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전 학생들과 거제도로 수학여행을 간 적이 있다. 구조라 항에서 유람선을 타고 한려수도의 해금강을 가면서 남해의 낭만에 한껏 젖기도 했다. 한편으론 수학여행이라는 이름을 짓느라 거제섬 안에 있는 한국전쟁 당시 만들어진 포로수용소 유적지를 견학하기도 했다.
거제도는 한국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으로 섬 안의 산세도 대단하다. 바다의 낭만과 달리 포로수용소가 위치한 가파른 산골짜기는 현재 관광지로 개발되기는 했어도 분위기는 삭막할 수밖에 없다. 지금 개발된 수용소 건물은 원래 수용소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1951년 1월, 미 육군은 이곳에 15만여 명의 전쟁포로를 수용하는 수용소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2차 대전 이후 지어진 세계 최대 규모의 수용소다. 이곳에서 포로들 간의 이념적 갈등으로 200명이 넘는 이가 죽는다. 거제섬은 한국전쟁의 또 다른 비극의 현장이었던 셈이다.
한국문학에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자체에 초점을 맞춘 건 아니지만, 그 거제 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전쟁포로들의 비극을 그린 작품들이 있다. 장용학의 「요한 시집」(1955)은 거제 포로수용소가 있던 시기와 아주 가까운 시점에 발표된 소설이다.
고양이가 잡아 놓은 쥐를 먹고 연명하는 노파의 이야기에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서두부터 끔찍하다. 한국전쟁 직후 이 시대의 절망과 암울함을 보여주기 위한 작가의 충격적 설정인 듯싶다. 「요한 시집」의 중심인물은 거제도 수용소에 수감 됐던 두 명의 전쟁포로다.
그중 화자 격의 인물인 ’ 동호‘는 의용군 출신 포로다. 의용군은 원래 남한 출신이지만 인민군이 남한을 점령하면서 자의 또는 타의로 인민군에 징집돼 간 이들이다. 이들은 나중에 포로 송환 과정에서 남에 남을 것인지 북으로 갈 것인지의 문제로 폭력과 복수에 휘말리게 된다.
동호는 남한에 남게 된다. 한편 누혜라는 인물은 북한 출신의 인민군 포로다. 그는 당연히 북으로 송환돼야 할 터이지만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실망하고, 수용소 내의 친공 포로와 반공 포로들 사이에서 반역자로 몰리면서 압박을 받던 중 철조망에 목을 매고 자살한다.
최인훈의 『광장』(1961)의 이명준은 남한 출신이나 월북해 인민군 장교가 되고, 한국전쟁 중 포로가 된다. 남한과 북한 양쪽에서 모두 살아본 그는 양쪽 체제에 모두 환멸을 느낀다. 남한은 자유는 있으나 타락과 무이상의 세계고, 북한은 이념적 광신의 세계였기 때문이다.
그는 좌우충돌의 와중에서 제 삼국으로의 송환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중립국을 선택한다. 실제 이런 포로들이 76명이 됐다. 명준은 판문점서 좌우 양쪽의 심문자들로부터의 최종 설득을 모두 물리치고 “통쾌”한 기분에 젖으나, 결국 인도로 향하는 선상에서 투신자살한다.
시인 김수영의 「조국으로 돌아오신 상병(傷兵) 포로 동지들에게」(1953)의 시적 화자는 실제 거제도에서 포로 생활을 한 시인이다. 김수영은 남한 출신이다. 인민군에 징집돼 의용군으로 끌려가다가 탈출을 해서 남하했으나 경찰에 체포돼 거제도 수용소로 보내진다.
시 속 화자는 자신이 전쟁 포로가 아니고 “민간 억류인” 신분임을 강조한다. 민간인 신분이 아닌 포로 신분이 되면 사람들에게 의심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의용군이든 인민군이든 포로라는 지위는 사회적 낙인이 되는데, 공산주의자라는 의혹이 포로에게 씌워진다.
게다가 전쟁이 끝난다 해도, 포로 신분이었던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사는 내내 전쟁 포로였다는 오명이 끈질기게 붙어 다닌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전쟁포로라는 낙인은 일시적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칫 잘못하다간 언제든지 용공주의자로 몰릴 수 있었다.
김수영의 미완성 소설 「의용군」에는 북으로 끌려가는 의용군이 주인공이다. 그는 강제로 끌려가지만 내심 북한 체제에 대한 일말의 기대도 품고 있다. 그러나 당시 북쪽 땅이었던 경기도 전곡과 연천을 지나 북상하면서 점차 이북 체제에 실망하는 모습을 그린다.
요즘 나는 꽤 먹은 나이임에도, 친구들로부터 자주 “너 좌파냐? 우파냐? “ 하는 질문을 받는다. 아니면 ”너는 중도지!? “ 하는 말을 듣기도 한다. 포로수용소 안에서 바로 그런 식의 심문 과정이 진행되면서 복수와 살상이 빚어진다. 그런 세상이 또다시 돌아온 것 같아 심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