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과 리얼리즘
프랑스 작가 프루스트가 남긴 유일한 소설 작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하 『잃어버린』)는 1913년부터 1927년에 걸쳐 발표한 엄청나게 긴 장편소설로 20세기 모더니즘의 새로운 장을 연 작품이다. 염상섭은 1920년대 이후 한국의 리얼리즘 소설을 개척해나간 작가다.
『잃어버린』은 19세기말부터 1차 대전까지의 프랑스가, 20년대 염상섭 소설은 1910년대 이후 식민지 조선 사회가 배경이다. 양자가 시공간 배경도 다를뿐더러 전자는 모더니즘, 후자는 리얼리즘 소설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은커녕 서로 상반된 내용과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나의 눈길을 끄는 것 중 하나가, 두 작가의 작품에서 당시로선 신문물이었던 ‘전화’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물론 프루스트 소설에서는 그것이 수많은 이야기들 중 한 이야기인 데 반해, 염상섭의 단편 「전화」(1925)는 ‘전화’가 주인공 격이다.
프랑스에서 전화를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19세기 후반이다. 『잃어버린』 속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시기, 전화 가입자는 급격히 늘어나 4~5만 명에 이른다. 우리의 경우도 전화기가 1896년 덕수궁에 처음 설치되나, 가입자가 증가한 것은 1920년대고 1924년 6,500여 명이 된다.
당시 전화기의 출현은 단순히 신기한 문물 이상으로, 인류에게 그 이전 누구도 상상 못 했던 새로운 시공간을 창출시킨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의 모바일 전화가 가져다준 일상생활의 변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주었으리라 짐작한다.
『잃어버린』에서는 전화가 출현해 외출을 않고도 가게에 물건을 주문을 할 수 있는 편리함을 얘기한다. 그럼에도 주인공 마르셀이, 늙은 하녀에게 전화사용법을 가르쳐 주려 할 때마다, 그녀는 사람들이 예방주사 맞을 때 도망칠 방법을 찾을 궁리를 하는 것처럼 달아나곤 한다.
염상섭 「전화」의 주인공 이주사는 전화를 장만하고 어디서 전화 오기만을 고대한다. 전화 가입자 숫자가 절대적으로 적으니 전화 올 일이 거의 없는 것이다. 아침 식전 안방으로 제일 먼저 걸려 온 전화는 기생집에서 걸려 온 전화라서 아내 앞에서 민망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주사는 회사로 출근해서는 아내에게 난생처음으로 전화를 걸어본다. 아내는 부부가 전화로 이야기를 해본 일은 처음이라. 목소리가 반갑기도 하면서 혼자 전화통에다 대고 뭐라고 얘기하는 게 부끄러워 웃음이 절로 나기도 한다.
『잃어버린』에서 마르셀은 먼 곳을 여행하던 중, 사랑하는 할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게 된다. 이를 위해 그 지역 우체국으로 가서 할머니가 신청해 놓은 시외전화를 받는다. 그는 얼굴을 보지 않고 할머니의 목소리만 듣는 새로운 경험을 한다.
“얼굴이라는 가면을 갖지 않은 목소리만을 홀로 듣는” 마르셀은 문득 자신이 할머니와 멀리 떨어져 고립돼 있음을 느낀다. 전화가 중도에 끊어지자 전화기 앞에서 ”할머니, 할머니“ 하면서, 마치 오르페우스가 죽은 아내의 이름을 되풀이하듯, 계속 헛되게 불러본다.
마르셀에게 전화는 먼 곳에 있는 사람을 가깝게 해주는 문물의 이기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더 각인시켜 준다. 마르셀은, 자기 애인을 보고 싶을 때마다 전화가 그러한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새로운 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막상 애인과 통화할 때 애인의 목소리는 가까이서 들리지만, 그녀의 말소리 주위로 다른 음향들이 섞여 들린다. 자전거 타는 사람의 경적이나, 멀리서 군악대 소리도 들리는데 그것들이 낯설어서 오히려 사랑하는 애인이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세계에 가 있다고 느낀다.
마르셀은 전화에서 들은 애인의 말에서, 오히려 그녀의 삶이 자신에게서 먼 거리에 있어 내가 그 삶을 손안에 넣으려고 할 때마다 언제나 힘든 탐색을 해야 하는, 결국 애인조차 완전히 소유할 수 없다는 불안에 빠진다.
「전화」의 이주사는, 전당을 잡혀 삼백 원에 놓은 전화기가 장사꾼 말고는 실제론 큰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그것이 수요 초과로 며칠 새 오백 원, 칠팔백 원으로 마구 뛰면서 ‘프리미엄’이 붙는, 즉 자본주의 사회의 소위 ‘거품 경제” 현상을 목격한다.
『잃어버린』은 전화를 통해 현대사회 속 인간 개인의 고독의 문제를, 「전화」는 새로운 자본주의 현실을 그린다. 모더니즘, 리얼리즘 그 어느 것이 더 인간 삶의 현실을 절실히 그렸느냐는 쉽게 얘기할 수 없다. 요즘 내 생각은 양자를 대립적으로 보지는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