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브레멘 도시에 가면 길거리 어디에서나, 심지어 도서관 같은 데서도 이 도시의 상징인 브레멘 음악대 동상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발트 삼국 중의 하나인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 가도 이 동상이 있다. 브레멘과 리가는 과거 한자동맹의 여러 도시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지중해가 유럽의 중심 무대였다면, 중세에서 근세에 이르는 시기에는 유럽 대륙의 교역은 발트해, 북해 바다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는 유럽에 대서양 항로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제 구조가 등장할 때까지 지속된다.
한자동맹 도시는 바로 북해와 발트해가 유럽 교역의 중심이었을 때 그 바다를 끼고 있던 도시들로 중세 권력 또는 군주에 맞서 도시 상인들의 상업적 특권을 확보하기 위해 만든 연합체다. 리가, 브레멘 외에도 노르웨이의 베르겐, 에스토니아의 탈린 등도 대표적 한자 도시다.
동화 ‘브레멘 음악대’에 등장하는 당나귀, 사냥개, 고양이, 수탉은 과거엔 자신들 스스로 주도권을 갖지 못한 채 시골에서 농장 주인들에 얹혀산다. 이들은 각자 독립을 위해 브레멘 도시로 일자리를 찾으러 가다가 만나서 폐가가 된 도둑의 숙소에 머물게 된다.
음악대를 만들어 힘을 합쳐 도둑을 쫓아낸 이들은, 새로운 도시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함께 공동체를 이뤄 협력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는 군주 등의 정치적 권력에 맞서 자신들을 지키고자 한 도시 상인들의 단합을 상징하는 것으로 얘기된다.
브레멘 시내를 걸으면 독일의 자본주의 또는 근대가, 상인들 또는 선원들을 중심으로 어떻게 발전해 갔는지를 보게 된다. 당대 독일 상인들의 흥망성쇠를 그린 토마스 만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1900)을 읽으면 브레멘의 풍경이 한층 다가온다.
이 작품은 정확히는 브레멘이 아닌 브레멘 옆의 또 다른 한자동맹 도시인 뤼베크를 무대로 한다. 이 소설에 그려진 뤼베크의 풍경은 브레멘의 풍경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도시 중심 광장에는 시장이 있고 시청사가 있으며 한편엔 성당 또는 교회가 있다.
브레멘 시청사 근처에는 16세기 초 세워진 고풍스러운 상공회의소 건물도 있다.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에서는 시의회 바로 옆에 비어 홀이 있는데, 주로 상인들로 구성된 시의원들은 오랜 시간 회의를 하다가 휴식 시간엔 이 집에서 맥주를 마시거나 음식을 시켜 먹기도 한다.
리가도 브레멘과 비슷한 분위기다. 무역상들이 머물던 숙소를 겸한 길드 하우스 등의 건물이 있다. 리가와 브레멘은 같은 한자동맹 도시로 교류가 빈번했고 이곳에 독일 상인들이 많이 왕래를 했는데, 리가라는 도시 자
체가 독일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라는 말도 있다.
리가의 브레멘 음악대 동상도 브레멘 시가 리가에 기증해 이곳에 와있는 것이다. 앞서 얘기한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은 북부 독일에서 주로 호밀 등의 곡물 무역을 하는 부덴브로크가 상사의 4대에 걸친 번영과 쇠락을 그린다.
회사 창업자인 부덴브로크 1세의 아내는 브레멘 상인의 딸이기도 하다. 1세는 “일하고 기도하고 절약하라”라는 가훈을 내세워 회사의 기틀을 마련한다. 부덴브로크 영사라 불리던, 2세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그가 활동하던 시기 회사와 가문은 최고의 절정기를 맞는다.
그의 아들인 3세 토마스 부덴브로크도 아버지의 근면을 이어받아 자신의 직업에 열성적으로 임하나 토마스의 시기에 오면 독일 경제가 상업 자본주의에서 산업자본주의로 이행해 가면서 회사가 쇠락하는 징후를 보이기 시작한다.
부덴브로크 4세인 하노는 아버지나 할아버지들과 달리 상인의 기질을 갖고 태어나지 못한다. 그는 음악을 사랑하나 그렇다고 예술가로 대성할 가능성도 없고 병약한 소년으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부덴브로크 상사는 그 대를 잇지 못하고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소년 하노는 당시 프로이센 제국이 요구하는 ‘남성적인 힘’, ‘법질서’ ‘훈련’, 시민 또는 상공인 정신에 적응하지 못하는 여성적이고 유약한 성격을 지닌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브레멘이나 리가 같은 상업도시에서 보는 활동적인 시민, 상인들의 역동성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토마스 만은 독일의 시민계급, 상공업자 등 부르주아들의 진취적이고 정력적인 활약상을 그리면서도 이들을 하노와 대비시켜, 결국은 그들이 프로이센 군국주의와 협력하면서 독일이 장차 제국주의로 나가고, 양차 대전의 비극을 맞게 되리라는 예감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