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 시대의 대표적 신소설 작가 하면, 『혈의 루』(1906)의 이인직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인직보다도 훨씬 많은, 무려 50여 편 이상의 신소설을 쓴 작가가 이해조다. 이해조 작품들도 이인직과 마찬가지로 문명개화가 그 주제다.
단 이인직이 문명개화라는 주제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이해조는 문명개화도 문명개화지만 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점에 훨씬 신경을 썼던 작가다. 이해조는 소설이 재미가 있으려면 시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소재로 삼아 이를 사실적으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랑스의 사실주의 작가 스탕달이 『적과 흑』(1830)에서, “소설이란 길을 따라 들고 다니며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다. 이해조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한 셈이다. 이해조 소설은 개화기 시대의 세태 풍속을 흥미진진하게 그린다. 제대로만 읽으면 이인직 소설보다 훨씬 재미있다.
이해조의 『구마검』(1908)은 '미신 타파'를 주제로 한 소설인데, 가짜 무당이 사기를 쳐서 부잣집 재산을 들어먹는, 요즘 “사건 25시”에나 등장할 법한 얘기의 작품이다. 사기를 당하는 부잣집 주인은 구한말 당시 중국과 무역을 해서 큰돈을 벌어들인 역관 출신의 인물이다.
그 양반이 몇 번의 상처 끝에 삼취 부인을 들이는데 그 여인이 세상에 둘도 없는 미신 숭배자다. 그 여인은 어린 자식이 마마(천연두)를 앓자 의원 대신 무당을 불러 '마마 배송굿'을 한다. 그럼에도 세상을 떠나게 되자 이번에는 어린 넋을 달래고자 '지노귀굿(씻김굿)'을 한다.
이런 와중에 가짜 무당, 지관이 껴들어 사기를 치는데, '배뱅이굿' 모티프까지 빌려 얘기가 전개된다. 사기꾼 무당은, 당시 무당들의 집단 거주지였던 '노들(노량진) 마을'에서 데려온다. 노량진 인근에 '사당', '장승배기', '국사봉' 등의 지명이 남은 게 다 이와 관련된 것이리라.
『모란병』(1909)은 갑오경장 당시 관제 개혁으로 관직을 잃은 자가 가난에 몰리면서 사기꾼에게 속아 외동딸 금선을 기생에 팔아넘기는 이야기다. 금선은 기생으로 팔려 가 고난을 겪지만 귀인의 도움으로 구조돼 여학교를 다니다 유학을 떠나는 전형적인 신소설 식 이야기다.
『구마검』에서 굿 현장이 흥미롭게 재현된다면, 『모란병』에서는 금선이 팔려 간 인천 화개동(현재 선화동) 색주가의 세태가 재현된다. 인천이 고향인 나는 과거 오랫동안 사창가 지역이었던 그 동네를 익히 알고 있다. 이해조 소설은 그만큼 사실에 기초한다.
허름한 색주가에 손님이 들면 오죽잖은 안주상이 차려진다. 쪽접시에 피밤(까지 않은 밤), 피잣, 낙화생(땅콩) 등이 담아 나온다. 그리고 술은 서양식 철(鐵) 주전자에 담아와 차례로 권해진다. 손님들은 술보다는 계집을 가운데 앉히고 소리(노래)를 시키려 수작을 한다.
어떤 계집은, 자신은 (기생) 선생님을 모시고 소리를 배운 적이 없어 못 하겠노라 빼면, 손님들은 어림도 없는 소리는 하지도 말라고 한다. 한 계집이 '시조창'을 하면 어떤 이는 자기는 무식해 “조 있는” 소리는 듣지 못하니 '잡가'를 하라느니, 누구는 그냥 들으라니 하며 다툰다.
이 당시 평민 남자들이 색주가 술자리에 계집들을 앉혀 놓고 어떻게 놀았는지를 마치 한 편의 오래된 영화를 빌려서 보는 느낌이다. 이해조 소설은 이러한 시정의 세계를 그리기 위해 화려한(?) 속담의 수사를 펼친다.
“도둑놈이 된장 항아리에 풋고추 백이듯 숨어 있었다.”
“인절미를 굴려도 검불 하나 아니 묻을 것 같이 마당을 쓸어 놓았다.”
“이놈의 영감, 농익은 연시 모양 홀쭉하도록 빨려 보아라”
생활에 바탕을 둔 해학적이고 실감 나는 속담 비유가 이해조 소설 전체를 뒤엎고 있다. 이에 비해 이해조에 이어 등장하는 이광수는 자신의 소설이 현대소설임을 내세워 소설 속에서 이러한 속담의 비유가 완전히 자취를 감춰 버린다.
1920년대 사실주의 소설에서야 속담 수사가 다시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한다. 김유정 같은 작가에 이르면 당대 민중의 삶을 재현하는데 이러한 속담의 수사가 어떻게 생산적으로 재창조되는지를 보여 준다.
돈키호테는 자신의 하인 산초가 구사하는 속담을 비난하면서도 존경심을 드러낸다. 산초가 가장 멋있고 기억력이 좋아 보일 때가, 상황에 딱 들어맞건 맞지 않든 간에 속담을 끌어올 때이기 때문이다. 『돈키호테』의 산초는 상층 문화를 패러디하는 민중문화의 역량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