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는 자연경관으로도 유명하지만 그럴듯한 미술관도 꽤 많다. 내 짐작으론 스위스의 금융업이 발달하고 금융 부호들이 그곳에서 그림 컬렉터 일을 하면서 이들이 설립한 미술관들이 유명해지게 된 것 아닌가 생각한다.
나 같은 아마추어 관람객은 유럽의 미술관을 방문하면 이곳에도 피카소는 있나? 아니면 고흐도 있나? 하는 소박한 관심을 갖는다. 스위스의 미술관을 구경할 때도 그랬는데 역시 피카소 그림들을 이곳 미술관 여러 군데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다.
내가 스위스의 미술관을 다 가본 거는 아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스위스의 세 개의 미술관은 모두 피카소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되, 각각의 미술관이 피카소 그림을 시기 별로 나눠 갖고 있다. 우연히 그리 된 건지 미술관들 간의 암묵적 협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이 중 내가 가본 바젤의 바이엘러 미술관은 피카소의 중기 작품을, 루체른의 로젠가르트 미술관은 후기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역시 바젤에 있는 쿤스트무제움(예술 박물관)은 가보지는 못했으나 피카소의 초기작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피카소에 대한 인상적인 전시를 하고 있는 곳이 로젠가르트 미술관이었다. 이 미술관은, 루체른 도시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시내의 호반을 가르는 카펠 다리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미술관의 별칭은 아예 피카소 미술관이다.
루체른의 피카소 미술관은 독일의 사업가이자 유명 컬렉터인 지크프리트 로젠가르트에 의해 설립돼 그의 후계자인 딸 앙겔라 로젠가르트에 의해 더욱 유명해졌다. 특히 앙겔라는 피카소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주로 1938년 이후 피카소의 '후기 작품'들을 소장할 수 있었다.
이 미술관 2층 비디오 실에서는 미술관의 숨겨진 역사가 방영됐다. 피카소와 설립자 부녀 간의 재미있는 일화들이 소개된다. 미술관 브로슈어를 참고한다면 언젠가 한 미국인 고객이 지그프리트에게 강요하다시피 피카소의 그림을 팔라고 했는데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미국인이 그 이유를 묻자, 그의 딸 앙겔라가 이 그림을 무척 갖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 했다 한다. 미국인은 화를 내고 떠났고, 지그프리트가 나중 이 사실을 피카소에게 말하자 피카소는 “그 미국인이 앙겔라와 결혼했으면 됐는데”라고 했다고 한다. 피카소다운 응수인 것 같다.
앙겔라 로젠가르트는 아버지의 사업 수완과 안목을 닮았던 건지, 이미 16세의 어린 나이로 초현실파 화가 클레의 그림을 구매할 정도였다고 한다. 앙겔라는 클레의 그림을 처음 만났을 때의 소감을 사춘기 소녀가 첫사랑을 만났을 때의 감정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미술관에선 사진 촬영이 안 돼 피카소의 작품보다는 피카소의 생애를 담은 사진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피카소의 친구인 미국의 사진작가 데이비드 더글러스 던컨은 피카소의 일상과 예술 작업을 담은 많은 사진을 남겼다. 이곳에 그의 사진 작품이 200점 정도 전시돼 있다.
기억에 남는 사진들로는, 그림이 아닌 도자기 공방에서 작업에 몰두하는 피카소의 사진이 있다. 그리고 휴식을 취하는 건지 그 공방에 같이 있던 피카소의 일곱 번째 연인이자 두 번째 부인인 재클린 로케의 사진 등도 있다. 왜 피카소의 여성 편력이 유명하지 않은가!
그런데 미술관에는 희한한 팔레트도 하나 전시돼 있었다. 이는 실은 피카소가 아닌 샤갈의 것이다. 언젠가 이 미술관 주인이 샤갈의 작업실에 들렀을 때인데, 당시 샤갈은 그림이 잘 안 그려져 굉장히 힘들어하고 있었다고 한다.
주인은 샤갈에게 이 이상의 더 좋은 그림이 만들어질 수 없다고 말하자, 그는 만족하며 작업을 거기서 끝내고 그에게 이 팔레트를 넘겨줬다고 한다. 컬렉터는 자기가 좋아하는 예술가를 더 깊이 알고 싶어서 작업실을 직접 방문해서 예술 현장의 전율을 느끼기도 한다고 한다.
던컨의, 피카소 작업실 사진들을 보니 피카소가 천재라서 작품을 어느 순간 영감에 의해 뚝딱 만든 것이 아니고, 예술도 노동의 일종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위대한 예술은 영감을 받아 만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무한한 근면성의 산물이라는 것을 깜빡 잊기 쉬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