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 이인직의 「혈의 루」(1906)에는 미국으로 유학 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청일전쟁 때 부모를 잃은 김옥련은 일본인 군의관의 양녀가 돼 일본으로 건너간다. 옥련은, 미국유학을 가고자 일본에 두른 청년 구완서를 만나 함께 미국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혈의 루」 줄거리를 말할 때마다 농담으로 두 남녀가 미국 유학을 가는 여권 또는 비자는 어떻게 발급받았는지 궁금하다고 말한다. 이 소설이 청일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근대소설이기는 하나 우연성도 많고 사실성이 부족한 소설이기도 한 셈이다.
당시 조선 사람들이 미국을 가기 위해서는 일본 또는 중국을 거쳐 가야 했다. 「혈의 루」의 주인공들은 요코하마를 떠나 태평양을 횡단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상항)로 간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일행은 뭣보다도 사람들과 언어가 통하지를 않아서 전전긍긍한다.
길거리에서 만난 청인 노동자들과 한자로 필담을 나누고자 하나 이들이 글자를 몰라 허사로 끝나고 만다. 샌프란시스코가 19세기 중후반 미국으로 온 중국 노동자들의 주요 정착지였다는 점에서 옥련 일행이 이 도시에서 청인 노동자들과 마주치게 되는 설정은 그럴싸하다.
결국 옥련 일행은 그곳에서 청국의 개혁당 영수인 캉유웨이(강유위)를 만나고, 그의 주선으로 워싱턴디시(화성돈)의 청국 유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로 가서 공부를 하게 된다. 캉유웨이는 실제 인물로 청나라 봉건왕조를 타파하기 위해 일본의 도움을 받고자 한 급진 개화파다.
이인직 역시 정치적으로 친일 개화파였기에 조선인 유학생의 조력자로서 캉유웨이를 등장시킨 것도 이해가 간다. 이인직은 샌프란시스코에 대해선 그래도 몇 마디 얘기하나, 미국 수도 워싱턴디시에 관한 정보나 지식은 없었던 듯 그 도시에 대한 묘사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소설 말고 실제 미국을 간 최초의 유학생은 유길준이었다. 원래는 1883년 외교사절단 수행원으로 워싱턴을 가서 미국 여러 곳을 시찰하다가, 미국에 남아 매사추세츠 주의 한 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1884년 갑신정변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한다.
그는 『서유견문』(1895)이라는 글을 쓰기는 했지만,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기행문의 형식은 아니라서 어떤 행로를 거쳐 미국을 갔다 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미국을 갈 때는 일본을 거쳐 간 것 같으니 「혈의 루」의 주인공들과 비슷한 행로를 밟았을 것이다.
단 유길준은 1885년 가을 혼자 귀국하면서 ”대서양의 물결과 홍해의 무더위를 무릅쓰고 지구를 돌아서, 그해 겨울 제물포에 도착했다 “라고 말한 걸 보면, 갈 때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돌아왔었나 보다.
미국 유학을 정식으로 갔던 최초의 사람은 윤치호다. 그는 일기에 자신의 유학 경로를 밝혀 당시 어떤 식으로 미국을 갔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는 중국 상해에서 공부를 하던 중 미국 선교사들의 보증과 추천으로 유학을 가게 돼 1888년 9월 28일 상해를 떠난다.
먼저 상해에서 일본 선박을 이용해 일본 내해의 항구들을 거쳐 요코하마까지 간다. 요코하마에서는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는 배를 타는데 중간에 하와이 호놀룰루를 거쳐 간다. 10월 26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니 거의 한 달 걸려서 미국을 갔던 셈이다.
윤치호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후, 자신이 유학하기로 한 테네시 주 밴더빌트 대학을 가기 위해 내슈빌을 향해 기차를 여러 번 갈아타면서 미대륙을 횡단해 간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워싱턴디시까지 가는 행로도 대개 이런 식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혈의 루」 주인공들은 워싱턴디시를 가서 공부를 하는 걸로 돼 있지만, 실제로 당시 워싱턴디시에서 공부를 한 유학생의 흔적은 없다. 단 워싱턴디시와 인접한 버지니아 주의 서북쪽 로녹 대학(현재도 있다)이라는 곳에 조선인들이 유학한 기록은 남아 있다.
이 대학이 워싱턴디시와 상대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는 데다, 워싱턴디시 소재 조선 공사관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공사관에서 이 학교로 조선인들을 자주 추천했던 것 같다. 그중 유명한 독립운동가 김규식도 16세 소년의 나이에 이 학교로 유학을 간다.
선교사 언더우드의 도움을 받아 가능한 일이었는데, 김규식 역시 태평양을 건너 샌프란시스코로 입항한다. 워싱턴디시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는 놀랍게도 유학생 김규식의 신상이 기재된 1897년 7월 11일 샌프란시스코 항 출입 기록 선박의 승선자 명부가 남아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