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은 ‘음악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아는 서양의 많은 고전음악가들이 빈에서 태어나거나 그곳에서 활동했다. 그중 빈을 대표하는 음악가가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다. 매년 열리는 빈 필 신년 음악회의 주요 레퍼토리가 슈트라우스의 왈츠 곡들이다.
일설에 의하면 슈트라우스 2세가 ‘도나우(다뉴브) 왈츠’의 악상을 얻은 곳은 빈을 흐르는 도나우강이 아니고, 부다페스트를 흐르는 도나우(헝가리 말로는 ‘두나’)강에서였다고 한다. 그럴 법한 이야기다. 두나 강 없는 부다페스트를 누가 동유럽의 파리라 부르겠는가!
이에 비하면 빈의 다뉴브강은 심심하다. 그 강이 어디에 가 붙어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오히려 아버지 슈트라우스 1세가 작곡한 라데츠키 행진곡이, 빈의 경쾌한 인상을 떠올리게 한다. 교향악단들도 자주 이 곡을 마지막 레퍼토리로 삼아 청중들의 흥을 돋우지 않나!
빈을 여행할 당시 도심인 ‘랑슈트라세’ 주변 숙소에 머물렀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일찌감치 먹고 거리를 나서면 빈의 도심은 도보로 돌아다니며 거의 다 볼 수 있다. 랑슈트라세 거리는 파리 도심과 같이 19세기 합스부르크 제국 당시 삼빡하게 리모델링된다.
도심에는 중세의 고딕부터 시작해 바로크, 로코코, 신 고딕 등 수 세기에 걸친 유럽의 건축 양식을 재현한 건물들이 도열해있다. 고색창연한 프라하와도 대비되고 파리와 비교하면 깔끔한 웅장함이 있다. 이 거리는 라데츠키 행진곡에 맞춰 경쾌하게 걸어갈 만하다.
슈트라우스 부자의 음악은 19세기 합스부르크 제국의 번영을 상징한다. 하지만 제국은 그 세기 말엽 이미 내리막길을 향해 가고 있었다. 세기말 빈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음악가 말러나 화가 클림트는 전혀 경쾌하지 않고, 비장하거나 아니면 퇴폐적 분위기까지 풍긴다.
빈에는 슈트라우스도 있고 말러도 있지만, 뭣보다도 위대한 음악가 베토벤이 있었다. 슈트라우스는 빈 사람이지만 그는 독일 본 출신이다. 베토벤이 활동한 시기 역시 오스트리아 제국은 절정에 있을 때다. 그럼에도 제국은 불안했다. 바로 프랑스 대혁명 때문이다.
파리에서는 혁명의 불길이 치솟고 자유와 평등, 정의가 외쳐지고 있는데 합스부르크 왕가는 애써 이를 외면했다. 오히려 나폴레옹이 축출되고 혁명의 불길이 꺼져 가면서 제국은 혁명을 거슬러 보수 반동의 길을 강화한다. 베토벤은 빈에서 바로 이런 시기를 살았다.
베토벤의 많은 작품들 중엔 피아노 삼중주 작품도 여럿 있다. 그의 ‘대공’이나 ‘유령’ 같은 피아노 삼중주는 우아하며 진지한데, Op.11 삼중주는 상대적으로 경쾌하다. 특히 그 3악장이 그렇다. 3악장 모티프는 당시 빈에서 공연됐던 이태리 오페라의 아리아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 아리아는 빈의 대중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어 당시 빈 거리 어디서나 이 멜로디가 들려왔다고 한다. 우리 FM 방송서도 자주 들을 수 있는 흥겨운 곡조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로 구성된 게 피아노 삼중주인데, 바이올린 대신 클라리넷이 들어가 흥겨움이 더해질 때도 있다.
이 3악장을 들으면 빈의 케른트너 거리 노천카페에서 즐기던 멜랑제 커피가 생각나기도 하고, 빈 거리의 쇼윈도에서 반짝거리던 스와로브스키 보석들이 생각난다. 그런데 베토벤의 경쾌함은 슈트라우스의 향락적 경쾌함과는 다르다.
베토벤은 3악장의 경쾌한 주제를 여러 형태로 변주한다. 어떤 땐 혁명을 반영하듯 시민의 정치적 자유의 고양된 분위기로 들려주고, 때론 사태를 성찰하는 내면의 소리로 들려준다. 베토벤 음악은, 빈이 경쾌한 도시만은 아니고 여러 역사를 안고 있던 도시임을 생각하게 한다.
사족인데 우리 식민지 시기 최초로 전 악장이 연주된 베토벤 곡이 바로 이 삼중주다. 1930년 종로 YMCA회관에서 홍난파(바이올린), 안익태(첼로), 김원복(피아노)이 연주했다. 당시 조선 사람들은 어떻게 들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