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디시의 흑인 역사박물관, “어메이징 그레이스”

by 양문규


미국의 수도 워싱턴디시에는 국립박물관이 18개인가 있다. 박물관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지만, 특히 노란 통학버스, 또는 미국 각처에서 왔을 법한 숱한 관광버스들로부터 청소년 학생들이 승하차를 하느라 박물관 앞은 늘 붐빈다.


그중에서도 ‘흑인 역사박물관’은 지하 3층부터 시작해서 위층으로 올라오며 관람하게 돼 있는데 전체 8층으로 된 상당히 큰 건물임에도, 사무실이 있는 층을 빼곤 그 어느 층이든 단체로 견학 온 청소년 학생들이 빽빽이 줄을 지어 관람할 정도로 붐빈다.


KakaoTalk_20250516_050537358 흑인역사박물관.jpg 미국 역사박물관 쪽 마당에서 본 흑인 역사박물관


지하 3층은 1400년대부터 시작된 흑인 노예의 어두운 과거들이 전시돼 있다. 위층으로 가면서 남북전쟁 이후의 노예해방, 그러나 그 후에도 여전히 멈추지 않았던 인종차별, 그리고 이에 저항한 흑인들의 인권운동의 역사가 전시된다.


과거 흑백 분리 칸이 있던 기차 차량도 전시돼 있는데, 백인 칸과 달리 흑인 칸에는 세면대가 없다. 뭐 그것만 없었겠는가! 현재의 역사관에는 최초의 흑인 출신 오바마 대통령 부부의 업적이 전시된다. 흑인 출신 여성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의 전시도 눈에 띄었다.


미국 흑인의 역사는 어찌 보면 미국의 흑역사라고 할 법한데 이렇게 거대한 건물과 시설을 갖추고 이를 보여주는 것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국량을 보는 것 같다. 학생들이 가장 붐비고 이들의 인기를 끄는 마지막 전시관은 역시 흑인 스포츠 스타들의 활약을 전시한 공간이다.


이 박물관이, 미국의 흑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이기도 하지만, 결론적으로 따진다면 이런 흑역사를 극복하고 흑인들의 인권이 증진되고 이들을 사회 안으로 통합해 오늘날 민주주의의 꽃을 피운 나라가 바로 미국임을 보여주는 일종의 국가 홍보박물관의 역할도 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흑인들이 실감하는 미국 주류사회의 구조적 벽은 더 공고해지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미국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워싱턴디시를 관광하다 보면 그곳 박물관이나 지하철 등 공공기관의 경비원 중 유난히 흑인들이 많은 점이 눈에 띈다.


워싱턴 시에는 흑인이 많아 ‘초콜릿 도시’라는 별칭도 있다. 워싱턴디시와 그 인근의 인구 중 70%가 흑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통계상으로 그 흑인 남자들 중 40%는 감옥에 있거나 계류 중이거나, 수사 중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노예제 시절 존 뉴턴이라는 영국 출신의 노예무역선 선장이 있다. 그는 오늘날까지도 유명한데, 노예무역 일을 하다가 나중에 목사가 돼 ‘어메이징 그레이스’라는 유명한 찬송가 작사를 했기 때문이다. 뉴턴은 목사가 된 후 노예무역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수용하긴 했다.


그럼에도 그는 노예선 선장 일을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자신의 소명이라 생각했다. 뉴턴은 네 차례에 걸친 아프리카 노예선 항해를 하면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어메이징 그레이스)로 큰 사고 없이 부도 쌓았고 자랑스러운 기독교인으로서의 길을 되찾게 됐다고 일기에 썼다.


뉴턴은, 흑인박물관에 전시된 노예선 모형도의 좁은 나무 격자 속에 갇힌 80명의 남자, 여자, 아이의 노예들을 보더라도, 그런 생각에 크게 변함은 없을 것 같다. 사실 미국도 일찌감치 1800년 이후가 되면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수입하지 않는다.


미국 남부의 노예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출산율이 높고 사망률이 낮아 농장 소유주들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1808년 남부인이 장악한 미국 의회에서 노예무역 폐지가 손쉽게 통과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 국회의사당 홍보영상에는 미국이 인종‧계층을 넘어 하나의 국민으로 통합된 나라임을 말한다. 그러나 흑인 민권운동가로 암살을 당했던 맬컴 엑스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이 이 사회에 통합되고자 하기 전에, 먼저 이 사회가 어떤 제도를 가지고 있느냐를 보십시오.”


워싱턴디시에는 흑인 역사박물관만 아니라 ‘붉은 흑인’인 아메리칸 인디언 박물관도 있다. 서부 개척 당시 강제 이주에 내몰린 아메리카 원주민들 중, 체로키 부족은 목숨까지 잃는 고난의 여정 속에서 뉴턴의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면서 서로를 위로하며 갔다고 한다.




KakaoTalk_20250520_060038551 인디언 뮤지엄.jpg 아메리칸 인디언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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