 하게 된다. 이에 비해 샤갈을 비롯해 막스 에른스트, 뒤샹, 칸딘스키 등의 난민 예술가들은 미국 뉴욕으로 건너와 ‘대박’이 난다.


이들의 작품은 미국의 주요 미술관, 박물관에 들어간다. 샤갈 같은 이는 미술관뿐 아니라 공공미술로 세계 곳곳의 도시공간을 누비면서 엄청난 부를 쌓는다. 이들이 미국에 와서 더욱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데는 예술적인 것 말고도, 정치적인 이유도 작용한다.


2차 대전 직후 미국은 파시즘과 대적해 얻은 승리를 만끽할 새도 없이 소련 공산주의의 도전과 맞닥뜨린다. 미국과 소련 양 진영 간 냉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냉전은 정치에서 뿐만 아니라 예술 전 분야에서 전개된다. 미국은 소련을 다방면으로 압도해야 했다.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맞서거나, 좌파적 예술을 누르기 위해 미국은 추상회화를 내세운다. 샤갈이 이에 꼭 들어맞는 예술가 아니지만, 그는 무엇보다도 나치에 의해 추방되고 공산 러시아로 돌아가기가 싫어 결국 미국에 와서 정착해야 했던 예술가였다.


독일의 추상화가 에른스트의 경우 나치에 쫓기다 미국의 부유한 상속녀이자 예술 후원가 페기 구겐하임과 연애를 하고 그녀의 도움으로 미국을 온다. 그를 포함해 샤갈이나 칸딘스키 같은 유럽의 추상화가들은 ‘구겐하임’ 미술관을 대표하는 화가가 된다.


미국 문화계의 냉전적 정치 공학과 추상미술의 융성함의 관계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이나 구겐하임에 가면 유럽의 미술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숫자의 유명 추상화들과 마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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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521 샤갈, 마을과 나, MOMA.JPG MoMa 안에서 바라본 뉴욕(위) MoMa의 샤갈, '마을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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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582 구겐하임, 샤갈, 날으는 마.JPG 구겐하임 미술관 내부(위), 샤갈 '나는 마차'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라흐마니노프가 있다. 러시아 귀족 가문 태생인 그는 1917년 혁명으로 미국에 망명하고 다시는 고국 땅을 밟지 못한다. 그의 음악에서 묻어나는 애수와 감상은 끝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그의 생애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는 망명 이후 유럽과 미국을 무대로 활동하면서, 특히 미국 청중들에게 잘 먹히는 눈부신 기교의 곡들을 연주한다. 라흐마니노프 곡은 기교도 기교지만 샤갈과 같이 러시아에서 쫓겨와 그로 돌아갈 수 없는 예술가들이기에 미국인들에게 더 인기가 있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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